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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플로 Feb 20. 2021

바다쥐와 토모티아

고생물 TMI

2021-01-29


최근에 무척 오랜만에 명작 애니메이션... 이러면 어린이 명작동화 같은 느낌이고, 명작 성인용 애니메이션... 아니 이건 더 이상하고, 하여튼 걸작 애니메이션인 카우보이 비밥을 다시 봤다. 4화인 게이트웨이 셔플에 등장하는 악당은 극렬 환경단체 스페이스 워리어즈와 그 수장 트윙클 마리아 머독. 이들은 가니메데 바다쥐 보호를 구실로 테러 활동을 벌인다. 가니메데는 메칸더 V 의 콩키스타 군단이 유래한 곳...이라고 삼촌에게 들었습니다.


카우보이 비밥에 나오는 가니메데의 바다쥐는 그림으로 보건대 포유류 계통인 것 같다. 사실은 지구에도 바다쥐로 불리는 생물이 산다. 납작하게 눌린 고양이 헤어볼 같은 저 생물은 환형동물 중에서도 다모류의 일종으로 학명은 아프로디타 아쿨레아타(Aphrodita aculeata), 영어로는 sea mouse 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환형동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물은 지렁이일 텐데, 지렁이는 털이 별로 없는 빈모류에 속하고, 다모류는 갯지렁이처럼 털이 많은 종류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구의 바다쥐는 포유류가 아니라 갯지렁이와 가까운 관계인 셈이다. 바다쥐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아마 몸의 표면에 있는, 포유류의 것과 비슷하게 보이는 저 털들 때문일 것이다. 실제 저 털의 밑에는 비늘처럼 생긴 여러 개의 판이 바다쥐의 등을 덮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단단한 판 여러 개를 등에 지고 다니는 바다 속 생물로 연체동물의 일종인 다판류, 딱지조개라고 하는 종류도 있다.

몸을 보호하는 기능적인 측면에서 볼 때, (지구의) 바다쥐나 딱지조개와 비슷하게 여러 개의 단단한 판을 등에 붙이고 다녔던 생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아마 토모티아(Tommotia)일 것이다. 토모티아는 삼엽충이 나타나기 이전, 캄브리아기의 지층 중에서도 하부에 위치한 지층에서 발견되는 화석이다. 엊그제 시베리아의 토모트라는 마을 관련 정보를 찾아보려다가 페름기와 몰로토프 칵테일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 발단이 된 마을, '토모트'에서 '토모티아' 라는 화석의 이름이 유래했다.

얼핏 보면 작은 조개껍질 같기도 하고.. 심지어 발바닥 각질(?) 같이 보이기도 하는 이 화석들은 아직 그 정체가 확실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사진에 보이는 껍질 하나하나가 한 개체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었고, 지금은 껍질 여러 개를 등판에 붙이고 다니는 생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 같다. 껍질 하나의 폭이 1~2mm 정도 되니까 저 복원도가 실제 생물과 비슷하다면 몸길이는 1~2cm 정도였을 것이다.

쥐에서 시작해 등판을 가진 '벌레' 이야기로 마무리라니, 그게 뭐야. 하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동물은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외부에서 영양소를 흡수해야 하니 입이 있어야 하고, 입으로 들어온 모든 것을 다 소화시킬 수 없으니 남은 것을 내보내기 위해 항문이 있어야 하고, 감나무 밑에 떨어져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으니 뭐라도 이동수단을 만들어낸 생물일 뿐이다. 사람이 팔과 다리, 다 해서 네 개의 부속지(limb)를 가지고 있으니 그게 익숙해 보이는 것 뿐이고, 팔다리가 동물에게 꼭 필요한 건 아니라는 이야기. 누가 동물의 MVP(minimum viable product) 를 만든다고 하면 아마 그건 벌레와 가까운 형태일 것이다. 그래서 니체 선생도 일찌기 이렇게 말씀하셨지... (그래서 그런 거 아님)


"You have made your way from worm to man, and much in you is still w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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