벌써 28년 전의 일이다.
세상에 태어나 말로만 듣던 무시무시한 출산의 고통을 체험한 날..
부부군인이었던 우린 결혼 1년 후에 아이를 가졌다.
주말부부, 월말부부를 하다 보니 결혼 1년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 내심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 임신인 줄도 모르고 아이가 생겼다. 임신임을 알았을 때의 그 야릇한 기분이란 건..
전투복 상의로 불러오는 배를 숨기며 7개월까지 일직근무도 섰다.
더군다나 훈련이 많던 부대에서 근무를 하고 있던 때라 배가 불러서 까지 훈련을 해야 했다.
지프차 뒷 좌석에 2인분(?)의 몸을 의지한 체.. 훈련장을 쫓아다녔다.
그 당시 참모님은 쌍둥이 아들만 둘 두신 분이라 임산부의 고통을 전혀 이해하시지 못했다.
좀 쉬게 해 주실 수도 있었건만 여기저기 훈련장으로 데리고 다니셨다.
물론 업무를 배우게 해 주려는 그분 나름의 배려(?)였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뱃속에서 아이가 발길질이라도 해대면, 지프차 뒷자리에서 참모님의 뒤통수에 대고 얼마나 원망을 했는지..
많이 돌아다녀야 아이 낳을 때 힘이 들지 않는다는 선배장교의 말을 듣고는 부른 배를 부여잡고
점심시간이면 열심히 부대 안을 돌아다녔다.
"부부가 군인이라 아이가 태어날 때 전투화 신고 나오는 것 아니냐?"는 동료들의 우려 섞인 농담을 들으며,
출산예정 일주일 여를 앞두고 친정으로 갔다. 첫 아이라서 인지 출산예정일 보다 늦게 진통이 시작되었다.
병원에서의 에피소드 하나.
출산을 하러 입원을 하면 간호사들이 작성하는 기록서가 있다.
직업, 주소, 나이 등등.. 간호사가 사무적인 어투로, "직업은요?"라고 묻길래
당연히 내 직업을 묻는 줄 알고, "군인인데요."
간호사 왈, "아저씨 말고 아줌마 직업이요."
"제가 군인인데요."
"아, 그러세요?" 그러면서 다시 한번 얼굴을 쳐다본다.
군인이라고 밝히지 않았으면 몰라도 밝힌 이상 아프다고 소리 지를 수도 없게 됐다.
사람들 인식에 군인은 씩씩하다고 생각할 터이고 더구나 여군은 보통 여자들보다 체질적으로 더 강하고
참을성도 많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아프다고 하면 여군의 자존심에 손상을 입을 우려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아픈 와중에도 내 자존심과 여군의 명예를 지키고 싶었다.
초산은 몇 시간씩 진통을 한다고들 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4시간 진통 끝에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 많이 걷고 훈련을 따라다닌 덕분인지 아이가 다행히 크지 않아 쉽게 낳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이를 낳고 나니 간호사 왈, "역시 군인이라서 씩씩하시네요. 소리도 지르지 않으시고.."
내심, "야, 이 사람아. 나도 사람인데 왜 아프지 않았겠나. 군인이라고 밝혔으니 소리 지르면 여군들이 엄살이 심한 걸로 소문날 것 아닌가.. 나도 엄청 참았다고."
남편이 옆에서 손도 잡아주지 않은 열악한(?) 상황에서 여군 김대위는 씩씩하게 출산의 임무를 완수한 것이다. 군인가족들의 출산에피소드는 다양하다. 훈련 중이던 한 선배장교의 가족은 병원에서 미혼모취급까지 받고는 남편이 도착하니 대성통곡을 했다고도 한다.
그때 낳은 첫 아이가 벌써 스물여덟 살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버이날 편지를 보내 나의 눈시울을 적신 아들이다.
"어렸을 때 아파서 엄마가 저를 업고 병원으로 뛰셨는데, 그때 엄마가 달리기를 그렇게 잘하는 줄 처음
알았어요.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말이 맞는가 봐요. 감사해요. 다음에 크면 잘해 드릴게요."
때론 무자식이 상팔자란 생각도 들지만, 아이가 주는 기쁨과 행복이 더 큰 것이기에 그 고통을 감내하며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닐까?
지난날을 추억하는 이 짧은 시간들이 일상의 작은 행복감을 더해 준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