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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프더레코드 Aug 01. 2021

며느리의 침대 밑

 삶과 사랑 이야기 #4

아내와 처음 만난 건 1999년 12월 23일.

둘 다 대학입학 뒤 처음 사귄 연인과의 이별을 겪은 직후였다.     

지금은 뭘로 바뀌었는지... 요새 통 강남을 나갈 일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당시 강남역 ZOO002 뒷골목 '프레피'라는 커피숍에서 우리는 처음 만났다. 우리는 커피숍 하나를 더 찍고 길건너 전통주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강남역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아내의 손에 마냥 이끌려 다녔다.     

서로의 지나간 연애사를 안주로 새벽 2시까지 막걸리를 마신 뒤 길거리로 나왔는데 거짓말처럼 함박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택시는 잡히지 않고, 날은 추운데 아내는 장갑을 낀 채 풀어진 구두끈을 묶느라 낑낑거리고 있었다.

보다못해 내가 꽉 묶어 줬다. (여기서 솔로남성을 위한 팁 하나. 여성의 신발끈의 묶을 때는 허리만 달랑 굽혀서는 안된다. 무릎을 확 꺾어 확실히 내려 앉아야 한다. 상대도 당신에게 마음이 있다면 무릎을 꺾고 눈높이를 맞출 것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여튼 멋진 키스 타이밍이다. 나는 그때 이 타이밍을 놓쳤다)     

그리고는 '이렇게 술친구 하나 생기는 것도 괜찮지'라며 가로등에 기대어 눈내리는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아내가 갑자기  볼에 뽀뽀를 했다. 내가 너무 멋있어 보였다나 뭐라나... 하기야 턱선이 살아 있었지.    

어쨌거나 새로운 사랑은 그렇게 시작됐다.     

다음날도 우리는 만났다. 또 술을 먹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였으니 주종은 와인이었다. 이후로도 우린 만날때 거의 두 번에 한 번 꼴로 술을 먹었다.     

당시 아내가 언제 가장 사랑스러웠냐고 묻는다면 나는 감히 네번째인가 다섯번째 만남을 꼽을 것이다. 내가 영어수학 가르쳐서 대입검정고시 합격시킨 승건이(이후 재수해 중앙대 안성캠 갔다가 적성에 안 맞다며 그만두고 가업인 노래방을 물려받았다. 역삼, 선릉역 인근 노래방만 4개...)랑 함께 만난 자리에서다.     

1차에서 건이 여친이랑 같이 강남역 언덕 팔로알토(지금은 없어졌겠지?)에서 같이 밥을 먹고 2차로 감자탕 집에 갔다. 불편해 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내는 이미 맨손으로 돼지 등뼈를 삼단분리하고, 젓가락으로 골수를 파 먹은 것도 모자라 연골부위를 쪽쪽 빨고 있었다. 그 섹시한 모습에 어찌 눈에서 하트가 뿅뿅 나가지 않을 수 있으리요.     

그날 우리가 비운 소주병만 무려 9개. 나는 필름이 끊어졌지만 아내는 멀쩡했다. 놀라울 따름이었다.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나보다 술 잘먹는 여자는 태어나 처음이었다.     

처음 함께 여행(무박2일 정동진)을 갔던 2000년 1월 26일도 출발은 대학로 술집이었다.

     

나와 아내가 좋아하는 술집 명륜동 우드스탁. 강근 형님은 잘 지내시는지. 우리 술집 운영한다고 통 가보질 못해서 아쉽고 안타까움.

이처럼 술을 좋아하고, 잘 마시던 아내의 주량이 급격히 줄어든 것은 아들이 태어나고 난 뒤다.     

아들이 태어난 바로 다음 날인 2001년 6월 6일 아버지가 쓰러지셨고, 두 달동안 투병하시다 돌아가셨다.     

자연히 산후조리가 제대로 될리 없었다. 아내는 당시 상황이 그랬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나는 아내가 아플 때마다 항상 그 때가 생각나서 너무너무 미안하다. 나는 쓰러지더라도 며느리 산후조리 시즌은 반드시 피하리라.     

출산을 앞둔 아내를 두었거나, 출산계획이 있는 남성들이여. 돈이 없으면 콩팥을 팔아서라도 산후조리에 최선을 다하라. 여생이 편안하리니.     

출산 뒤 주량이 급강하했지만 그래도 아내는 꾸준히 술을 즐겼다.     

2004년 나의 군입대 때문에 우리는 팍팍했던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어머니 계신 김해로 내려왔다. 아내는 피아노 한 대를 사서 집에서 개인레슨을 시작했다. 백일휴가, 일병휴가, 포상휴가... 휴가 나올 때마다 피아노가 한대씩 늘었고, 애들도 늘어났다. 제대 뒤 이화피아노학원은 지역상권을 완벽히 장악하고 있었다. 역시 이대 나온 여자는 간단치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여전히 이 '신여성'의 생활 중에 납득이 어려운 대목이 있었다.     

어머니는 아내가 아들이 어린이집을 가든 말든 오전 11시까지 숙면을 취하는 것, 집안 청소를 전혀 하지 않는 것, 아들 소풍 때 편의점 삼각김밥을 싸주며 천연덕스레 삼각김밥 뜯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 따위에는 이미 신경쓰지 않으셨다.     

하지만 청소할 때마다 며느리의 침대 밑에서 쏟아지는 수북한 맥주 깡통과 촘촘한 막걸리병, 그리고 그 가운데 섞여있는 와인병은 좀 처럼 이해하기 어려워 하셨다.     

"자는 술을 너무 많이 먹는 거 아이가?"     

"아들 낳기 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줄었어요. 지금 정도면 괜찮아요"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엥? 도대체 신여성은 누구란 말인가?     

아내에게 어머니가 당신의 술병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날 이 여자는 저녁 밥먹을 때도 맥주캔을 꺼내왔다. 그리고는 당연하다는 듯 "어머니도 드실래요?"라고 물었고, 어머니는 "나는 맥주보다 막걸리가 더 좋다"였다.

뭐 인생 그런거지.


어언 20년이 지나 신촌에 맥주집 2개를 운영 중인 이 여성은 요즘 주로 진, 혹은 위스키, 또는 연태고량주에 탄산수를 타서 즐기신다. 토닉 대신 탄산수를 부어 살이 찌지 않기 때문이란다.


흠... 술 그거 모두 당류인데...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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