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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게 컸어? 하도 잘 참아서

나만 이렇게 힘든 걸까?

by 행복한워킹맘


'왜 나만 이렇게 힘든 거지?'


일상이 반복되는 날이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출근했다. 연속되는 회의를 쳐내고 장표 만드느라 점심도 걸렀다. 커피 7잔을 마셔셔인지 배가 고프지 않았다. 퇴근길에 붕어빵 4개를 사서 오물거리며 시댁으로 가는 길에 눈물이 터져 버렸다. 하루 일과에 내 시간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 마음이 뻥 뚫려 버렸다. 따뜻한 붕어빵 때문인지 파주 칼바람에도 춥지 않았다.


한 직장에서 23년을 근무했다. 인생 절반을 쏟아부었다. 회사 생활에 큰 고비도 없었지만 스펙터클 넘치는 사건도 없었다. 다만 일을 잘하면 잘할수록 일이 더욱 늘어났다. 시간을 아끼려고 점심을 굶기 시작한 지 10년이 넘으니 배가 고프지 않았다. 일과 육아를 해내야 하는 상황에서 터득한 생존 방식이었다. 유리 천장을 깨기는커녕 별 탈 없이 살아남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둘째를 낳고 3개월 만에 복직했을 때 위기가 찾아왔다. 2년 넘게 실패한 프로젝트를 정비하며 팀 리더가 바뀌었고 내 업무는 절정에 달했다. 자정을 넘긴 퇴근이 잦아지고 시댁에 아이들을 맡기고 주말에도 출근을 해야 했다. 시부모님께 양육을 맡기고 회사에 올인하던 시절, 남편의 눈에 나는 ‘성공에 눈이 먼 여자’였다.


밤 11시에 퇴근해서 조용히 시댁으로 들어가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방에 몸을 누이면 눈물이 쏟아졌다. 잠든 아이들 얼굴 보며 울다가 여벌 옷 몇 개와 스킨 하나가 내 물건 전부인 방에 누워 있는 내가 불쌍해서 울었다.


‘나는 돈 버는 기계인가?, 누구를 위해 돈을 버는 거지? 나는 내 인생을 살고 있는가?’ 수많은 질문이 떠올랐다.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 건 허무하잖아. 나에게도 반짝이는 것이 있지 않을까?’ 앞으로 나에게 남은 시간을 지금처럼 보내고 싶지 않았다. 눈물을 닦고 잠이 들고 다음날 출근을 했다. 어릴 때도 커서도 잘 참는 아이였다.




가난하게 컸어? 하도 잘 참아서


며칠 전 네플릭스에서 '작은 아씨들'이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쥐가 나오고 벌레가 나오는 옥탑방에서 살아가는 세 자매 이야기이다. 첫째 오인주는 대기업에서 경리일을 하는데 13층 왕따이다. 꿋꿋이 버티는 인주에게 어느 날 팀장이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


가난하게 컸어? 하도 잘 참아서


어릴 때도 커서도 좀 참아본 사람으로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참는 게 어때서? 버티는 게 어때서?' 그렇게 참으며 목숨 걸고 달려야 펜스를 넘는 거 아닐까.


난 진작부터 목숨 걸고 있었는데요.
목숨 걸고 달리고 있었다고요.
말을 타고. 아직도 믿고 있어요.
그 말이 펜스를 넘을 수 있을 거라고.
< '작은 아씨들' 드라마 오인주 대사 >


오인주가 말을 타고 펜스를 넘을 수 있을 거라 확신했던 것처럼 내 평범한 삶 어딘가에 반짝이는 것이 있다고 믿었다.


평범하기만 한 삶을 종료하고 싶어졌다. 그때부터 소설책 대신 자기 계발 책을 읽었고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인생을 살려면 경제적 기반이 필요하였기에 부동산 투자 공부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아직도 잘 참는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반짝이는 삶에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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