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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이 May 11. 2020

독일서 오래 살아도 독일어는 어려워

초급단계에서 나가 떨어지는 독일어

1. 독일어 명사의 성과 형용사 변화


독일말에는 문법적으로 아주 복잡한 규칙들이 존재한다. 나는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웠는데 독일어 배움의 시작은 정관사 변화, 부정관사 변화를 달달 외우는 것이었다. 독일어를 배워 보겠다고 큰 맘먹고 시작해도 정관사 변화, 부정관사 변화, 형용사 변화를 배우다가 그 복잡함에 기가 질려 초급단계에서 나가떨어지는 사람들이 꽤 있을 만큼 독일어는 시작이 어렵다.


'내  아버지의 오래된 책'을 독일어로 말하자면,


Das alte Buch meines Vaters.


여기서 das는 책이 중성이므로 쓰여진 정관사, alt는 오래된 이라는 형용사인데 1 격 정관사 뒤에 오므로 어미변화를 하여 e가 붙었고 mein은 나의 라는 뜻인데 뒤에 오는 명사가 2 격 남성이라 es가 붙었고, Vater는 아버지란 뜻인데 소유격 뒤에 오는 남성 명사이므로 뒤에 s를 붙여줘야 한다. 여기서 Buch가 단수가 아닌 복수가 되거나 아버지의 책이 아닌 어머니의 책이라도 되면 중간에 오는 단어들의 어미를 죄다 바꿔야 한다. 엄청난 작업이다.


Die alte Bücher meiner Mutter.


독일어는 이렇게 머리가 아프고 복잡한 언어이다. 그런데도 독일인들 대부분은 별로 뇌를 쓰지 않고도 이렇게 복잡한 문법을 가진 독일어를 아무렇지 않게 구사한다.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독일서 20년을 살았지만 아직도 독일어를 쏼라쏼라 하지 못하고 머릿속에서 주격, 소유격, 남성, 여성, 중성 같은 것을 따져 문장을 배치하기에 바쁘다. 다만 초기보다 머릿속에서 조금 더 빨리 문장이 배치된다는 차이가 있고, 틀려도 시치미 뗄 재주가 늘었을 뿐.


나는 질서 정연하고, 규칙을 잘 지키고, 곧이곧대로 살아가는 독일인의 국민성이 이런 복잡한 독일어를 만들어냈는지, 아니면 반대로 복잡한 독일어 문법이 독일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알고 싶다. 독일어 언어학자를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동양의 언어에는 단수와 복수 구분이 거의 없는데 비해 서양의 언어에는 1까지만 단수, 2부터는 꼭 복수를 쓴다. 왜 서양 사회는 이렇게 단수와 복수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인지, 그렇게 구분함으로써 서양 사회와 사람들은 동양사람들에 비해 물체의 수를 어떻게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


그리고 독일어 명사에 골치 아프게 남성 여성 중성이 존재하는 이유는 도대체 뭔지. 영어처럼 정관사는 통일해서 The, 부정관사는 통일해서 a로 쉽게 써도 될걸 굳이 어렵게 모든 관사를 남성 여성 중성으로 구분해서 외우고 격변화를 해가며 언어생활을 하는 이유가 뭔지. 사람의 속성상 편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편하게 가는 모양이다. 독일어 명사의 3개의 성이 네덜란드로 건너가면서 2개로 바뀌고, 네덜란드에서 바다 건너 영국으로 가면서 이마저 없어진 걸 보면.


이렇게 단어를 세 가지 성으로 구분하는 것은 이 글로벌 시대에 많은 문제들을 야기한다. 외국인들이 독일에 대거 유입되면서 외국말이 독일 어화 된 경우가 적지 않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터키 음식 케밥이다. 60, 70년대 터키 이민자들이 폭증하면서 그들이 차린 케밥 식당이 골목마다 즐비하다. 이 케밥 식당은 독일을 통틀어 독일 식당보다도, 햄버거 집보다도 훨씬 많다. 케밥은 맛 좋고 저렴하여 독일의 국민음식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케밥이란 명사의 성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단어의 어감상 남성 아니면 중성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는 한다. 그리고 스시나 김치 역시 독일에서 아는 사람은  아는 음식인데 이것들의 성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한 번은 내가 어학원을 다닐 때 독일어 선생님께 김치의 성이 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잘은 모르겠지만 약간 중성처럼 들린다고 대답하였다. 방금  인터넷 독일어 사전 Duden에 찾아봤더니 김치는 남성 혹은 중성이라고 나왔다.


남성 혹은 중성. 이렇게 점점 많은 외래어들이 유입되고 그것들의 성이 사전에서조차 부정확하게 표기되는 것으로 봐서 나는 곧 독일 어의 성도 네덜란드 어의 성처럼 남성 혹은 중성, 그리고 여성 이렇게 두 개로만 분류될 확률이 높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게 국민들의 정신건강에도 좋고.


친구들은 내게 어마 무시하게 많은 독일어 단어 외우는 것도 일일 텐데 명사의 성까지 외우려면 머리에 쥐 나지 않냐고 물어온다. 처음엔 좀 그랬다. 다행히 오래 살다 보니 생소한 단어를 들었을 때 대충 단어의 성이 뭔지 감이 오긴 온다. 여성인 단어들은 감이 빨리 오고, 중성과 남성 단어들은 조금 헷갈린다.


2. 세분화된 독일어 단어들


독일에는 숲이 많고 공원이 많다. 당연히 거기에 서식하는 식물들도 많다. 그래서 그런지 식물에 관련된 독일 단어들이 한국 단어들보다 더 풍부하다. 식물의 가시에 해당되는 단어가 우리나라 말에는 가시 하나지만 독일말에는 두 개가 있다. 한 번은 방만구 씨가 내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장미에게는 가시(Dorn)가 있는 걸까, 아니면 가시(Stachel)가 있는 걸까?


글쎄다. 장미 가시가 어떻게 생겼는지 생각도 나지 않지만 나는 갑자기 그 질문을 받자 미국 그룸 포이즌의 노래 Every Rose has its thorn을 생각해내며 장미의 가시는 Dorn이겠지 하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틀렸단다. 아래의 그림과 같이 가시가 나무에서부터 뻗어져 나오면 Dorn, 나무에 붙어 있으면 Stachel인데 장미의 가시는 그림 B처럼 나무에 붙어 있으므로 Stachel이 있다는 것이란다. 아니, 요즘같이 알아야 할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 장미의 가시가 Dorn이든 Stachel이든 무슨 상관이람...



A: Dorn  B:Stachel


필요는 단어를 만들어 낸다.  독일에는 밥이라는 단어가 없다. 밥을 굳이 표현하려면 조리된 쌀이라고 표현해야 한다. 그만큼 독일 사람은 쌀을 안 먹으니 쌀과 밥을 굳이 구분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독일어에는 쌀과 밥을 구분하지 않는 대신 살아있는 소와 식탁 위에 올라온 소고기를 구분하는 단어는 있다. 소를 즐겨먹는 국민인 것이다. 희한한 것은 독일어에는 같은 고기임에도 불구하고 돼지와 돼지고기를 구분하는 단어는 없다.(영어에는 있지만)  물고기와 생선을 구분하는 단어도 없다. 한 면이 바다인 독일에서 물고기와 생선을 구분하는 단어가 없다는 건 이해가 가지만, 섬나라인 영국에서 물고기와 생선을 구분하는 단어가 없다는 것은 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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