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로 입과 뇌를 영어로 적셔놓은 것이 조금 아까웠다. 이미 입이 풀리고 뇌가 말랑말랑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이대로 다시 굳히는 것은 말짱 도루묵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때 더 나아가면 좋지 않을까..?
그래서 생각한 것이 전화영어였다. 수많은 유학생이 언어를 까먹지 않기 위해 실전감각 유지용으로 한다는 그 전화영어.. 그것을 워홀이 끝나고도 하지 않았었는데, 토익스피킹을 공부하고는 처음으로 고려대상에 올려보았다.
전화영어,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그 무시무시함.성실함에 기반이 되어야 완주가 가능하다는 그, 성실함의 반증 같은 것이여. 나는 적어도 나의 성실함, 아니 끈질김을 어느 정도 믿고 있었다.
대충 한국 드라마나 케이팝에 대해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는 그저 그런 전화영어는 정말이지 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돈 낭비, 시간 낭비, 능력 낭비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논재가 다양하고 기능적으로 확실한 교재가 존재하고, 강사와 수강생 사이에 상호피드백이 확실한, 그리고 혹시 모를 사태를 위해 홀딩 기능이 존재하는 플랫폼을 찾았다.
그렇게 선택한 곳은 '민병철유폰'이었고, 나는 '12주, 주 2회, 1회에 20분' 짜리 수강권을 신청하고, 수강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회사를 다니고 있는 중이어서 그런지 빡빡한(쓰기 과제도 존재하는) 수업준비를 회사에서 하는 것이 묘하게 시간을 절약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더 갓생을 사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갓생'이라는 단어를 정말 싫어하는데, 그 이유는 '왜 내가 갓생을 살아야만 살아지는가'하는 문제처럼 느껴져서, 지금 우리 사회가 정말 우리에게 무능하고 무자비하고 무례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져서 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일종의 반항심으로 내가 왜 '갓생'을 살아야만 살 수 있는 건데?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살아도 살아지는 세상이 모두에게 자애로운 세상 아냐? 이 무자비하고 잔혹한 세상!! 을 절로 외치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여기서 언급하는 '갓생'은 그런 의미보다는, 내가 내 계획대로 내 삶을 잘 꾸려나가고 있다는 자아존중감에서 비롯된 언어이다.
각설하고, 이것을 쓰고 있는 지금 내가 전화영어를 잘 완주했냐고 묻는다면, ㅎ.. 현재진행형이다.
아니 왜 12주라고 하지 않았냐고 물으신다면, 대답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 나는 환승이직을 위한 폭풍 입사지원과 논술시험, 면접 그리고 퇴사의 회오리에 휩쓸려 전화영어를 할 여력이 되지 않았었다. 그래서 분명 8월에 시작했던 전화영어가,5개월가량의 홀딩 기간을 가지고 지난달, 그러니까 24년 3월에나 여력이 생겨 다시 지속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갓생의 감각은 역시나 내 몸과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나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이었다. 온갖 일이 휘몰아칠 때는 갓생은 무슨 그냥 생을 살기에도 버겁고 빠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 반 씩 두 번을 전화영어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전화영어의 장단점에 대해서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장점은 무엇보다 다양한 주제를 영어로 말함으로써 내 언어 세계의 한계를 깨달을 수 있고, 그 깊이와 너비를 알고 또 마음먹은 만큼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단점은 뭔가 끝이 없다는 느낌이다. 해도 해도 끝날 것 같지 않은 느낌. 후반부에 가서는 컨디션이 안 좋을 때 당일 수업을 취소하는 때도 있었는데, 그렇게 되면 미래의 내가 하루에 수업을 두 번 들어야 하는 시기도 오니, 제발 부디 나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영어는 자신감이다. 그 부분에서 전화영어는 토익스피킹 보다 더 많은 자신감을 심어줬다. 아직은 실력을 종이로 증명할 필요가 있는 대한민국이지만,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조금 더 갖고 싶다면 전화영어로 차분히 진득하게 채워보는 것은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