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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돌 Dec 22. 2020

생이 살 만한 거라고 말할 수 있도록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읽다가

젊은 시절 직장 생활을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조직에 속해서 관계를 버텨나갈 힘이 없었다. 남들에겐 별일 아닌 일에 쉽게 상처 받고 지치고 쓰러졌다. 20대 시절엔 뭘 하고 싶은지, 뭘 잘할 수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남들처럼 살아보려고 버텼다. 지나치게 힘을 주고 살다가 결국 30대 초에 나 스스로를 공격하는 병을 얻었다.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소소한 일들을 시작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 관계에 치이지 않을 수 있는 일. 욕심 내지 않고 살 수 있는 데에는 주변의 도움이 컸다. 부모와 형제와 남편의 도움.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데에 어느새 익숙해졌지만, 이런 처지를 남들 앞에 밝히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상황이 이러하니, 자신감이 생겼다 사라졌다 하는 내게 아이를 갖는다는 건 모험이다. 넉넉한 경제력과 건강한 신체를 가졌어도 출산과 육아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닮은 아이를 만나 오손도손 살고 싶다는 희망마저도 사치가 아닐까, 우리가 너무 못 미더워서 아이가 우리 집으로 오지 못하고 망설이는 건 아닐까. 무엇보다 아이가 원하는 부분을 채워주지 못하면 얼마나 힘들까 걱정이 됐다. 경제적인 것 외에도 우리를 둘러싼 사회, 환경 문제도 큰 위협으로 느껴졌다.

하마는 말했다.
그런 걸 옆에서 보면 얼마나 눈부신지 몰라.
아이를 가지고 싶냐고 내가 물으면 하마는 그 애가 겪을 아픔들이 상상돼서 너무 겁난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것들 말고, 그 애가 겪을 황홀도 있을 거잖아.
내가 말하자 하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있겠지.

예상할 수 있는 고통들에도 불구하고 생이 살 만한 거라고 믿게 될 때 아이를 낳기로 결정할 것 같다고 나는 말했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 p.193 밤 산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루하루를 제법 안온하고 평안하게 지내고 있다. 슬픔만큼 행복도 느끼고, 불안만큼 안정도 누리면서. 내게 주어진 삶이 축복이라고 느끼는 순간도 가끔 있다. 살아 숨 쉬는 지금의 순간이 얼마나 찬란한지 많은 것을 잃으며 깨달아왔다. 밝은 미래만을 바라보며 현실을 희생했던 세대와 포기를 먼저 배운 세대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 세대만의 반짝이는 희망이 아직은 존재한다고 믿는다. 아기에게 온통 불행만을 던져주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도 있다. 고통에도 불구하고 생이 살만한 거라고 믿고 있다. 앞으로도, 생이 살만한 거라고 말할 수 있도록 정성껏 살아갈 생각이다. 


아기가 생기면 부모에게도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한다. 전과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고, 아기의 눈을 보며 위협 천지의 세상과 싸울 힘을 얻게 되기도 하고. 수면 부족에 만성 피로를 겪으며 몸과 영혼을 갈아 넣는 부모들이 놀랍고 존경스럽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그들만의 생을 살아간다. 신나고 즐겁게 놀다가도 작은 일에 놀라 펑펑 울면서 하나 둘 인생의 기쁨과 역경을 배워나간다.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버팀목으로서의 부모는 아이들의 성장에 큰 힘을 주면서 스스로도 성장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한 가족의 삶은 흘러가고, 누군가는 그것이 인생이라고 말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누구라도 사랑하는 가족을 떠올린다.


그러니까.


우리 부부의 아이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와주었으면 좋겠다. 지금의 가족과 둘의 관계도 좋지만, 새로운 관계도 언제든지 환영이다. 삶이 전해 줄 황홀을 우리의 아이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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