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사탕앤디 Sep 14. 2020

파란 쉬야의 정체

엄마는 알고 아빠는 모르는 이야기 


*엄마를 살리는 아이의 말

*너의 조그만 머릿속이 궁금해

*아이들의 골든타임을 놓치기 싫어서 시작한 말 기록. 




어느 날, 다섯 살 겨울씨가 아빠에게 묻는다. 


아빠!! 아빠!!

어떻게 하면 파란 쉬야가 나오는 거예요??


응? 파란 쉬야라고? 그게 뭔데? 


아니 아니, 아빠, 뭘 먹으면 파란 쉬야가 나오냐구요.

혹시 파워에이드를 마시면 파란 쉬야가 나와요?? 


으응?? 







남편은 수수께끼를 내는 건가 당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남편은 아이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파란 쉬야가 뭐지, 넌센스 퀴즈인가. 수수께끼를 내는 건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젓더니 저를 쳐다보며 어깨를 으쓱거린다. ‘파란 쉬’라니 이것은 무슨 이야기일까. 



아빠는 모르지만 엄마는 사연을 안다. 언젠가 형아 친구 집에 놀러 갔던 날, 손님 화장실 변기 속에 투명하고 새파란 물이 가득 고여 있는 풍경을 아이는 보았다. 그 파란 물빛을 생전 처음 본 순간! 아이의 머릿속은 자꾸만 복잡해진다.  


(아니, 저건 처음 보는 건데, 뭘 먹으면 쉬야가 파란색이 될까.)


아이는 아마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신기한 그 물을 파란 쉬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한참 궁금하고 신기하고 그랬는지 그날 이후로로 한 달이 넘게 물어보았다. 물론 아빠는 아직 듣지 못한 이야기. 그날도 역시나 아빠에게 답을 구하고 있는데 가만히 듣고 있던 형아는 가만히 있지 못한다. 뭐든 참견해야 하고 아는 것을 뽐내야 하는 나이. 맞다, 일곱 살 형아다. 



야, 형아가 말했잖아. 그건 그냥 변기 씻는 물이야.

원래 쉬야는 노랗거나 투명해! 

아프면 빨갛기도 하지만, 그건 쉬야가 아니고 '피"라고.


아…… 진짜? ㅠㅜ

엄마, 형아 말이 맞아요??







겨울씨는 엄마의 표정을 살피며 대답을 기다린다. 엄마라면 조금 뜸을 들이고 "글쎄, 형아 말이 맞을까 틀릴까~" 하고 장난하고 농담거리를 만들었을 텐데, 아빠는 그냥 "어! 형아 말이 맞아!"라고 싱겁게 대답해 버린다. 덕분에 재미난 순간을 놓쳐버렸다. 



아무래도 아이들은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니 아빠가 모르는 에피소드가 점점 많이 생기고 있다. 아이는 가끔 아빠 앞에서 자랑하듯 어떤 논리를 가지고 설명을 하고 무언가를 읽는 시늉을 하기도 하고 유창한 발음으로 영어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우와~! 진짜 잘한다. 엄청 많이 컸네!"라고 눈에 하트가 뿅뿅, 도치 파파가 된다. 



사실 그건 이미 몇 달 전부터 하던 행동인데, 엄마는 이미 처음을 보았고 아빠는 그제서야 처음 보는 장면들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곁에서 자랑하듯 설명을 곁들이지만 눈으로 직접 보는 것과는 천지 차이다.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소소한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한껏 눈에 담고 추억을 만드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게 뭐가 있을까. 말 그대로, 뭣이 중헌디. 



한편으론 매일 보는 엄마보다 가끔 보는 아빠가 아이의 성장을 더 확연히 느낄 수 있는 자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점육아라는 말은 참 싫고, 독박육아라는 말은 더 싫다. 여태까지 이런 논쟁을 수없이 하며 조율해왔지만 결론은 각자의 자리에서 잘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만의 결론이다. 공동의 집안일은 나눠서 하기로 하고. 왜냐하면 일단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살아남아야 하기에.



힘들다고 한껏 투정 부리고 싶지만 그 시간조차 아깝다. 분주한 이 순간도 애써 태연하고 즐거운 척 여유를 부려본다. 그러면 반대로 없던 여유가 생기기도 한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엄마 아빠는 조금씩 늙어가고. 자자 시간이 가고 있다. 이제 또 다른 처음의 순간을 만나러 가자. 




매거진의 이전글 미라클 모닝 하지 않아도 괜찮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