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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이 Jun 26. 2022

Telc 독일어 C1 시험을 보던 날

위액이 퐁퐁 심장이 쫄깃!

앞에서도 말했던 것과 같이 나는 독일어 인증시험인 C1 시험을 너무나 쉽게 생각하고 독학으로 한달 여간 시험을 준비하여 도전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독일어 코스에 등록하게 되었고 4개월동안 강의를 듣게 되었다. 나는 독일어에 4개월을 투자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성질이 급해 독일어 책이나 신문은 모르는 단어가 하나만 나와도 덮어버렸던 내가 이번 강의를 통해 독일어 신문읽기가 생활화 되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큰 소득이었다.


C1 코스에는 나보다 독일어를 훨씬 잘하는 독일어의 고수들이 많이 있었고, 모의고사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코로나로 인하여 온라인으로만 수업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실전시험 대비 모의고사를 치러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나마 우리가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은 필기시험과 듣기시험 뿐이었지 프레젠테이션이나 토론 등의 말하기 시험은 실전처럼 준비해본 적이 거의 없었고 내 실력이 몇점인지 채점해 주는 이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나의 성적이 대략 어느정도로 나올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은 나의 장점보다는 고쳐야할 점만 지적해 주다보니 내가 프레젠테이션을 엄청 못하는 축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었다. 그런 와중에 나의 사기를 떨어 뜨리는 것은 '카더라'라는 소문이었다. 우리는 불안한 마음에 선생님께 혹시 시험 통과율이 어느정도 되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늘 둥글뭉실하게 결과는 학급구성원들의 실력에 달렸기 때문에 몇 퍼센트 확률이라고 딱 집어 말하기 어렵다고만 했다. 그래서 그러면 그 전에 맡았던 반에서는 대략 몇 명이 시험에 합격했냐는 질문에는 19명 중 7명이 통과했다는 얘기를 했다. 반 이상이 낙방했다는 말이다. 나의 사기를 확 떨어뜨렸다.


게다가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베를리츠의 전설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베를리츠 한 학급 전원이 불합격이었다는 사실. 믿거나 말거나..


그래서 강의가 끝나는대로 집에서 죽자사자 준비해서 시험에 꼭 붙어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 전쟁이다!


허나 그 생각은 취업으로 인하여 무산되고 만다. 새 회사에 취업하는 바람에 새로운 것을 배우느라 발등에 불이 떨어진 내게 한가하게 독일어 시험을 준비하고 앉았을 시간이 없었다. 먹고 사는 것이 시험보다 중요했다. 물론 집에서까지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집에서 회삿일에 대한 걱정을 해야했으므로 공부할 시간이 전혀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시험 당일까지 단 한자도 공부하지 않고 팽팽 놀다가 시험 당일 급하게 인터넷에서 C1 에세이 쓰기 표본을 복사해서 지하철에서 읽으면서 갔다. 중요한 문장을 배껴쓰기 위해 달달 외웠다.(이것은 아주 많은 도움이 되었다.)


시험은 프랑크푸르트 시내에 있는 어학원 베를리츠에서 8시 30분에 시작되었다. 핸드폰, 소지품을 맡겼다. 심지어 나는 가지고 간 물병이 불투명한 색이라고 해서 물병도 시험장에 들고 들어가지 못했다. 본인 확인을 하고 코로나 음성결과를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내 이름이 적힌 지정석에 앉을 수 있었다. 수험생 전원은 우리반 학생이었고 딱 한명이 외부에서 온 학생이었다.


필기시험과 듣기 시험은 우리가 대여섯 번 쳐보았던 모의고사 수준과 거의 비슷했다. 듣기평가에서는 워낙 찍은 것이 많아 평소대로 점수가 나올지, 아예 말도 안되는 점수가 나올지 예상하기가 어려웠다. 평소 모의고사에서는 그나마 늘 합격선 위로는 점수가 나왔으니 그 정도만이라도 나오길 기대했다. 그리고 에세이 쓰기는 다행히도 우리가 예전에 토론수업에서 얘기했던 주제와 같은 것이 나왔다.


'독일정부의 시내교통요금 무료정책에 대한 당신의 의견을 피력하시오!'


나는 지하철에서 외웠던 글쓰기 표본과 거의 흡사하게 내 의견을 피력해나갔다.


그리고 '부의 재분배'(Umverteilung des Reichtums)라는 어려운 단어까지 써가며 결론을 내렸다. 흡족했다. 점쟁이가 얘기한 대로 내가 과거운이 있다더니 과거운이 있긴 있나 보군 하며 약간 뿌듯해했다.


필기시험과 듣기시험은 12시무렵에 끝나고 점심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오후부터는 두 명씩 짝을 이뤄 프레젠테이션과 토론시험이 있을 예정이었다. 시험을 위해 뱃속을 든든하게 채워야 했다. 우리는 베트남 식당으로 가서 뜨근뜨근한 국수를 먹었다.  말하기 시험의 파트너는 당일 필기시험이 끝난 후에 발표되었는데 내 짝은 내가 원했던 Pinar였다. 그녀는 베를린의 한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인가를 영어로 배워 석사를 딴 배운 여자였는데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방면으로 잡다한 지식이 많았다. 우리반 선생님은 평소 토론을 시킬때 성향과 독일어 실력이 비슷한 사람끼리 파트너를 시켰는데 나의 파트너는 자주 Pinar였다. 그래서 나는 은연중 실전 나의 토론시험 파트너가 Pinar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잘됐다.


