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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프더레코드 Jul 29. 2021

어머니의 태몽

삶과 사랑 이야기 #3

2000년 10월이던가.

결혼을 할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던 대학교 3학년 가을날. 연애도 다소 시들해졌던 그 때.     

갑자기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고, 엉뚱한 말씀을 하셨다.     

"니 뭐 좋은 일 있나?"     

"예? 아무일 없는데요?"     

"아니~. 꿈에 니하고 똑같이 생긴 나무가 있는데, 거기 진짜 먹음직스러운 열매가 막 맺혀있는거라. 그래서 뭐 좋은 일 있나 싶어서. 보통 이런건 태몽인데, 거 참 이상하네."     

"에이~ 설마. 엄마도 참. 무슨 그런 이상한 꿈을 꾸고 그랍니까. 복권이라도 사야겠구만요."


두두두.

설마가 사람 잡았다.

한 달 뒤 여자친구의 임신 사실을 알았다. 무뚝뚝한 나의 성격에 질려버린 아내가 세번째로 이별을 통보한 며칠 뒤, 학교 정기연주회에 무작정 처들어가 용서를 구한 직후였다.     

아! 테스터기에 당당히 찍힌 선명한 보라색 두 줄을 봤을 때의 현기증이란...     

고백컨데 나는 그 때 비겁했다.

군대도 안 다녀온 대학생이, 변변한 돈벌이도 없는 대학생이 결혼이라니.

아내에게 말했다.     

"어떻게 할래?"     


그러자 아내는 경멸스럽다는 눈빛으로 이렇게 말했다.     

"비겁해"


자존심 상했다.

나를 보고 비겁하다니.(사실이긴 했지만...)

꼭지 돌았다.

그래서 질렀다.     


"그래. 결혼하자."

    

어처구니 없는 프로포즈의 전말이다.     

그날  아내 집인 신원동 가는 936 버스에서 말없이  어깨에 기댄 그녀의 머리 내음을 맡으며 '괜찮다.  될거다.   있다' 수천수만번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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