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항상 우리의 하루하루를 시간여행한다
어바웃 타임 About time, 2013
스포일러와 글쓴이의 주관적인 의견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모두 관람한 뒤에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평범한 시간여행자 _ 팀
키가 너무 크고 너무 마르고 머리색이 너무 오렌지 색인 팀은, 소심한 숙맥이다. 여자와 함께 있는 것에 서툴다. 뉴 이어 파티에서도 두 달 동안 여름을 함께한 샬롯에게도 우연히 만난 메리에게도 그랬다. 불행 중 다행으로 시간여행은 팀을 조금씩 나아지게 만들었다. 팀은 선한 사람이었다. 나쁜 말을 할 줄 모르고 순진하고 친절하다. 그래서 해리의 연극을 되돌린 것이다. 메리와의 헤어짐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메리를 다시 찾는 여정은 길었다. 무모할 정도로 절실했다. 하지만 팀은 변호사였다. 말로 한 사람의 인생을 구원하는 사람. 팀의 언변은 뛰어났다. 물론 긴장이나 당황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투명한 사람이었지만, 아버지로 부터 물려받은 재치와 유머감각은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재주가 있었다. 팀은 메리가 사랑에 빠질 만큼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있었다.
시간여행은 팀을 빠르게 성장시켰다. 인생을 함께 할 동반자를 만나게 했고, 소중한 사람을 지켜내는 방법을 알려줬고, 또 떠나보내는 법을 일깨워줬다. 팀의 성장이 옳은 방향으로 흘렀던 것은 팀이 옳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여행을 이용해서 위기를 무마한 적도 있지만, 결국 그 선택들은 모두 팀의 결정이었다. 팀은 못된 맘을 먹고 나빠질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착한 사람이었다. 정직하고 바른, 단순하지만 적절한, 그런 좋은 사람이다.
시간여행의 교훈은 간단하지만 결코 간단하지만은 않다. 순간을 살아가지만 순간을 만끽하기엔 너무도 순간이 나날들. 그 찰나를 온전히 느끼는 삶은 쉽지 않은 노력과 배려가 필요하다. 팀은 이제 시간여행을 하지 않고도 오직 이 순간만을 위해 시간여행 온 여행자처럼 모든 순간을 소중하게 그리고 진실되게 보낸다. 모두가 그렇듯 팀 역시 흐름 그대로의 시간을 보낸다, 누구보다 더 정성스레.
평범하지 않게 사랑스러운 여자 _ 메리
팀의 엄마가 메리에게 약점이 뭐냐고 물었을 때, 메리는 가장 먼저 '자신이 없는 편'이라고 말한다. 메리는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다. 그녀는 자존감이 낮았다. 스스로 조안나보다 못생겼다고 생각하고, 처음 만난 남자의 호감 표현이 진짜인지 되묻기도 한다. 메리를 놓친 팀이 케이트 모스 전시전에서 메리를 만났을 때, 팀이 메리에게 남자 친구가 없지 않냐고 하자 메리는 "내가 남자 친구가 없게 생겼어요? 내가 남자 친구가 없게 생겼어?"라고 묻는 모습은 메리가 얼마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얕은지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보수적인 부모님이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 친구를 싫어할까 봐 남자 친구에 대해 한참을 설명하고, 팀의 엄마가 건넨 예쁘다는 말에 마스카라와 립스틱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모습 그대로도 솔직하고 아름답다.
메리는 팀과 닮은 점이 많다. 감정이 표정에 다 드러나고, 숨길 줄 모른다. 기분 좋게 하는 유머감각과 모르는 사람의 인사를 무안하지 않게 받을 줄 아는 선함까지 비슷하다. 하지만 메리는 휘말리지 않는 강단이 있는 사람이다. 팀에게 적당히 여지를 줄 줄 알고, 킷캣의 선택을 소중히 할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이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말할 줄 아는 건강한 사람이고, 자신만의 논리가 확실한 똑똑한 사람이다.
메리는 팀이 한눈에 사랑에 빠질 정도로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조금은 촌스러운 원피스도, 새로 자른 짧은 앞머리도 너무도 잘 어울린다. 신부 입장 음악으로 자신은 싫어했지만 팀이 사랑한 일 몬도를 재생한 메리는 다정한 사람이다. 사랑이 넘치고 모두에게 어떻게 해야 그들이 행복한 지 아는 사람 같다. 결혼식 날 밤, 팀에게 "이제 시작이네. 진짜 많은 일들이 있겠지? 신난다!"라고 말하는 모습은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메리의 성향을 보여준다. 시간여행자 팀이 메리 같은 사람을 만난 것은 정말 큰 행운이다. 메리는 사랑을 받을 줄도, 줄 줄도 아는 사람이다. 앞으로 팀과 함께할 그녀의 인생은 보지 않아도 사랑이 넘칠 것이다.
