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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그니 Jan 17. 2024

지구촌 최후의 원시 부족

1893년 12월 24일 하드자족 역사에 등장하다

인공지능(AI)이 판치는 세상이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주무르며 세상에서 가장 비싼 기업으로 군림했던 애플마저 AI로 재무장한 마이크로소프트(MS)에 밀려나는 형국이다. 어디 AI 뿐이랴. 예전에는 상상으로만 존재했던 가사로봇, 투명 TV,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가용 비행기 등이 현실 속에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신세계가 도래했고 지구촌은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며 환호와 갈채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지구를 감싸는 햇빛이 모두를 환하게 비추지 못하듯 '첨단'의 막강한 힘을 도달하지 못하는 곳이 있다. 일부 지역에 존재하는 원시부족들이 그들이다. 1990년 국내에서도 개봉된 영화의 주인공 '부시맨'이 대표적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사냥감을 찾아 초원을 돌아다니던 아프리카의 한 부시족 머리 위로 생전 처음 보는 신기한 것이 떨어진다. 길쭉하고 투명한 그것이 미국인 조종사가 비행기에서 버린 코카콜라 병이라는 것을 그는 알 리 없다. 이게 무엇일까 고민하던 원주민이 내린 결론은 신이 실수로 떨어뜨린 물건이라는 것. 원주민은 이를 신에게 돌려주기 위해 산 넘고 물 건너 미국까지 가게 된다.  영화에서 부시맨은 지구촌에 남은 마지막 원시 부족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틀렸다. 아프리카에는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원시 부족민이 존재한다. 부시맨이 아프리카 남부를 근거지로 했다면 이 부족은 북중앙아프리카를 활동무대로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지구촌 최후의 원시부족일 지 모른다. 


1893년 크리스마스 하루 전날 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 20대의 젊은이가 긴 한숨과 함께 펜을 내려놓았다. 그의 이름은 오스카 바우먼. 책상 위에는 386페이지에 달하는 출간 직전의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마사이랜드부터 나일강 수원지까지- 마사이족 탐험의 여행과 연구'라는 제목이 달린 이 보고서에는 탐험가인 그는 1891년부터 1893년까지 약 200명의 '마사이 원정대'를 이끌고 아프리카 오지를 훑고 다녔을 때 겪었던 일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작업을 마친 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공격적인 일부 마사이족들에게 불의의 습격을 받아 죽음의 위기에 몰렸던 절체절명의 순간. 짐꾼으로 부리던 원주민이 어느 날 일어나 보니 사라지고 없었던 황당한 순간 등등.

오스카 바우먼의 탐사 보고서 '마사이랜드부터 나일강 수원지까지- 마사이족 탐험의 여행과 연구'

그의 탐험 목적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아프리카 지역의 지도를 만들고 그 경제적 가치가 어느 정도 되는지 알아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이목을 끈 것은 딴 데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어떤 부족. 그가 이웃 부족들로부터 들은 이들의 이름은 와팅디가(Watindiga). 지금은 '하드자(Hadza)'라고 불리는 부족이다. 탐험 도중 한 번도 보지는 못했지만 주위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들의 영토를 여러 곳 지나다녔지만 나는 (그들에 대한) 어떤 것도 보지 못했다. 초원의 오두막과 바오밥 나무속 동굴에 살고 있지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들이 마투에 살기도 하고 아람바에 있다고도 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의 수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이야기로만 돌던 하드자족의 실체가 드러난 것은 그로부터 8년 후. 1911년 독일의 지리학자 에릭 옵스트가 유럽인으로는 처음으로 8주간 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겪은 경험을 '음칼라마(Mkalama)에서 와킨디가(Wakindiga) 땅까지'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담으면서부터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 부족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하드자피(Hadzapi)'라고 부른다고 했다. '부시맨'과 같은 원시생활을 하지만 모든 것이 달랐다. 부시맨은 키가 작았지만 하드자피는 꽤 컸다. 언어도 그들만의 것을 썼다.  가장 큰 특징은 인구. 전체를 통틀어 고작 1000명 정도밖에 안된다. 이중 사냥을 하는 인구는 200여 명 남짓이다. 이들이 모든 부족을 먹여 살린다. 집도 없다. 바오밥 나무의 텅빈 공간을 쉼터로 삼거나 나무 껍질로 엮은 움막 같은 것으로 임시 거처를 마련할 뿐이다.  

