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체전 준결승전인가를 단체로 응원 갔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뭔 농구야~ 수업시간에 가는 거니까 개꿀~’ 이런 생각으로 갔었는데, 그것이 나의 첫 농구 직관이었다. 아주 어렴풋이 ‘농구.. 꽤 재밌는데?’를 느꼈고, 바쁜 학창 시절을 보내며 농구는 내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 갔다.
그러다가 만화책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슬램덩크를 접하게 됐고 완전판 만화책을 읽었는데... 어머나, 이거 명작이다.
풍문으로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가 애니메이션 영화의 정수이고, <슬램덩크>가 만화책의 정수이다’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것이 사실이었다. 내가 두 눈으로 확인했다. 한 페이지가 한 컷인 경우도 있고, 무려 책을 펼쳤을 때 두 페이지 모두 한 컷인 경우도 있었다. 정말 만화책으로 할 수 있는 모든 표현을 다 해내고 있는 만화였다.
그런 형식적인 것을 제외하고도, 농구라는 스포츠에 대한 향수와 새로운 호감과 기대감, 벅참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만화책 말고도 <TV애니메이션 슬램덩크>가 나와 있었지만, 도저히 그 화질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4K 영화 화질에 익숙해진 영화전공자가 확실했다. 그래서 움직이는 그림 말고 움직이는 사람을 보고 싶어졌다. 농구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
그때, ‘농구 직관’이 내 버킷리스트에 올랐다.
그리고 모두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던 영화 <슬램덩크: 더 퍼스트>가 23년 1월에 개봉했다. 영화의 개봉은 ‘농구 직관’에 대한 마음에 다시 불을 지폈고, 그렇게 나는 2월의 안 해본 일로 ‘농구 직관’을 고르게 됐다.
또 마침, 농구의 계절이었다. 농구는 겨울 스포츠였다. 10월 말부터 플레이오프와 챔피언 결정전을 하는 5월 초까지, 농구는 겨울을 꽉 주름잡고 있었다.
또또 마침,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시투를 하러 온다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온 우주가 나보고 농구 직관을 가라고 하는 고사를 지내는 느낌이었다.
가야 한다. 아이돌 팬들의 피켓팅을 이겨내고 나름 괜찮은 자리를 쟁취해 낸 나는, 기쁜 마음으로 경기날을 기다렸다.
나는 응원하는 팀은 없었지만, 홈팀 자리에 앉아서 응원을 따라 하면서 보는 것이 직관의 묘미라는 글을 보고, 홈팀 자리를 예매했다.
시투는 생각보다 찰나였다. 내가 궁금했던 아이돌은 새끼손가락 사이즈로 내 시야를 아른거리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짧은 실망을 뒤로하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농구공이 하늘 높이 뜨고, 선수들이 농구공을 잡아채며 경기의 시작을 알렸다. 자의로 처음 보는 농구 직관의 경험에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경기에 집중했다.
경기는 생각보다 아주 빠르고 역동적이었다. 공수전환이 진짜 빠르고, 골도 홈팀 어웨이팀 할 거 없이 마구 들어갔다. 공이 계속 림을 통과하며 점수를 내자, 나도 괜히 들떴다. 특히 3점 슛이 우아한 슛폼 끝에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림에 닿지도 않고 정확히 네트만 치면서 깔끔하게 들어갈 때, 정말 짜릿했다.
공수전환이 빠르다 보니, 응원가도 응원 소리도 쉴 새 없이 들려오고 쉴 새 없이 바뀌었다. 나도 질세라 공격할 때는 응원가 장단에 맞춰 박수를 쳤고, 골을 넣으면 넣은 선수의 이름을 연호했다, 수비를 할 때면 ‘디펜스’를 크게 외쳤다. 사람들 틈에서 목청 높여 소리를 지르고 크게 박수를 쳐대니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슬램덩크> 덕분에 대략적인 선수 포지션과 룰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경기가 더 재미있었다. 그래도 뭔가 부족했다. 자꾸 심판이 휘슬을 부는데, 나는 왜 휘슬을 부는지 몰랐다. 나만 몰랐다. 하, 너무 궁금했다. 왜 휘슬을 부는지, 왜 휘슬을 붐과 동시에 팬들이 항의하는지 좋아하는지, 나는 알 길이 없었다.
나의 호기심이 화륵 타올랐다. 알고 싶었다. 경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핸드폰으로 열심히 농구 룰을 찾아봤다. 집에 도착해서도 원래 알고 있었던 선수 포지션 내용을 또 열심히 읽었다. 농구 중계 일정을 확인하고, 캘린더에 농구 경기날을 기록했다.
그렇게 나의 첫 직관은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었고, 지금까지 나는 5번의 농구 직관을 갔다. 농구 중계방송은 정말 샐 수없이 봤다. 플레이오프와 챔프전은 약속 중간에도 친구를 꼬셔서 노트북으로 경기를 감상했다.
그즈음,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K-POP 덕질이 시들해졌다. 같이 덕질 이야기를 하던 친구에게 “요즘 케이팝 노잼..”이라고 말하니, 친구가 놀라며 “아니, 무슨 일이야?!”를 외치기도 했다. 케이팝보다 농구가 훨씬 재밌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시작한 덕질이 이렇게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것이다.
덕질이라고 하기엔 아직 내 성에 차지 않지만, 농구 직관이라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진짜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뭘 하고 싶어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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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1일에는한국농구리그(KBL) 개막합니다! 또 이번달에 열리는 아시안 게임에 농구 대표팀도 출전합니다! 9월 26일에 첫 경기가 있고요, 30일(추석연휴 토요일) 12시에는 한일전도 합니다!! 또 한일전은 이겨야 되잖아요? 렌선응원이라도 갑시다!!!! 한국농구 화이팅!!!! 대한농구협회 일 좀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