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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deleine Aug 24. 2021

'낳아주셔서감사합니다.'라고 처음으로 말했다.

33살 생일날.



태어난 지 삼십삼 년의 시간이 흘렀다. 

누군가에게는 모든 걸 할 수 있는 젊은 나이. 또 누군가에게는 계란 한 판도 훨씬 넘은 33살. 

난 33살 생일날 처음으로 부모님에게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왤까. 생일을 유별나게 파티를 하며 클럽을 다니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밤새 술을 퍼 마시지도 않았다. 

그저 여타 다른 날과 다르지 않았고, 가족들에게 주로 축하를 받았다. 

가족들과 생일을 보내던 내가. 굳이 서른 세살이 되어서야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마음에서 우러나 무엇이 끌리듯 내뱉었다. 내 딸과 남편이 행복의 호수로 나를 인도했다. 



결혼한 지 5년이 지났고, 내게는 세돌을 갓 넘긴 4살 딸이 있다. 

아이를 낳고 두번의 생일이 있었다. (만 두 살 때는 아빠의 꽃다발을 보고 질투했다는 귀여운 에피소드가 있지.) 하지만 이번은 좀 달랐다. 남편의 생일 소소한 생일 축하 이벤트에 마음이 푸근했고, 

딸 아이의 진심 어린 생일 축하한다는 멘트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리곤 바로 부모님께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나에게 이런 행복을 느끼게 해 준 사람. 삼십삼 년 전 나를 세상에 내놓은 우리 엄마, 아빠. 



아침부터 부지런히 일어나 셀프 생일상을 차렸다. 

어째 청승맞을 법도 한데,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내 생일에 초대된 우리 가족들에게 맛있는 한끼를 주고 싶었다. 



생일 상에 빠질 수 없는 미역국을 끓이고, 내 생에 처음으로 잡채도 했다. 잡채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그래서 엄마가 생일날 해주곤 했는데! 이날은 스스로 해봤다. 

질리도록 왕창 먹을 심상으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했는데, 너무 맛있어서 더 할 걸 이라고 후회했다. (ㅋㅋ)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수고스럽게 내 생일상을 차리는 일이 너무도 행복했다. 

아이가 몇 주 전에 자기의 생일어여서 그런지, 잠자기 전에도 '엄마 내일 생일이지? 정말 축하해'라고 말했다. 

'복습 해두길 잘했어'라는 모습으로 자기가 받은 사랑과 축하를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소고기 미역국만 끓임..

제일 쉽고 가장 많이 하는 소고기 미역국. 

사실 난 다른 미역국은 할 줄을 모른다. 산후조리할 때 여타의 미역국을 먹어봤지만 역시나 고기 기름이 좔좔 흐르고 참기름 맛이 감도는 소고기 미역국이 젤 맛있다. 미역의 비린내를 잡기 위해 나는 약간의 다진 마늘을 넣는다. 고기가 부드러워 으스러 질도록 마르고 닳도록 끓인다. 부드러운 미역국은 아이도 좋아하고, 국물이 시원하다. 미역국은 왠지 멸치 볶음이랑 먹으면 맛있다. 짭조름한 멸치 볶음과 미역국. 

(내 학창시절 단골로 등장하던 아침 메뉴여서 그런가.)


혹시나 하고 '미원'까지 사둔 내 첫 잡채. 

집 간장으로 만든 터라. 색이 예쁘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적당히 간이 맞았다. 

고기는 미리 재워서 간간하게 밑간을 하고, 야채는 원 팬으로 냅다 볶았다. 

부추를 넣을까 말까 고민했는데 불 끄고 남은 열로 부추와 참기름을 더하니 색감과 향이 확 살아났다. 

맛 본다는 명목으로 남편과 아이가 일어나기도 전에 한 접시를 해치웠다. (ㅋㅋㅋㅋㅋㅋ)



집에 있던 다른 밑반찬으로 구색을 갖춘 내 생일상.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를 만나 가정을 이룬 것에. 그간의 여러 감정들이 잔잔히 흘러간다. 계속 어디론가 가려고 노를 젓고 젓고 돌아보며, 후회했던 날들이 있었다. 

오늘 이 스스로 차린 생일 밥상으로 모든 게 치유가 되는 듯하다. 

생일이란 응당 부모에게 감사해야할 일인 것을 왜 이제서야 알았을까.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보이는 이 말 못할 감정들이 얄밉다. 

왜냐하면 나도 부모니까. 내 딸도 그럴테니 !!! 그래도 좋다. 

아이를 낳으면 부모에게는 고마움을 배우고, 아이에게는 진정한 사랑을 배우게 된다. 



내 사랑이 행복하길 바라고, 내 고마움이 오래 전할 수 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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