더 큰 차이가 있다. 인류는 정착생활을 하면서 농경을 식량 획득의 기본 수단으로 삼았다. 쌀, 밀, 옥수수, 각종 채소 등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영양소 공급원으로 자리 잡았다. 하드자족은 다르다. 논이나 밭을 일구는 농경생활을 전혀 하지 않고 철저하게 수렵과 채집만으로 필요한 식량을 공급한다. 사냥 방법은 간단하다. 활을 쏴 잡고 철로 만든 칼로 가죽을 벗긴다. 가축은 전혀 키우지 않는다. 심지어 개도 없다. 당연히 '반려견'이라는 인식도 가졌을 리 없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기겁을 할 노릇이지만 만약 개가 있었다면 분명 식량으로 쓰였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이들에게 사유재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온 부족이 공유한다. 사유(私有)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 부를 축적하기 위한 싸움이나 더 높은 곳에 오리기 위한 경쟁과 같은 자본주의 논리 역시 이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세상에 몸을 두고 있지만 생활은 전혀 다른 세상에서 하고 있는 이들이다.


하드자족이 고기만 먹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더 달콤한 식량이 존재한다. 꿀이다. 하드자족은 생존에 필요한 전체 칼로리의 5분의 1을 꿀로 충당한다고 한다. 이처럼 중요한 꿀은 어디서 얻을까. 농경을 하지 않는 하자드족인데 양봉이라고 할 리가 없다. 이들은 꿀을 야생에서 얻는다. 신기한 것은 채집하는 방식이다. 하드자족은 직접 꿀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대신 꿀이 있는 곳을 찾을 줄 아는 '벌꿀길잡이새'와 협업을 한다.  하드자족과 함께 생활했던 영국 BBC방송의 기자이자 음식저널리스트 댄 살라디는 저서 '사라져 가는 음식들(Eating to Extinction)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꿀사냥꾼의 휘파람에 '아크 에크 에크 에크'라고 응답한다. 거래가 성사됐다는 신호였다. 새는 사냥꾼을 거대한 바오밥나무 가지 사이에 숨겨져 있는 꿀로 인도해 주기로 합의했다... 새는 벌집을 찾을 수는 있지만 밀랍을 얻으려다 벌에 쏘여 죽는다. 인간은 벌집을 찾지 못해 애를 먹지만 연기를 피워 벌을 완전히 진압할 수 있다. 이들의 거래는 인간과 야생 도울 사이에 맺어진 가장 복잡하고 생산적인 파트너십이다."


하드자족에게도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마사이족과 같은 인근 부족들은 수시로 싸움을 걸어왔고 여자와 아이들도 수없이 끌려갔다. 인구 자체가 얼마 안 되니 전사가 적고 그러다 보니 전투에서 패배하는 게 이기는 경우보다 더 많았다는 얘기도 있다. 이들이 외부인과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려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을 모르는 서양인들은 이들이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라고 설명할 뿐이다. 하드자 부족의 영역이 갈수록 줄어더는 것도 위협적이다. 목축업과 농업이 확장하면서 과거 이들이 활동했던 지역이 수없이 사라져 버렸다. 탄자니아 정부 역시 이들을 그대로 놔두기보다 '소유권을 부여한 지역'으로 이동시켰다. 물론 이를 통해 15만 에이커에 달하는 지역의 소유권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돌아다닐 자유를 잃은 하드자족에게 이 지역은 탄자니아판 '인디언 보호구역'과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하드자족 중 아직도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소유권을 가진 지역에서 이탈해 다시 활과 화살을 드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현대 문명의 편리함을 몰라서일까. 그렇지 않다. 이들은 아이폰이 무엇인지, TV에서 어떤 드라마나 영화를 하는지, 심지어 자동차 면허는 어떻게 따는지도 잘 안다. 오픈된 공간에서 사는 것이 모든 것이 부족한 아프리카 오지에 사는 것보다 훨씬 더 편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하드자인들이 굳이 문명을 버리고 원시 생활을 하기 위해 옷을 벗고 활을 찬 모습으로 돌아온 것은 풍족함 보다 더 간절한 그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자유롭고 싶다. 우리는 고기를 매우 좋아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냥을 해야 한다. 이런 생활을 하는 것이 좋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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