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엄마
좁은 산도를 뚫고 나온 아기가 내 가슴 위로 얹혀졌다. 따뜻했다. 아기는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을 텐데 내 가슴을 ‘쪽쪽’ 소리를 내며 입으로 더듬더듬 거렸다. 초보 엄마는 어색했다. 나에게도 처음 있는 일이라.
난 초등학교 5학년 때 생리를 처음 시작했다. 그때는 빠른 성장이 부끄러워 숨겼으며, 같은 반 친구에게 비밀마냥 조심스럽게 털어놨지만 다음날 소문이 나서 꽤 원망했던 기억이 있다. ‘한 달에 한번 씩 몸에서 피가 나오는 이 쓸모없는 짓을 왜 하는 걸까’ 하고 불평했으며, 이후 커진 가슴 때문에 브래지어를 하고는 혹시나 친구들에게 비칠까 노심초사했다. 그렇게 인생에 절반 이상을 ‘왜?’ 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던 신체의 변화는 20여년이 지난 나를 엄마로 만들었다. 모든 것이 한 생명을 품어내는 준비과정이라 생각하니 이상할 것이 없었다. 오랜 시간 이 아가를 만나기 위해 내 몸은 조금씩 준비했나 보다.
모유수유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아기는 더듬거리며 내 가슴에 얼굴을 부비며 젖을 찾았으며, 나는 최대한 허리를 숙여 아기 입으로 가슴을 들이밀었다. 좀처럼 빨지를 못했으며 더듬거리던 아기는 울어버렸다. 신생아실 간호사는 분유를 가지고 왔다. 아기는 꿀떡꿀떡 잘 받아먹었다. 아기가 어미의 젖을 먹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데 왜 먹지를 못하는가 이내 초보 엄마는 좌절했고, 비싼 돈을 주고 가슴 마사지를 받고 또 손마디를 혹사 시키며 밤새 마사지를 해댔다. 내 아가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손가락이 으스러지도록 가슴을 이리 부비고 저리 문질렀다. 이런게 모성애 일까.
모유수유는 편안해지기까지 두 달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 후 하루에도 몇 번씩 서로의 들숨날숨을 느끼며 아기를 키워내고 있다. 아기는 다른 어떤 것도 섭취하지 않으며 오로지 내 가슴에서 나오는 젖만으로 자라났다. 목을 가누기 시작하고 머리가 자라고 살이 차올랐다. 내 몸에서 나오는, 나조차도 처음 보는 젖만을 먹고 아기가 자란다는 건 어떤 말과 글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그저 매일 마음이 따뜻하게 물든다. 경이롭다고 표현 해두자. 아마도 내가 살아가면서 한 일 중 가장 위대한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한 생명을 태어나게 했고, 그 아기를 매일 먹이고 있다. 어떤 도움도 받지 않고 서로의 살을 부비며 말이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쌓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