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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앤디 Jan 04. 2022

그건 바로 엄마야, 엄마나 잘해!

오늘도 날아오는 팩트 폭탄



"엄마 있잖아~~

내가 퀴즈를 하나 낼게.

우리 집에서 컴퓨터를 제일 많이 쓰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




"그건 말이지~~

바로 바로 바로, 엄마야!!

나한테는 30분만 하고 쉬라고 하면서 엄마는 왜 이렇게 오래 하지?

(근엄하게 목소리를 낮추며) 그러다 눈 나빠져서 책 못 본다~~."


"어? 정말요? 그건 안~~~돼!!"

(뭉크의 절규처럼 심하게 오버 액션하고 아이는 씨익 미소를 짓는다)




아이는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내게 다가와 친절하지만 단호하게 '팩트'를 알려주고 간다. 그렇다, 우리 집에서 전자기기를 가장 많이 쓰는 사람은 나다. (남편이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라면 남편이 되겠지만.) 아이말대로 눈이 좋아야 글도 쓰고 책도 읽지. 읽고 있던 인터뷰 기사를 마저 읽고 인터넷 창을 닫는다. 컴퓨터를 절전모드로 바꾸고 자리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면서 아이 곁으로 간다. 


디지털 디톡스를 한답시고 폰을 내려놓으면 뭐하나. 글을 쓴다고, 자료 조사를 한다고, 과제를 한다고 틈만 나면 PC 앞에 앉아있다. 한 시간을 정했다면 50분은 할 일을 하고 10분은 꼭 쉬어야 한다며 타이머를 책상 앞에 올려놓았지만 어떨 때는 무용지물이다. 일이 잘 되는 착각에 빠질 때면 몰입이라는 이름으로 엉덩이를 붙이고 내내 앉아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쓰다 보면 손가락이 아프고 눈이 따끔거린다.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며 삼십대 후반부터 건초염으로 손목과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프다. 글을 오래 쓸 수가 없고 스마트 폰도 들고 있기가 힘들어서 내려놓고 멍하니 집안을 슬슬 걸어 다니며 정리를 한다. 


그런데 몸을 움직이면 신기한 일이 생긴다. 퍼뜩 글감이 떠올라 메모를 한다. 이걸 언제 어떻게 써먹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빠르게 툭툭 자판을 두드리며 눌러 성긴 기록을 남겨둔다. 그러다 가만히 책장을 넘기다 글 쓰는 이웃들의 글을 읽거나 궁금한 것을 찾아보기도 한다. 맙소사, 다시 컴퓨터 앞이다. :(








"엄마! 이리 와서 내가 만든 거 볼래요?

스토리봇에 나오는 컴퓨터를 만들었어요. 마을처럼."


"어 그래? 

잠시만~~ 이거 3분이면 끝나."



아, 멋지지 않다. 이러지 말자고 했으면서 또 이런다. 아이들과 '엄마 방해금지' 시간을 정해두긴 하지만 지금은 그 시간이 아니다. 아이들과 책 읽고 노는 데 집중하는 시간이다. 문득 객관적인 시선으로 내 모습을 본다.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자아도취된 상태로 아이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는 내 모습은 뭐랄까, 조금 실망이다. 심지어 10분도 아니고 5분도 아니고 3분이라니. 3분 안에 끝나지 않을 것을 알면서, 어이가 없다. 




"엄마, 지금 아니면 안 돼요.

이제 곧 구성을 바꿀 거란 말이에요." 



둘째 아이가 단호하게 말하며 오른손을 잡아끈다. 노트북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엉거주춤하게 반만 일어나 재빨리 왼손으로는 컨트롤+S를 누르고 있다. 아이가 레고로 만든 만화 속 장면은 상상이 곁들여지니 명품이 따로 없다. 사진으로 남겨주려고 폰을 가지러 가려니 됐다면서 웃으며 무너뜨린다. 엄마는 다시 못 볼 작품이 아쉽고 아이는 엄마가 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저 기쁘다.



"컴퓨터를 제일 많이 하는 건 엄마라고요."

"엄마, 지금 아니면 안 돼요."


가만히 놀이방 문가에 서서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을 회상하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우리는 어른이 될수록 가까운 이에게 직언이나 충고를 듣기는 쉽지 않다. 직언이라기보다 그것은 상처가 되기 쉽다는 것을 알기에 밀을 아낀다. 한편으로는 알아서 할 텐데 괜한 참견을 하나 싶은 마음에 '나나 잘하자'라고 다독거리며 눈을 돌리기도 한다. 


그런데 바로 옆에서 진실을 깨우쳐 주는 직언 제조기가 둘이나 있으니 감사할 수밖엔. 가끔 이럴 때면 누가 누굴 가르치고 돌보는 건지 생각해보게 된다. 엄마는 밥과 사랑을 주고 너희는 직언을 하는구나. 날마다 포장하지 않은 언어로 팩트 폭탄을 맞는 일상이 좋다. 누구에게도 듣지 못할 솔직함으로 나를 깨우는 이 조그만 존재들. 덕분에 정신 차리고 살아간다. 


(가끔 나도 때때로 솔직하게 웃으면서 팩폭을 날리고 싶다.)





+

첫째 아이가 3d 펜으로 만든 태블릿 하는 공룡. 

<If the Dinosaurs Came Back> 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시대에 공룡이 살아나 사람들과 함께 살아난다면 아마 태블릿으로 넷플릭스에서 재미난 만화를 골라 보고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참 모태 디지털 시대를 사는 아이다운 생각이다. 


If the Dinosaurs Came Back by Bernard M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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