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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맹 Aug 02. 2022

삶과 죽음의 가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다가, 언젠가는 한 번쯤 하고 싶었던 이야기

¶ 드라마 속 발달장애인 캐릭터, 관심은 필요하다.

     비록 판타지라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의 인기가 뜨겁다고 한다.

주변의 자폐 아이를 둔 친구 엄마들의 반응은 시니컬과 우려 쪽에 가깝다.

<굿 닥터>의 박시온(주원), <말아톤>의 초원(조승우) 처럼 우영우 또한 서번트 증후군에 속하는,

더군다나 변호사가 된 천재 자폐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

    사회성이 떨어지고 의사소통 능력이 낮으며 반복적인 행동 등을 보이는 여러 뇌 기능 장애를 가지고 있으나 기억, 암산, 퍼즐이나, 음악적인 부분 등 특정한 부분에서 우수한 능력을 가지는 증후군



대부분의 자폐인은 지능이 낮다.

(흔히 지적장애를 동반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지능이 장애 범위(IQ 70 미만)를 초과하는 아스퍼거 증후군 등은

전체 자폐인의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처럼

어느 한 분야에서 비장애인보다 눈에 띄게 우수한 능력을 가진 자폐인,

즉 서번트 증후군은 극히 드물다.

나는 아직 지능이 경계성 이상인 자폐인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런데 TV나 영화에 나오는 자폐 주인공은

일단 예쁘거나 잘생겼고,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자폐의 대표적인 일부 징후들만을 표현하고 있으므로,

드라마 속 우영우 변호사의 모습은

실제 우리가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자폐인과는

거리가 멀다.

자폐아 엄마들이 우영우를 시니컬한 눈으로 보는 이유이다.

뛰어난 능력도 없고

지적 수준도 현저히 떨어지고

상동 행동이나 반향어, 감각 추구가 훨씬 더 많은 내 아이를

사람들이 보면서 더 놀랄까 봐.

자폐인에 대한 환상을 내 아이에게서 찾으려고 할까 봐.


나도 가끔 듣는 이야기이다.

"자폐가 있다면, 무언가 굉장히 잘하는 게 하나 있지 않을까요?

저렇게 감각이 예민하다면 분명히 뛰어난 재능을 숨기고 있을 것 같은데,

엄마가 아직 못 찾은 건 아닌가요?"

아... 뭐라고 해야 할지...

저도 그렇기를 바란 적이 있긴 합니다만.


자폐 장애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이다.

자폐 징후의 범위가 워낙 넓고 증상이 다양하기 때문에

하나의 범주로 묶어 설명하기가 어렵다.

자폐 장애인 한 사람을 잘 알고 있다고 해서

다른 자폐 장애인이 어떨 거라고 예단할 수가 없다.

한명 한명이 모두 다르니까.

아마 그래서,

자폐 장애인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하더라도

그가 다른 자폐 장애인들의 모습을 잘 대표하고 있다고

보기가 어려울 거다.


결론적으로 우영우 같은 자폐 장애인은 없다고 본다.

그 정도의 사회 성숙도와 타인에 대한 이해력,

높은 언어 수준과 지능을 가졌다면,

자폐가 있다 해도 그 수준이 미미해 장애 등록은 어려운,

경계성 정도로 진단될 가능성이 크다.

장애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미국의 자폐 장애 변호사인 헤일리 모스가 어느 정도의 자폐 징후를 가지고 있는지,

미국에서는 자폐 스펙트럼 안에서 어느 수준까지를 장애로 인정하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장애에 대해 보다 관대한 그 나라에서도 극히 드문 존재라는 거다.

그러니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TV 속 우영우 같은 자폐 장애인을 만날 확률은 0에 수렴한다.

판타지 속 인물일 뿐이다.


우영우가 판타지라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아버지가 주인 집 할아버지에게 매를 맞는 걸 보면서

말 못 하던 아이가 갑자기 말이 터져 형법 조항을 줄줄 외는 말도 안 되는 장면.

우리가 입술과 혀와 이, 목구멍 등을 동시다발로 사용하여

의미 있는 소리를 발음하는 과정은

하나의 과학이고, 훈련이 필요한 운동이다.

대여섯 살 이후까지 말을 못 하다가 뒤늦게 발화가 된 발달장애인이 훈련을 통해 그렇게 완벽한 조음(발음)을 할 수 있게 된 경우를,

나는 또한 아직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관심이

나는 반갑다.

막연히 무서워하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아는 게 나을 테니까.

자폐 장애인한테 가지는 판타지는...

다른 드라마의 비장애 주인공들도

평범한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비현실적 캐릭터인 것처럼

우영우 또한 일반적인 자폐 장애인들과 많이 다르다는 걸,

관심을 가지다 보면 알게 되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한다.



