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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쓰니 Oct 18. 2021

오늘 퇴사를 하고서야 그때의 네가 보이기 시작했어. ①

 어떤 과정과 감정을 지나온 건지 어떤 것도 가늠할 수가 없었으니까.

    처음 회사를 다니게 되었을 때, 해 볼만 하다는 생각과 오래는 못 하겠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번갈아 하곤 했다.

    일을 배우는 건 재밌는데 사내 분위기를 파악하는 건 힘들고, 점심 메뉴는 반갑지만 먹는 속도를 맞추는 건 괴롭고, 상사와 잘 맞는다 싶다가도 한순간 답답해 미칠 것 같은. 그런 변덕이 들끓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파도가 잠잠해지기 시작하면서 나는 더 이상 우리 회사와 우리 팀, 나의 동료들과의 관계 혹은 나의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집에 가고 싶은 직장인이 되어있을 뿐이었다.


    오늘도 무사히 출근했으니 퇴근할 일만 남았군. 점심시간이 되었다는 건 퇴근이 가까워졌단 뜻이잖아?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걸 보니 슬슬 퇴근해야겠어.


    월요일이 시작되자마자 금요일을 기다리고, 금요일 퇴근과 동시에 가장 행복한 밤이 실시간으로 지나가고 있음에 슬퍼하고, 토요일만 시작되어도 월요일을 걱정하는. 흔하다면 흔한 회사원의 모습이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좀 더 지나 퇴사를 앞두게 되었을 때, 나는 재직 중에 그렇게나 퇴근과 금요일 밤을 기다렸던 나름의 이유를 찾았다. 그저 여러모로 회사생활과 맞지 않았기에 마음 상태 역시 그러했던 거라는 결론이었다.

    파도가 잠잠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파도 밑으로 내려앉고 있었던 것이다.


    회사와 잘 맞고 자신의 밥벌이에 백 퍼센트 만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만. 어쨌든 나에게는, 몇 가지 개인적인 사정과 그렇게 이어지는 매일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무상감이 퇴사를 결심하게 했다.

    재밌거나 보람차거나 열정이 샘솟는 시간들도 물론 많았다. 그것도 꽤 많이. 다만 그것들이 눈에 밟히지 않을 정도로 떠나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기에 마음을 굳힌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어영부영 시작하게 된 회사원으로서의 일상에 나도 모르게 지쳐있었다는 걸 스스로 밝혀내고 나서야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었다.


    내 오랜 친구 M.

    나보다 몇 달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해 그 사이 두 번의 퇴사를 경험하기도 한, 그 친구와의 지난 대화를 되짚어보게 된 것이다.


    처음 맡은 일이라 실수를 했는데 크게 혼나서 힘들어.

    일을 자꾸 떠넘기고 눈치를 줘서 힘들어.

    오늘은 정말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괜히 트집 잡혀서 힘들어.

    그냥… 좀 힘들어.


    의류 회사에서 일했던 M은, 담당이 아닌 일을 떠안거나 밤낮없이 불려 다니면서 출근과 퇴근의 경계가 모호한 생활을 했었다. 습관처럼 힘들다는 말을 했었다. 잘 지내냐는 안부에도, 오랜만에 만나 수다를 떠는 중에도 시작 혹은 끝이 한숨과 함께일 정도로.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언제나 “그렇구나. 에고, 힘들겠다.”였다. 힘들다는데 뭘 어째. 내가 그 상사 딱밤을 때려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때려치우라며 손 잡아끌곤 생계를 책임져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래서 우리 중에 가장 먼저 어른이 된 게 멋있다는 격려와, 고생하는 거 보니 마음이 안 좋다는 위로를 되풀이하곤 했다.


    그런데 M이 어느 날부터 힘들다는 말을 ‘그냥’이란 단어로 대신하기 시작했다.

    회사는 어때? 뭐, 그냥. 요새도 상사가 계속 힘들게 해? 그냥 그렇지.


    그러다 또 어느 날부터는 힘들다는 말 자체를 안 하기 시작했다.

    잘 지내? 비슷하지 뭐. 옮긴 직장은? 전보다 나은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그래.


    “이제 좀 익숙해졌나 보네? 다행이다!”


    그 후로 얼마 안 가 M이 두 번째 직장까지 그만뒀다는 소식을 들었고, 고향에서 당분간 쉴 거라기에 푹 쉬라는 말도 주고받았던 기억이 난다.


    M의 대답처럼 ‘그냥’ 그런 줄 알았다. 좀 힘들어했고, 그렇지만 그럭저럭 괜찮아졌고, 그러다 퇴사를 하기도 한 거라고.

    쉽지 않은 결단을 두 번이나 내린 것이 대견하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M이 어떤 과정과 감정을 지나온 건지 어떤 것도 가늠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냥, 좋은 말만 해주고 좋은 것만 보려 했다.





TMI 한 스푼

먹는 속도가 느린 편이라 회사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게 모두가 나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거였는데, 실제로는 걱정과는 반대로 빨리 먹는 편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눈치 보느라 속도가 빨라졌나 싶었지만 친구들을 만나면 또 가장 느린 편. 알고 보니 평소엔 말하느라 밥을 안 먹어서 느린 거였다. 회사에선 말수가 급격하게 줄어서 그만큼 밥을 비운 거였다는 웃픈 결론.


커버 이미지 출처: flatic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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