시험관이 두 명인데 반해 학생이 스무 명이었으므로 순서가 일찍 끝난 사람은 오후 2시경이면 시험장 문을 나설 수가 있었지만 늦게 배정되면 오후 4시까지 기다려야했다. 시험을 치른 학생들과 기다리는 학생들은 만날 수도 없었고 휴대폰을 사용하여 대화하는 것도 금지였다. 말하기 시험주제가 유출될 것을 막기위함인 것 같았다. 나는 거의 마지막 순서였으므로 우리는 두시간 넘게 시험장에서 기다려야 했다. 우리반에는 우리를 감시(?)하는 선생님이 계셨는데 캐나다에서 영어를 전공하고 베를리츠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셨다. 이 분이 어찌나 유머러스한지 2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의 긴장을 확 풀어주었다.


20명중 남은 여섯 명. 흰 티셔츠 입은 여자분은 러시아에서 독어전공하고 독어 선생님으로 재직하신, 러시아 이주 독일인.


나와 Pinar의 이름이 호명되고 우리는 옆교실로 향했다. 말하기 시험이 시작되었다. 말하기는 아래의 두가지로 이루어진다.

 

1. 프레젠테이션

주제에 맞는 프레젠테이션을 20분동안 준비하여 3분동안 발표하기, 파트너의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1분동안 요약하기, 관련 질문하기.


2. 토론

한 줄 문장을 읽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함과 동시에 상대의견에 대한 반박의견, 찬성의견을 말하기.


나의 프레젠테이션 주제는 '청소년의 학교에서의 핸드폰 사용에 대한 내 의견'이었다. 이 주제 역시 우리 반에서 한 번 토론해봤던가 에세이의 주제로 채택된 적이 있어서 나는 어렵지 않게 내 의견을 준비할 수 있었다. 우리는 20분동안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고 종이에 적어 시험관이 있는 교실로 향했다. 그때까지 나는 굉장히 편안한 상태였는데 시험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갑자기 몸이 얼어버렸다. 나는 면접을 보거나 시험을 볼때 긴장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나조차도 깜짝 놀랄 정도로 너무 긴장이 되었다.


첫 발표자는 Pinar였다. 나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Pinar가 발표하는 프레젠테이션의 주제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주제에 나온 단어 하나가 내가 처음 들어본 단어였다. 내가 모르는 단어가 나왔다는 것에 당황하여 그 다음 내용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그녀가 발표한 내용을 듣고 요약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어찌어찌 1분동안 요약을 하긴 했는데 그 내용을 듣고 질문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질문거리를 준비하지 못했다. 시험관이 이제 질문하세요! 라고 말했는데 나는 깜짝 놀라 뭘 질문해야할 지 몰라 망설였다. 얼굴이 붉어지고 귀가 불타오르고 심장이 요동치는 동안 10초가 지났다. 이런 바보! 시험중 10초나 허비해 버리다니...


그녀의 프레젠테이션 주제는 '정치인은 국내외 정치적 회동에서 명품을 입어야 할 필요가 있는가'(제대로 못들었지만 아마도)였다. 그녀는 정치인은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사람이므로 명품을 입는 것은 세금의 낭비라는 내용으로 3분동안 얘기했었다. 내가 버벅대며 겨우 찾아낸 질문은 '정치인은 국제적 만남에서 한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참가하므로 품격을 갖춘 명품을 입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것은 소비가 아니라 투자라고 생각한다.'라는 것이었다. Pinar는 자신은 개인적으로 국제회의장에 아프리카 정치인들의 울긋불긋한 전통의상이 보기 좋았다. 명품만이 품격을 갖춘 의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은 너무 횡설수설하는 동안 3분을 넘기는 바람에 시험관이 중간에 끊어버렸다. Pinar의 질문에도 횡설수설하느라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두번째 말하기 시험인 Zitat를 읽고 말하기 시험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목표가 있어야할까?'에 관한 것이었다. 이 문장을 읽을 당시 나의 심신의 상태는 이미 고갈되어 인생에 목표가 있든 없든 내가 무슨 상관이냐 싶었고, 그랬기에 내가 뭘 얘기했는지 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이리하여 말하기 시험은 폭망이었다.


나에 비해 Pinar는 너무나도 떨지않고 당당하게 말을 잘했다. Pinar는 시험에서 뿐만 아니라 늘 당당하고 확신에 차있는 사람이다. 그녀는 목소리는 작지만 말할때 남들을 집중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순발력도 뛰어나 독일어 퀴즈게임을 하면 대부분 1위, 못해도 늘 3위권 안에는 든다. 이런 사람은 말하기 시험에서 내용과 상관없이 남보다 높은 점수를 받을 확률이 높다. 그녀는 중간에 심지어 생글생글 웃기까지 했다. 시험장에서 나온 Pinar는 자기 심장소리 안들리더냐고 내게 물었다. 떨려서 도대체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나왔는지 생각조차 안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너는 나보다 떨지도 않고 잘하더라는 말을 했다. 웃자고 하는 소리인지 당최 모를 소리를... 그 소리는 전혀 나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다. 나는 빵점을 받을 것만 같았다. 시험장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나는 낙방하리라는 것을 굳게 믿었다. 낙방하더라도 재시험은 절대 안본다.


이럴줄 알았다면 여기저기 시험본다고 떠벌이지나 말걸... 쪽팔려서 못산다.


이런 나쁜 기분이 1주일동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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