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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렙백수 윤준혁 Aug 04. 2019

아버지는 아직도 내 직업을 모르신다.

본 글은 '전남일보'에 기고된 미래세대 문화담론을 주제로 연재되는 칼럼입니다.

https://jnilbo.com/2019/07/31/2019072914202537523/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살아생전 입버릇처럼 나에게 물어왔던 질문이 있다. "네 직업을 정확히 뭐라고 말해야 하니?" 아무래도 아들이 무언가(축제, 행사, 강연 등)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도저히 본인이 생각하는 직업의 범주에서 찾을 수가 없으니 답답한 마음에 나에게 물으셨을 거다. 결국 나는 이렇다 할 답변을 못 드렸고 아버지는 17년 봄에 돌아가셨다.

  1년이 지나 새로운 봄이 왔다. 문화기획을 시작해보려는 선후배 동료 5~6명 정도를 멘토의 역할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내심 '어떤 질문들을 받게 되고', 나는 '어떤 말들을 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문화기획이란?'이라는 문장의 오글거리는 정의를 내리고 있었다. 실무적인 도움도 필요할 것 같아서 쉽게 시도해볼 수 있는 문화사업의 종류라던지, 사업계획서 작성에 대한 팁도 서너 개 준비해 갔다. 그러나 내가 받게 된 첫 질문은 전혀 예상치도 못한 질문이었다. "가족들에게 제 직업(?!) 제 활동(?!)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내 준비가 무안해질 만큼 예비 문화기획자의 이 날것의 질문은 문화기획자들의 매우 흔한 고민이면서 문화기획 생태의 불안을 적확하게 설명해주는 문장이었다.

  '직업'인지 '활동'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이 비정기적이며, 불규칙한 수익은 물론이고 일반적인 직업으로 볼 수도 없는 '문화기획자'라는 애매한 이름은 대단한 것 같지만 고독함마저 느껴진다. 질문에 답은 해야 했기에 횡설수설 떠들긴 했지만 질문을 한 사람이나 대답을 한 사람이나 대답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문화기획자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를 고민해서 다시 만나자!"라는 말과 함께 우리는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문화기획자들은 무얼 하는 사람들일까? 확실히 그들의 소개를 보면 '문화기획자'라는 말 이외에 본인의 활동분야나 전공을 덧붙여 소개한다. 아마도 누군가 "혹시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어본다면 "문화기획자입니다."라는 대답만 한다면 필히 "그럼 어떤 문화를 기획하시나요?"라는 질문이 돌아온다. 그나마도 전공과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연계되거나, 명확히 한 분야만 기획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답이 쉽겠지만 이것저것 다양한 분야의 문화를 기획하는 사람이라면 대답이 쉽지 않다. 고민 끝에 내뱉은 말은 "아... 그냥 문화 기획이요"라는 애매한 말을 뱉게 되고 상대방은 눈치껏 "아... 네..."라는 답변으로 스스로의 호기심을 죽인다.

  그래도 '문화기획자'를 단순히 문화콘텐츠를 기획하는 일로 본다면 실무의 현장에서 이들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다. 총감독, 코디네이터, 프로듀서, 활동가, 운동가, 안무가 심지어 연예인들도 문화기획자라 부를 수 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문화의 범위는 점점 더 넓어지고, 경계는 모호해지더니 세계화와 더불어 점점 더 확장되고 있다. 우리의 삶에서 문화가 아닌 것이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문화기획자를 정의하기 어려운 이유가 문화의 확장성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과거의 문화기획이란 정부, 지자체 혹은 기업 등 거대 공룡에 의해 계획된 문화라면 현대의 문화기획은 점점 더 파편화되고 개인화되었다. 브이로그(Vlog)를 찍어가며 전국을 누비고 그것을 콘텐츠로 만들어내는 크리에이터의 활약과 과거의 공룡들이 그런 크리에이터들을 먼저 찾아 협업을 제안하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문화적 환경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연히 들른 전남 화순의 한 식당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원재료 국내산', '반찬 재사용 금지' 등의 재료와 위생에 대한 정보가 나열되어 있을 가게의 입구에는 이런 글이 붙어 있다. "3代 식당을 꿈꾸며, 2035년 1월 남매에게 물려주는 그날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닭을) 삶겠습니다." 그저 잔잔한 감동을 자아내는 문구 같지만 식당에서 밥을 먹는 일상적인 소비활동이 자기도 모르게 3대가 경영하는 식당에 관여하면서 남매의 꿈을 응원하고 있는 것이다. 파편화되고 개인화된 환경에서의 문화기획은 이렇게 일상의 당연한 소비를 전혀 다른 개념의 투자로 바꿔내고 있었다. 작은 디자인으로 향유자의 단순한 행동이 전혀 다른 경험을 가능하게 도와주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직업에 대한 설명도 정확히 못했던 내가 2019년이 들어서는 그런 직업도 놓아버렸다. 지금은 공부하고 글 쓰는 백수를 선언하고 골방에 들어앉아 글을 쓰고 있다. 최근 놀랍게도 내 글들을 읽은 독자가 "잘 읽었고, 도움이 되었다."라는 짧은 감사 표현과 함께 더 궁금한 것들을 메일로 물어보는 경우가 잦아졌다. 내 일상의 변화였던 글이 다른 이의 호기심을 낳고 있는 것이다. 너무 늦었지만 이제야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일상의 변화가 누군가에게 특별함을 선물하는 일!' 이것이 내가 요즘 생각하는 문화기획이다. 



#윤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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