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아침, 밥 짓는 냄새

겨울의 시작은 냄새였다.

by 깊고푸른밤

(이미지출처 : pixabay)


지금 부엌의 온도에서, 오래된 부엌이 겹쳐질 때


겨울 새벽은 늘 비슷한데,

지금의 부엌에서 아주 약한 온기가 올라오는 순간,

사라졌던 집의 새벽이 겹쳐지는 때가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문틈을 지나온 미세한 김의 감각만으로

발밑 공기의 결이 옅게 달라진다.


그 감각은 여전히 낯설고, 또 익숙하다.

온도는 사라진 시간을 오래 붙들어 두는 쪽에 가깝다.


쌀 씻는 물의 소리


겨울에 쌀을 씻으면 소리가 달라진다.

찬물 속에서 쌀알이 더 단단하게 부딪히는 소리.

그 둔탁함 속에 공기의 차가움이 그대로 들어 있다.

물을 여러 번 갈아 헹구다 보면

손끝이 서서히 붉어지고,

그 붉음은 곧 집 안에 밥 냄새가 퍼질 거라는

오래된 신호가 된다.


지금의 부엌에서도 그 소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싱크대의 재질이 바뀌어도

겨울 물이 닿는 음색은 변화를 잘 허락하지 않는다.

(이미지출처 : 구글)


김이 피어오르는 순간


뚜껑이 아주 조금 들리는 순간,

부엌은 겨울과 다른 계절의 경계를

잠시 넘어선다.

햇빛이 없는 새벽이어도

하얀 김은 사람의 호흡처럼 부드럽게 번진다.


그 냄새 속에는

쌀의 단맛이 아주 희미하게 깔려 있고,

달궈진 금속의 향,

오래된 나무장의 묵은 냄새까지

겹겹이 배어 있다.


지금의 부엌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가전제품은 달라졌지만

밥 냄새가 공기를 차지하는 방식은

그때와 지금 사이에 거의 틈이 없다.

냄새는 물건보다 오래 남는다.

겨울 부엌은 그렇게 다시 모습을 얻는다.

(이미지출처 : pixabay)


밥 한 그릇의 구조


겨울밥은 유난히 단단하게 지어졌다.

찬 공기 속에서 식어 갈수록

쌀알 하나하나의 윤곽이 또렷했다.

숟가락을 넣으면

단단함과 따뜻함이 손끝으로 동시에 전해졌고,

그 감각만으로

사람의 하루가 조금 덜 추웠다.


지금의 밥솥은 훨씬 편리해졌지만

잘 지어진 밥이 주는 감각은 단순하다.

단순한 것이 오래 남는 법이다.

집의 구조가 몇 번 바뀌어도

밥 한 그릇만큼은

늘 같은 방식으로 사람을 따뜻하게 만든다.


여운


겨울의 시작을 알려주는 건

첫눈도, 날씨 앱의 숫자도 아니었다.

아침 공기보다 먼저 깨어 오르던

밥 짓는 냄새였다.


지금의 부엌에서도 그 냄새가 피어오르면,

사라진 계절들이 조용히 돌아와

식탁 위의 공기를 천천히 채운다.


그리고 그 겹침 속에서

겨울은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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