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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앤디 Dec 30. 2021

육아가 책 대로 되는거였다면

옆집 이야기는 참고만 해, 참고만. 





오웬이라는 꼬마 생쥐의 이야기다. 작가 케빈 헹키스(Kevin Henkes, 1960~)는 위트와 유머가 담긴 책을 쓴다. 육아와 세상살이의 교훈도 담겨 있어서 어른이 먼저 읽으며 생각에 잠기기에 좋은 책이 많다. 1993년에 출간되었고 비룡소에서 <내 사랑 뿌뿌>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표지에는 한 장면이 프레임 안에 담겨 있다. 꼬마 생쥐가 노란 담요를 끌며 정원에서 놀고 있다. 담장 너머로 이웃집 해바라기와 연보라색 집의 외관이 보인다. 분홍색 옷을 입은 아줌마는 망원경으로 저 먼 곳을 보는 듯하지만 사실은 실눈을 뜨고 꼬마를 훔쳐보고 있다. 


이 꼬마의 이름은 오웬. 오웬은 퍼지를 정말 사랑한다. 퍼지는 오웬의 애착 담요. 둘은 모든 순간을 함께 한다. 밥을 먹을 때에도, 잠을 잘 때에도, 치과에 갈 때도, 모래놀이를 할 때에도. 오웬이 자라는 동안 퍼지(fuzzy)는 더 이상 이름처럼 뽀송뽀송하지 않다. 얼룩도 생기고 보풀도 생기고 시간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옆집에 사는 쪽집게 아줌마(Ms. Tweezer)는 그런 오웬의 모습이 못마땅하다. 아기도 아니고 이제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는데 아직까지 애착 이불을 물고 빠는 모습이라니. 이제 그만 오웬과 퍼지를 떨어뜨려 놓아야 한다고 오웬의 부모에게 말한다. 


“아니, 임자, 말이 돼? 지금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애착 이불을 들고 다녀? 내 장담하건대 학교에 가면 분명 놀림감이 될 거야.”


그러고 보니 아줌마의 말이 맞아 보인다. 언제까지나 아기일 수는 없다. 오웬의 부모는 저 담요를 하루빨리 떼어놓아야 할 것만 같다. 오지랖 여사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담요와 작별하기 위한 비법’을 하나씩 전수한다. 이빨 요정처럼 베개 밑에 담요를 놓고 자면 요정이 선물을 주고 담요를 가져간다는 ‘담요 요정 비법’, 퍼지를 식초에 담그면 고약한 냄새가 나서 싫어하게 될 거라는 ‘식초 비법’, 뭐라고 하든지 안된다고 말하는 ‘무조건 안돼 비법’. (사실 이건 특별한 비법이 아니라 이미 많은 부모들이 사용하고 있다.) 


비법은 전부 실패하고 오웬과 퍼지는 떨어지기는커녕 애착이 더 찐해진다. 오웬은 퍼지를 끌어안고 엉엉 울고 엄마는 우는 아이를 위로하면서 생각에 잠긴다. ‘둘을 꼭 떼어놓아야만 하나, 퍼지를 버리지 않으면서 아이도 만족할 만한 선택은 없을까,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야’ 오웬의 엄마는 주체적으로 또 구체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다. 







아이를 낳고 육아서를 꽤 많이 읽었다. 처음이라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부모.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은 막연히 생각했던 그림과는 달리 훨씬 고되고 힘들었다. 무슨 애가 애를 키우냐며 남편과 어처구니없이 웃기도 여러 번. 그래도 처음이자 마지막인 육아, 내 인생에 한 번뿐이고 아이 인생에도 한번뿐인 이 순간을 씩씩하게 잘 헤쳐 나가고 싶다는 마음만은 진심이다. 그 마음으로 초보 부모는 육아서를 들추어보고 선배들의 말을 듣는다. 


특히 아기 때는 하루하루가 다르다. 보름만 일찍 태어나도 육아 선배라며 경험했던 것들을 내 앞에 쏟아 놓는다. 대부분은 얼마나 힘들게 아이를 키우고 있는지 자신의 고충을 토로하는 것이고 나머지는 도움과 충고 반, 라떼와 지자랑 반이다. 왜 답을 주는데 이대로 하지 않느냐며 질책하기도 한다. 웃기는 일은 첫째 아이를 키우며 나도 종종 그랬다는 것이다. 애 하나 키워봤다고 아는 척을 하다니 참 부끄럽다. 


그런데 왜 말처럼 되지 않는 거지? 예측불허의 일들이 벌어지는 곳. 바로 우리 집구석. 육아는 늘 그랬다. 책 대로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충고가 먹히지 않는 것도 다반사다. 첫째 아이와 전혀 다른 둘째를 키우면서 다른 경험을 하게 되고 사례가 풍부해졌다. 비로소 ‘정답은 아니니까, 참고만 해’라는 말을 덧붙일 수 있었다. 


육아에 정답은 없지만 딱 하나를 고른다면 ‘내 아이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존재 자체로 충분한 의미가 있음을 표현하는 것 외에 다른 룰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 모든 아이는 다르다. 책대로 되지 않는 이유는 내 아이가 그 아이가 아니기 때문이고, 나라는 사람 또한 그 엄마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웬은 퍼지와 계속 함께 하고 싶다며 서럽게 운다. 왜 갑자기 퍼지와 헤어져야 하는지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이해되지 않는다. 어제와 다른 엄마 아빠가 원망스럽다. 준비되지 않은 아이에게 사회적 통념과 기준을 내세우며 애착의 대상을 무조건 빼앗는 것이 답은 아닐 것 같다. 그전에 아이를 한번 더 들여다보면 어떨까. 


우는 아이를 바라보며 더 좋은 방법을 찾아보려는 엄마의 행동이 고무적이다. 반면에 아빠는 내내 엄마의 그림자처럼 비친다. 스스로의 주장이나 의견은 없고 아내 곁에 서서 하는 말에 추임새를 곁들일 뿐이다. 어쩔 줄 모르는 초보 아빠의 모습, 주관 없는 모습이 잘 그려져 조금 씁쓸하기도 하다.


I have an idea! 

드디어 좋은 생각이 났다. 엄마는 뭐에 홀린 듯이 싹둑싹둑 퍼지를 자른다. 이어 뚝딱 바느질을 한다. 하나의 퍼지는 작은 손수건 여러 장이 되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오웬과 함께 한다. 이제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아이들이 놀릴까 봐 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옆집 아줌마도 더이상 뭐라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대로 해결책을 찾아낸 오웬의 엄마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옆집 아줌마는 종종 다른 일로 충고를 하고 오지랖을 피우겠지만 오늘의 경험을 기억하며 적당히 귀를 열고 닫을 것이다. 어떤 문제든 가만히 고민하면 답은 나올 것이고 그 때마다 취해야 할 적당한 행동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소신대로 살아가고 싶은 반업주부의 심플 라이프. 오늘도 아이 둘과 수련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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