감독 _ 리처드 커티스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리처드 커티스는 <네 번의 장례식과 한 번의 결혼식>으로 1995년도 각본상을 휩쓴다. 이후 <노팅 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각본을 쓰면서 각본가로서의 명성을 차곡차곡 쌓는다. <러브 액츄얼리>를 쓰고 직접 메가폰을 잡으면서 영화감독으로 데뷔한다.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 바로 <어바웃 타임>이다.
리처드 커티스의 전공은 사랑이다. 그의 영화에는 사랑에 대한 따스한 마음이 어려있다. <어바웃 타임> 역시 사랑에 대한 묘사가 부드럽고 다정하다. 팀과 메리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애정이 느껴진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조연들까지도 나쁘기 위해 나쁜 사람은 없다(킷캣의 똥차 남자 친구 지미를 제외하고). 선하고 가치 있는 인물들로 가득하다. 진짜 우리 삶보다 더 바보 같지만 순하다.
리처드 커티스의 전공이 사랑임에도 이 영화의 제목이 <어바웃 타임>인 이유는 아마 사랑보다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순간에 더 의미를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의 따듯함보다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팀이 메리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동생 킷캣을 보살피고, 아버지와 이별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아주 극적으로 그려지지 않지만 충분히 마음을 적신다. 함께 하는 이의 소중함, 하루하루의 가치, 인생의 찬란함을 깨닫게 해 주고 시간의 의미, 행복의 의미를 곱씹게 한다. 특별한 카메라 워크나 눈의 띄는 조명이나 상징 없이 서사와 대사만으로 은은하게 관객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관객 _ 민감한 고슴도치
원래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의 거의 모든 유명작이 내 평점의 상위권에 랭크되어있다. <어바웃 타임>은 특히, 영화는 재미를 위해 존재한다는 나의 신조와 작은 판타지가 가미된 로맨스를 사랑하는 나의 취향 그리고 서정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의 감성이 모두 충족되는 몇 없는 걸작이다.
영화를 볼 때 나의 습관은 자꾸 인물 속에서 나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볼 때도 그랬다. 아주 작은 부분 부분들에 공감하며 캐릭터와 사랑에 빠졌다. 이 영화 속 인물들은 어딘가 모자라거나 특이하지만 나름의 매력이 넘치고 생기가 가득하다. 그 점이 이 영화를 귀엽게 또 따듯하게 만든다. 매력적인 인물들이 자기 멋대로 움직이고 이야기하는데 하나도 시끄럽지 않다. 오히려 재밌다. 즐겁다. 행복하게 한다.
팀의 능력이 부럽다기보단, 내가 그 능력을 가졌을 때 팀처럼 살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팀처럼 정직하고 단순하며 적당히 행복하게 말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도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데, 팀은 아니다. 놀랍다. 나라면 아빠의 대사로 잠깐 나오는 돈을 좇다 인생을 망친 팀의 할아버지처럼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팀이 쉽지 않은 선택들을 턱턱 해내고 행복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은 그가 애초에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가까운 것. 그 간단하고도 무거운 진리를 몸으로 알고 있는 사람.
메리의 사랑스러움도 레이첼 맥아덤스라는 배우의 사랑스러운 연기가 더해지면서 화면에 넘실거렸다. 사랑스러움을 인간화한다면 그건 <어바웃 타임>의 '메리'일 것이다. 약점과 장점이 공존해서 아름다운, 자신을 잘 알고 모르는 것은 안다고 하지 않는 정직함을 가진 메리가 부럽기도 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영화 속 인물이지만 세상 어딘가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입체적인 인물이었다.
잠깐 유행했던 말이 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이 영화의 주제와도 일맥상통하는 말인 것 같다. 정말 쉽지 않은 말이다. 리처드 커티스는 그 말을 아주 따듯하고 귀엽게 풀어냈다. 순간과 시간의 소중함이 와 닿게 만드는 영화다. 볼 때마다 다짐하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진다. 그래서 결심했다. 그럼 이 영화를 더 자주 봐도 좋겠다. 자주 각성하면 팀처럼 행복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행복한 순간에 행복한 줄 알고싶다. 행복을 느끼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