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사탕앤디 Jan 03. 2022

사색하는 휴지통을 끌어당겼다

끌어당김, 비움을 생각하니 휴지통이 왔다



도돌이표지만 해야 해야 하는 일중에 하나는 정리정돈과 청소다. 주말 동안 한참을 정리하고 비웠다. 아이와 함께 놀이방을 정리하다가 가위질로 조각난 종이 잔해들을 보며 생각한다. 책상 위에 작은 휴지통이 하나 있으면 어떨까, 알아서 바로바로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리려나. 



그래, 휴지통을 하나 마련해야겠다. 다음에 '다 있는 곳'에 가서 하나 사 올까? 아니면 박스로 만들어볼까? 둘 다 좋은 방법이라며 아이와 슬쩍 웃고 지나갔다. 사실 이건 한 두 번의 대화가 아니다. 몇 주 전에도 그렇게 말하고 지나간 것 같은데 비슷한 장면이 또 반복된다. 휴지통 하나 사 오면 될 것을 '그곳'까지 가는 일이 번거롭다는 핑계로, 박스도 많은데 굳이 휴지통을 사야 하나 싶은 핑계로 미룬 것이다. 



사실 놀이방은 낮에 잠깐 놀 때만 들어가고 나머지 시간은 대부분 거실에서 보낸다. 아이들 방으로 만들어 놀이를 하거나 아니면 침실 공간으로 꾸며볼까 이런저런 궁리도 하고 개조(?)도 했지만 한 며칠 동안 독립했다가 이내 내 옆자리로 돌아온다. 그래서 놀이방에 큰 휴지통을 들고 오가는 것이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엄마! 나 왔어요!

내가 뭐 가져왔나 보세요." 


아직 채 두 시가 되지 않은 시각. 신나는 발걸음, 한껏 톤이 올라간 목소리. 5교시를 마친 아이가 돌아와 선물을 내민다. 


"엄마, 지난번에 독서의 달 행사 참여했던 거 있잖아.

그때 기념이래, 도서관 선생님이 선물을 주셨어요." 


선물을 같이 열어보는데 어라? 적잖이 놀랐다. 봉투 앞에 이런 문장이 적혀있다. 


독서는 다만 지식의 재료를 줄 뿐이다.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색의 힘이다

- 존 로크



갓 초등학생이 된 아이에게 조금 어렵지 않을까 싶어 물어본다. 


"아들, 이 말이 무슨 뜻이야?"


"엄마도 참.

책 속에 지식이 있는 건 맞는데, 그 책을 스스로 읽어야 하고 스스로 생각도 해야 한다는 거지. 

사색이 생각한다는 말인 거 같은데요?" 




그렇다, 아이는 문맥으로 단어를 파악한다.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색의 힘'. 그래 나도 요즘 사색하는 힘이 빠졌나 보다. 지칠 때면 멈추어 생각한다. 너무 많이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너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한 때 'ㅇㅇ을 안 본 눈 삽니다'라는 표현이 기가 막혀 웃었다. 보지 말 걸, 아니 덜 볼걸, 볼 거면 제대로 볼 걸.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이전에 이루어 놓은 성과와 비교한다. 그러다 자책하고, 스스로 작아지기도 한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위험 수위까지 가면 안 된다는 절실한 마음이 들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걷는다.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금 왜 이걸 보고 있지?

이걸로 무엇을 할 것인가?

어디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지치지 않게 어떻게 중심을 잡을 것인가?



현실을 보면 맥시멀 리스트가 아닌가 싶지만 조금씩 심플하게 사는 삶으로 나아가고 싶다. 내 삶을 의미 있는 것들로 채워가고 싶다. 그러려면 먼저 비워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런데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앎이라고 한다면 사실 나는 여전히 모르고 있다는 말이 더 맞다. 언제부터인가 비우는 속도보다 쌓이는 속도가 빨라졌고 '하나 들어오면 하나가 나가야 한다'는 원칙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래서 맘 잡고 치우느라 진이 빠지거나, 아예 치우지 않거나. 



연구실 책상에 노트와 펜, 휴지통만 있으면 된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이 생각난다. 나머지는 비우고 오직 하나의 것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힘...... 은 잘 모르겠고 일단 비워내야 한다. (지금 아이가 내 등을 타고 숨은 그림 찾기를 하며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그것도 1인용 의자 뒤에 올라가서. 난 의자 끝에 간신히 걸터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잘못 건드리면 책탑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상황이다.) 



단순한 삶을 위한 비우기가 그리 쉬웠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사'라는 큰 이벤트가 아니고서는 굳이 살림을 뒤엎어 정리하고 싶지는 않기에 비움은 요원하기만 하다. 별 수 없다. 의미 있는 것을 채우고 아닌 것이 자리를 비켜줘야지. 아니면 지금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비워내는 수밖엔. 그래서 우리에겐 귀여운 휴지통이 필요하다. 아이와 나는 이 휴지통을 채우며 한 번 더 사색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휴지통은 보통 휴지통이 아니니까. 사색하게 하는 휴지통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파란 쉬야의 정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