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똑쓰니 Oct 17. 2021

이렇게 된 이상 단골이 되어야겠어!

한밤중에 큰맘 먹고 주문한 배달음식이 두 번이나 잘못 왔다.

    평소보다 많은 일을 한 날에는 보상심리가 발동되는 건지 괜히 야식이 당긴다. 운동 습관을 들이겠노라 한동안 열심히 타던 실내 자전거도, 아침이 되자마자 먹으면 된다며 당장의 식욕을 참아내던 지난날의 다짐들도 눈에 밟히지 않는다.

    위장보단 마음이 허할 때. 그럴 땐 무언가를 꼭 먹어야만 할 것 같다. 그렇게 해서라도 허기짐을 채워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야심 차게 시킨 야식이 두 번째 잘못 배달되고 있다.


    많은 걸 바란 건 아닌데. 스무디 한 잔과 케이크 두 조각 먹기가 참 쉽지 않다. 한 밤중의 카페 배달. 배달 예정 시간 60분을 꽉 채워 겨우 받은 포장 용기에 불청객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당근 케이크와 오레오 케이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생크림 카스텔라 하나가 덩그러니. 메뉴도 다르고 개수도 다르다.

   친절히도 다시 보내주시겠다는 사장님의 말씀에 느긋한 마음을 바로잡았건만, 두 번째로 도착한 녀석도 생크림 카스텔라다. 이번엔 초코 마카롱도 함께.


    어머, 정말 죄송해요. 밤에는 저 혼자 근무를 해서 정신이 없다 보니… 다시 보내드리겠습니다!

    아녜요. 바쁘신 것 같은데 그러실 수 있죠. 천천히 보내주세요~


    첫 배달 후 나누었던 통화가 귓가를 맴돈다. 새로 거는 전화가 그 아름다웠던 대화를 시들게 하는 건 아닐지 걱정에 잠긴다.


    다시 전화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먹어야 할까. 생크림 카스텔라도 나쁘진 않은데 이렇게 된 이상 노선을 바꿔? 사장님도 친절하셨으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근데 이 마카롱은 뭐야. 내 것이 아닌 게 온 거면 큰일인데! 


    결국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첫 번째는 뒤바뀐 게 맞고, 두 번째는 제대로 갔으나 제대로 담기지 못한 거라고 설명해 주신다. 먼저는 밀린 주문에 허덕이다 주문서를 잘못 붙이셨고, 다음에는 서비스를 넣어 다시 보내신다는 게 그만 잘못 간 메뉴와 가야 했던 메뉴를 헛갈리셨다고.

    연신 죄송하다, 괜찮으시다면 새로 또 보내드리겠다 말씀하시는데 내가 더 안절부절이다.


    이대로도 괜찮다는 나와, 해결하지 못하는 마음이 더 무겁다는 사장님의 대화가 한참 이어졌다.

    꼭 다시 보내셔야겠다는 사장님의 말씀에 그럼 다음에 또 시킬 테니 그때 함께 보내달라고 일단락… 되는가 했더니 10분 뒤, 순간적으로 환불을 못 떠올리셨다며 계좌번호를 보내 달라신다.


    정말 책임감 높으신 분이네. 잘못 온 케이크도 그냥 먹으라 하셔 놓곤 환불까지. 되려 내 마음이 더 무거워졌어. 


    그 무게를 어떻게 덜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곳을 더 자주 찾는 것이 가장 나은 보답일 거라는 결론을 얻는다.

    그리곤 고마움을 미뤄두진 않으려고 계좌번호와 함께  마디 말을 덧붙여 문자를 쓴다.


    어느덧 카페 마감이 가까운 시간임에도 장문의 답장이 돌아왔다.


(파란 말풍선: 나 / 검은 말풍선: 카페 사장님)


    한밤중에 큰맘 먹고 주문한 배달음식이 두 번이나 잘못 왔다. 하지만 당혹스러움은 이미 잊은 지 오래.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담은 따뜻함만 맴돈다.


    달달한 포만감과 함께 침대에 누워 먼저 했던 결심을 한 번 더 되새긴다.


    이렇게 된 이상 단골이 되어야겠어!





TMI 한 스푼

돈쭐 내드리겠단 다짐이 무색하게도, 슬쩍 넣은 다음 주문에 사장님께서 서비스로 뒤통수(?)를 치셨다. 생크림 카스텔라로, 마카롱으로, 환불로 넘치도록 끝맺음된 그날 이후로 어째서 또 다른 기회를 기다리고 계셨던 건지! 아무래도 이 동네를 떠날 때까지는 이곳을 지독하게 찾을 듯싶다.


뒤통수(?)의 실체


커버 이미지 출처: flaticon.co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