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17주
결혼을 하고 서는 2번째 설. 임신을 하고는 첫 번째 설 연휴를 보내러 부산으로 귀성길에 올랐다. 늘 그렇듯 짐도 많고, 기차를 타고 가는 게 더 피곤하다고 생각하는 남편의 생각에 따라 차가 막히지 않는 새벽에 이동하기로 했다. 조기퇴근이라는 자비로움이 없는 회사에 다니는 우리 부부는 설 연휴 마지막 날까지 풀 근무를 하고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잠을 청했다. 3시쯤 일어나 씻고 부산으로 떠났다. 길고 긴 명절이 될 줄 모르고.
부산에서 작은 방앗간을 하는 시댁은 명절 연휴 내내 바쁘다. 원래는 엉거주춤 가게에 서서 소일거리를 돕기도 했지만, 올해는 모르는 척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쓱 잠이 들기를 몇 번. 장거리 차 이동이 있어서 그런지 잠을 자도 피곤이 풀리지 않고, 뭔가 불편하기만 했다. 보통 시댁의 명절 스케줄은 이러하다. 모든 제사를 성당에 올린 천주교인지라, 아침에 차례상을 치러야 하는 힘듦은 없지만 온 가족이 새벽 미사를 가야 한다. 6시 반 미사를 보기 위해서는 4시 정도에 일어나서 씻고 준비를 해도 빠듯하게 온 가족이 시간에 맞춰서 집을 나설 수 있다. 미사를 드리고는 조금은 먼 친 적 댁에 방문하여 문안 인사와 함께 차례 지내는 것을 보고 산소가 있는 경주로 나선다. 비록 가벼운 스케줄이지만 우린 밤새 운전을 해서 내려온 장거리 여독이 쌓이고 쌓이기 마련이다. 어쨌든 이날도 명절 당일 미사를 드리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려 하는데, 이상하게도 잠은 오지 않고, 계속 뒤척였다. 그리고는 두통과 오한이 찾아왔다. 잠이 들었다. 깼다가를 반복하며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누워 있었다. 남편은 평창올림픽을 보는지 방에도 들어오지 않고 큰 소리로 웃으며 거실에서 TV만 보고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 거실로 나갔다.
"나 머리가 너무 아파서 잠을 못 자겠어."
"어??" 짧은 남편의 외마디를 듣고 방에 들어와 다시 누웠는데, 갑자기 모든 것이 서럽고 머리가 더더더 아파오기 시작했다. 결국 견디다 못해 새벽 1시쯤 근처 종합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을 갖춘 꽤 큰 종합병원이었지만 임산부는 받아주지 않았다. "산부인과는 없어요.", "산모는 진료하지 않습니다."서울보다 따뜻하다고 좋아했던 부산인데도, 오한으로 등줄기에 계속 소름이 돋았다. 몇 번의 진료 거부로 우리는 대학병원에 전화를 하고 방문하기로 했다. 대학병원에서는 "지금 오셔도 산모를 위해서는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타이레놀을 처방해드릴 수 있는 것 외에는요. 그리고 오셔도 야간 응급진료비를 포함해 10만 원 정도의 금액이 나올 것 같습니다. 가까운 약국에서 타이레놀을 구입하셔서 복용 후 휴식을 취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몸속에 태아라는 생명채를 품은 지 불과 몇 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모성애라는 것이 생긴 걸까. 내 몸 상태가 어떤지, 태아는 건강한지 정도만 알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아픈데 아기는 괜찮을까? 열이 나면 안 된다고 하던데, 열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그냥 집에서 쉬어란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와 타이레놀을 먹고 겨우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 일어났다. 약 기운이 떨어지자 서 있지도 못할 정도의 아픔이 밀려왔으며, 설사.. 까지 하기 시작했다. 결국 나와 남편은 명절 가족 일정은 모두 미루고, 여성병원을 찾아가기로 했다. 어제의 아픔을 겪고 싶지 않아 미리 전화를 했다. 하.. 본인들 산모가 아니라서 진료를 해줄 수가 없단다.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을까. 정말 응급인 경우에는 산모는 진료도 못 받는 것인가. 또 다른 병원으로 전화를 했다. 일단 오라고 해서 차를 타고 20분 정도 떨어진 큰 여성 병원을 찾아갔다. 응급 분만실이 열리자 따스한 온기와 함께 "아 이제 진료를 받을 수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멀리서 뛰어 오는 간호사가 "감기로 전화하고 오신 분이죠? 산모수첩 보여주세요." 말했다. "산모수첩은 어플로 가지고 있는데, 이 병원 산모가 아닌데요." "...." 간호사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조금 더 높아 보이는 간호사가 와서 말했다. 본인들 산모가 아니면 진료를 할 수가 없단다. 그리고는 분만실 밖으로 우리 부부를 조금씩 조금씩 밀었다. 뒷걸음치듯 다시금 추운 복도로 내몰렸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빠른 랩처럼 반복하며 대학병원을 가보란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냥 지금 내 상태와 태아가 잘 있는지만 보고 싶은데 말이다. 부산이 작은 도시도 다닌데, 이런 진료 거부. 흔한 일일까? 의문이 든다.
엄마는 아파도 안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사무치게 외로운 말인 것 같다. 명절 4일 내내 두통과 설사, 감기로 고생했고 다행히 서울에 올라와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감기 처방과 함께 초음파로 건강하게 잘 있는 축복쓰를 확인했다. 부산에서의 4일은 정말이지 서럽고 힘들었다. 엄마라는 이름이 참 무겁고 외로운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축복아 안녕?
다른 엄마들은 아파 죽어도, 타이레놀도 안 먹고 버틴다고 하던데. 엄마는 참을성이 없나 봐. 약도 먹고 오늘은 치과 진료도 받았단다. 건강하게 잘 있어 줘서 고마워. 근데 너 좀 크더라? 벌써 141g 하하. 엄마도 5kg나 쪘어. 몸무게 관리를 해야 하는데 큰일이구나... 우리 같이 운동 많이 해서 건강하게 만나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