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온전한 내 편으로 오래오래 같이 있어주기를

by 김태선
old-couple-g41f190c59_640.jpg 아름다운 노후를 함께

“ 저분 얼마 전 부인과 사별하고 49제 지낸 후 연습장에 나오신 거예요.

일흔한 살이신데 그동안 부인 간병하느라 오래도록 못 나왔어요.”

얼마 전, 골프 연습장에서 처음 뵌 분의 속사정을 알게 되니 그 뒷모습이 더 쓸쓸하고 안쓰러웠다.


배우자를 잃은 후 느끼는 상실감이 몸 안의 염증 수치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미국 대학교 연구진의 발표가 있다. 배우자와의 이별(사별)이 스트레스 중 최고라는 사실과도 같다.

사별한 그분의 얘기를 들려주면서 우리는 오래도록 건강하게 잘 살자고 약속했다.

“악처라도 옆에 있으면서 지지고 볶는 것이 낫지? 했더니

“악처보다는 착한 마누라가 좋지..” 남편은 악처보다 착한 마누라를 원했다.

"내가 악처라고? 진짜 악처 하고 한 번 살아볼 테여?" 살포시 눈을 흘겨본다.


쉰 중반을 넘고 보니 건강이 가장 중요하고 염려가 된다. 해가 갈수록 건강검진에 대한 긴장감과 걱정은 배가 된다. 무슨 수치가 높다고 하려나? 어디가 안 좋다고 약 먹으라고 하면? 암이라도 걸렸다고 하면?

온갖 추측과 걱정을 하면서 검진 결과를 기다린다. 결과지를 체크하면서 서로에게 잔소리 강도를 높인다.

'운동해라. 살 빼라. 영양제 좀 챙겨 먹어라.'


부부란 무엇일까? 무엇으로 사는 걸까?

결혼을 안 하겠다고 선포했다. 부모님의 결혼생활이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고 엄마처럼 살기 싫어서였다.

가정형편은 어려웠고 술에 의지하며 현실을 도피하려 했던 아버지, 돈 걱정과 돈 때문에 다투는 부모님의 모습이 싫었다. 차라리 이혼을 하지 왜 저렇게 원수처럼 으르렁대면서 사는 걸까? 부모님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어떻게 오 남매는 낳았는지도 항상 의문이었다. 남들처럼 풍족하게 키우지도 못할 거면서 무책임하게 애들은 많이 낳아서 고생시키냐며 부모님을 미워하고 원망도 했다.


여군이 되었다. 독신으로 살면서 군(軍)에서 입신양명하고 싶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으로 군(軍)에서 남편을 만났다. 소위로 임관 후 교육기관에 갔는데 그곳에서 남편에게 첫눈에 낚여(?) 버린 것이다. 경상도 여자와 전라도 남자.. 어울릴 수 없는 조합이었는데 어쩌다 그렇게 되었다.

해 질 무렵 코스모스 핀 길을 걸어가던 내 뒷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 했다.

그게 가능해?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남편은 '그때 이 여자는 내 여자다. 운명이라는 느낌이 팍 왔다고 했다. 스토커처럼 죽자살자 쫓아다녔다. 지금이었으면 스토커로 신고를 했을지 모른다. 그를 피해 다니기

바빴고 동기생들은 OO이 쫓아다니지 말라. 싦다는 데 왜 그러냐며 대신 경고장을 날려 주었다.

엄마의 반대도 극심했다. 가당키나 한 일이냐고? 세상에서 제일 잘 난 딸이라고 여겼는데 성에 차지도 않는 녀석이 딸을 탐내니 죽기 살기로 반대하고 온갖 면박을 주었다. 그런데 이 거머리(?) 같은 남자는 포기를 몰랐다. 결국 엄마는 마음대로 하라며 백기를 들었고 4년의 줄다리기 끝에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낳았다. 우리의 연애사를 알고 있는 동기생들은 남편을 '의지의 한국인'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으로 30년 가까운 시간을 함께 하고 있으니 세월 참 빠르다. 부부군인으로 맞벌이 부부로 떨어져 지낸 시간이 길었기에 수많은 이별의 시간과 애틋함도 있었다. 그때 흘린 눈물로 작은 저수지 하나쯤 채울 수 있으려나?


이제는 서로의 흰머리를 애처롭게 여기고 코 골며 잠자는 모습에도 애잔함을 느낀다.

흰머리도 안 생기고 언제까지나 건강하고 탱탱할 줄만 알았는데

흰머리는 뽑을 수도 없을 지경이고 나잇살 탓인지 복부는 날이 갈수록 면적을 넓히며 위세를 떨치고 있다.

rv-g9d4fa676f_640.jpg 캠핑카에서 별 헤이는 멋진 밤을...

TV에서 80대 부부의 사연이 소개되었는데

고물상을 하며 고생한 아내를 위해 탑차를 직접 개조해 만든 캠핑카로 전국을 여행 중인 부부 이야기였다.

너무 부럽고 멋지고 행복해 보여서 우리도 다음에 꼭 그렇게 하자고 약속했다.

남편이 퇴직을 하면 캠핑카를 사서 여행을 다닐 계획이다. 사실 남편은 캠핑카보다 편하게 패키지 해외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데, 비행기 타는 것이 번거롭고 국내 여행지도 안 가본 곳이 많다고 내가 우겨서 캠핑카로 합의(?)를 한 것이다.

맞벌이 부부로 아이 둘 키우며 열심히 살았고 어느 정도 살 정도의 노후 준비는 해뒀으니 더 이상 큰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돈 돈 거리며 욕심부리다가는 더 소중한 시간을 잃어버리고 후회할 것 같아서다.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둘 중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기라도 한다면 그 욕심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아등바등하지도 않기로 했다. 자식은 그들의 인생이 있고 돈 벌 시간도 많이 남았으니 자식 걱정은 그만하자고 했다. 남편은 하나라도 더 자식에게 남겨주고 싶어 하지만

이제는 내 인생, 부부의 인생을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때라고 설득했다.

애쓰며 열심히 살아온 만큼 노후는 편안하게 보상받을 자격이 있고 충분히 보상받으며 살고 싶다.

부부는 전생에 원수가 만난 것이고 자식은 채권, 채무자 관계였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부부란 무엇일까? 전생의 원수가 만난 것일까? 아니면 전생의 원수가 화해하기 위해 맺은 인연일까?

후자라고 믿고 싶다.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신혼의 그 뜨겁던(?) 사랑과 열정의 시간은 끝난 지 오래이고 이제는 의리와 측은함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보듬으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흰머리와 주름이 애잔하고 건강을 걱정하며 잔소리를 나누는 사이고

싸우기도 하고 섭섭하게도 하지만 하나뿐인 소중한 내 편, 내 사람이다.

남의 편이 아닌 온전한 내 편으로 오래오래 함께 있어주기를 바라면서

허니, 알라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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