¶  죽은 의대생의 명예와, 살아갈 자폐 장애인의 명예,

      그 가치를 비교한다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3~4화에는 또 다른 자폐인,

펭수를 좋아하는 정훈이가 등장한다.

정훈이는 우영우와 비교해 좀 더 일반적인 자폐 장애인들의 모습에 가깝다.

상황 인식과 언어 표현, 사회적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어

독립적인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


그는 자살하려는 형을 살리려다 죽음에 이르게 했지만,

형을 폭행해 죽였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지 못한다.

단순히 언어 표현에 서툴러서 억울한 상황에 몰리는 것이 아니라,

누명을 쓰게 된 그 상황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며

사건 당시의 인물의 말과 행동, 사실 관계에 대한 인지 또한 어렵다.

실제 내 주변의 말을 곧잘 할 줄 아는 자폐 아이들이

다른 친구들과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우리 곰이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상황에 처하는 이유이다.

말을 할 줄 안다는 사실이 곧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폐 정도와 지적 수준에 따라, 소통 범위가 모두 다르다.

사람들은 이 부분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과거의 내가 그랬듯이.


정훈이의 부모는

그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죽은 의대생 형이 공부 스트레스로 자살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늘 자랑이었던 죽은 의대생 아들의 명예와,

어차피 벌을 받기는 쉽지 않을 살아 있는 자폐 장애인 아들의 명예는,

부모의 마음속 저울 양쪽에 오른다.

그 둘을 비교하는 게 말이 되냐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의 마음 안에서는

결코 쉬운 비교가 아닐 것 같다.



¶  의대생과 발달장애인, 죽음의 무게는 왜 다른가.


펭수 정훈이의 드라마 에피소드를 보다가,

한 번쯤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묻어 두었던,

예전 뉴스 두 개가 떠올랐다.




2021년 봄, 각종 뉴스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던 사건이 있다.

서울 한강공원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던 한 의대생이 실종되었다가

닷새 만에 숨진 채 발견되었다.


온, 오프 라인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사건에 몰입했다.

의대생 아이가 그리 허망하게 떠난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

자기 아들을 잃은 것처럼 슬퍼했다.

의대에 보내기까지 얼마나 고생하며 뒷바라지를 했을 텐데,

그 부모의 심정이 어떻겠느냐는 뉴스 댓글이 줄을 이었다.

함께 있었던 친구와 그 가족의 행적에 의심을 품고

모두가 명탐정이 되었다.


젊고, 건강하고, 게다가 똑똑한 사람이

술을 좀 먹었다고 해서 한강공원에 그냥 빠져 죽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https://www.chosun.com/national/incident/2021/04/30/YK2XZ5QNC5EFBH32EY6DQN32SA/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21050461077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22070202109919002003&ref=naver





뉴스와 논란의 홍수 속에서,

나는 비슷한 시기의 다른 뉴스 하나를 떠올렸다.


2020년 말,

경기 고양시의 한 하천변 산책로에서 어머니와 산책하다가 실종되었던 20대 발달장애인이

해를 넘기고 3개월 만에 시신인 채로 발견된 사건이었다.


실종된 기간이 길지만 기사가 많지는 않다.

시신으로 발견된 이후의 기사는 더더욱 없다.

가족을 위로하는 댓글이 많았지만,

아까운 20대 청년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는 글은 별로 보지 못했다.


죽음의 과정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명탐정도 없었다.

그의 죽음이 어떤 범죄와 연관되어 있지는 않은지

의심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발달장애인이면,

어머니와 함께 다니던 산책길에서 갑자기 사라져 실족해 죽고도 남을까.

왜, 그 죽음에 의심을 품지 않는가.


https://mbnmoney.mbn.co.kr/news/view?news_no=MM1004307705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51602540003808



술을 많이 마신 의대생과 발달장애인의 심신미약 상태는 어떻게 다를까.

정확하게 알 길은 없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술 취한 의대생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술을 좋아하는 발달장애인의 엄마인 나는,

어이가 없다.


의대생의 죽음과 발달장애인의 죽음은 같은 무게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일반적인 사람들이 의대생 아들을 두고 있을 확률과

발달장애인 아들을 키우고 있을 확률은

얼마나 차이가 날까.

둘 다 드물다.

그런데 사람들은 의대생 부모 입장에 감정이입을 더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것은 그냥 인지상정일까.


20대인 두 청년이 이 사회에 이룩해놓은 업적은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한 청년의 죽음은 너무나 허망하고 아깝다.

다른 한 청년의 죽음은 그저 가엾다.

그 둘이 생전에 가지고 있었던,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잠재력의 차이만큼

죽음의 무게는 다른가.


왜.

죽은 발달장애인의 아버지는

죽은 의대생의 아버지처럼

아들의 죽음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공론화하지 못하는가.


아무도,

공감해주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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