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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프더레코드 Jul 28. 2021

이대 다니는 여자

삶과 사랑 이야기 #2

2001년 설 명절의 이야기다. 아내는 이 사건으로 집안 최초의 신여성으로 공인인증을 받는다.     


우리 집안에서 부산 외숙모는 항상 논란의 대상이다. 시누이 올케 관계인 어머니는 당연히 외숙모를 별로 안 좋아 한다. 너무 세속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사실 어머니는 교회 안 다니고 예수 안 믿으면 누구든 별로 좋아하지 않으신다. 같은 이유에서 마산 외숙모랑은 친자매 이상으로 친하게 지내신다.


그래도 부산 외숙모는 가난한 김씨 집안의 맏며느리로 들어와 천하의 구두쇠 외할아버지와 더이상 부지런할 수 없을 정도로 부지런한 외할머니 밑에서 살았다. 원래 억척스런 사람이 어디 있겠나. 환경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겠지.


어머니는 동의하지 않으시겠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외숙모가 독해진 것에 대해 이해를 하려 하고, 또 며느리들에게 무섭게 대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래서인지 나와 외숙모는 은근히 친하고, 통하는 구석이 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4대째 예수믿는 집안인 우리집은 제사를 안 지내지만 외가는 명절 때 꼬박꼬박 제사를 지낸다. 기혼 여성들은 알 것이다. 제사가 얼마나 짜증나는 일인지. 특히 며느리로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얼마나 아득한 일인가?     


아내의 집안도 뼈대있는 기독교 집안이다. 장모님은 비록 은퇴하셨지만 전도사님으로 시무했고, 아버님은 목사님이기도 했다. 하여 아내에게는 제사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하지만 제사 음식은 잘 먹는다. 귀신이 양념을 쳐서 맛있다나 뭐라나. 음... 지독한 실용주의자.


어쨌든 그날 외숙모는 잔뜩 뿔이 났다. 비록 방계이긴 하지만 집안에 처음 들어온 조카 며느리가 제사 지낼 때는 당당히 "자빠져 자다가"(당시 숙모의 표현을 인용하였음) 밥먹을 땐 음식 맛있다고 "아! 숙모님 너무 맛있어요"라고 재잘거리니 당연히 그렇지 않겠나. 만약 아버지 어머니가 안 계셨더라면 싸대기 백대를 맞았으리라.


후일 큰 사촌형이 결혼 한 뒤 형수가 외숙모에게 갈굼 당하는 걸 봤는데, 아휴... 말도 마시라다. 오줌 지릴 뻔 했다. 시어머니 잘 만나던가, 안 만나야 한다. 그래도 아내가 아주 몹쓸 눈치구더기는 아니다. 밥먹고 설거지는 하려고 했다. 어머니는 말리셨다. 임신했으니까 쉬라고. 그 순간 나와 부산 외숙모의 눈이 마주쳤는데, 그 불타는 분노의 눈동자를 아직 잊을 수 없다.

  

아내는 팔을 걷어 붙이고, 설거지에 돌입했다. 속력이 의외로 빨랐다. 외숙모가 품평의 멘트를 날렸다. "애가 좀 전하고는 다르게 손이 빠르네, 살림 잘 하겠네"(사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아내의 설거지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잘 하지 않는다. 주로 내가 한다. 둘 다 누가하든 무슨 상관이냐주의자. 하지만 주로 내가 한다. 내가...)


어쨌든 아내의 손은 더 빨라졌다. 그릇 두 장이 와장창 깨졌다. 거실에서 과일 씹어 먹으며 프라이드(여하튼 격투기였다)를 보던 집안 남성들의 눈이 모두 주방으로 향했다.

외숙모가 폭발했다.

"아 진짜, 이 귀한 그릇을 깨 먹으면 우짜노?"

그러나 묘한 신경전 속에 안 그래도 날이 서 있던 어머니가 돌직구를 날렸다.

"와 우리 아(며느리) 보고 뭐라하노? 아쉬우면 욱이랑 철이랑 퍼뜩 장가보내던가!"


숙모는 질 생각이 없었다.     

"동생 니 며느리한테 너무 온냐 온냐 하는 거 아니다"     

빅뱅의 원인 제공자인 아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손에서는 피가 나고 있었다.     

이 상황이 못마땅한지 아버지는 헛기침을 하고는 배란다로 나가 담배를 무시며 나즈막히 "축구다 축구"라고 읊조렸다. 나도 뭔가 해야되나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는데 마산 외삼촌이 내 무릎을 지긋이 눌렀다.


어머니는 며느리의 상처부위에 마산 외숙모가 찾아주신 옥도정기(빨간약)를 바르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우리 아 이대생이다. 이화여대 국악과. 애초에 악기 타는 손에 물 묻히고 이러면 안 되는 거 아이가. 니 저 가 쉬라."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축구야. 과일이나 무라"


 뒤로 아내는 웬만해선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설거지 꺼리를 만들지 않는다. 어떻게든  가족 외식으로 몰고 가기 때문이다. 명절에도 그렇고 평소에도 그런다. 현명한 전략전술이 아니라   없다. 그냥 그렇게 살면 된다. 받아들이면 아무 문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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