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개월까지 가정보육을 한 조카들은 제법 컸을 때 어린이집에 갔다. 흔한 일이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두 돌이 지나도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아이는 거의 없다. 학원에 가야 친구들을 만나는 초딩들처럼 어린이집에 가야 또래들을 만나는 시대다.노산 엄마의 가치관이 흔들린 첫 번째 포인트였다. 혼자 문화센터를 돌며 가정보육을 하다가 동네 아이들 모두 어린이집에 다닌다는 걸 알고 생각을 바꿨다. 22개월이 되어 어린이집에 입소했고 시행착오 끝에 적응을 마쳤다. 아니, 마쳤는 줄 알았다.
두 돌에 말이 트인 태금이는요즘 '어린이집 가기 싫어'를 세상 정확한 발음으로 말한다. 이유는 다양한다. 선생님 시러, 친구들 시러, 무서워, 추워 여름이었다, 기타 등등. 막상 가서는 무척 잘 놀다 오지만 월요일이나 긴 연휴 다음날 유독 심해진다. 우리네 월요병과 다를 바가 없다. 이왕 엄마랑 놀던 거, 그냥 집에 좀 더 편하게 있고 싶은가 보다.
아침마다 늘어져있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서 어린이집에 보내는 일은 생각보다 에너지소모가 크다. 혼자 이리저리 차를 굴리며 잘 노는 태금이인만큼 자신만의 기준이 분명해서 더 그렇다. 놀아달라 징징대지는 않지만 하기 싫은 일을 시키기가 무척 힘들다. 잘 꼬셔지지 않는다. 처음엔 어린이집 가는 길에 주는 사탕이나 과자로 조금 설득이 됐는데 점점 안 먹히기 시작한다. 공사차나 이사차가 있는 날은 그나마 럭키다. 이도저도 없는 날엔 아침 내내 전쟁이다.
꾸역꾸역 세수, 칫솔질, 옷 입기를 마치면 현관문 앞에서 한번 더 실랑이가 벌어진다. 어린이집은 갈 거지만 걸어갈 수 없단다. 매미처럼 엄마 몸에 팔다리를 걸고 매달릴 정도의 힘이면 어린이집까지 뛰어가도 될 것 같은데, 싫단다. 현관문을 열고 시원한 바깥바람을 맞으면 신나게 뛰어갈 거면서 문지방 넘기는 애나 어른이나 힘든 모양이다. 일단 알겠다며 서둘러 신발을 꿰어 신고 문을 연다. 그 다음은 자동반사. 태금이가 뛰쳐나간다. 잠시나마 숨이 틔이는 순간이다.
다음 난관은 주차장이다. 인도와 차도의 차이를 열심히 설명해 주었지만 그 중간 어디쯤인 주차장은 참기 힘들어한다. 늘어서 있는 차의 종류와 소유자를 모두 물어본 후에야 아랫동으로 내려간다. 단지 안 작은 횡단보도를 건너면 이번엔 잠시 쉬어가는 타임이다. 인도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과 차들을 구경한다. 인도에 멀대같이 서있는 나와 다리옆에 얌전히 앉아 있는 태금이는 반대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다. '태금아 어린이집 가야지~~' 동네 아이엄마들의 채근은 태금이에겐 익숙한 bgm일 뿐이다.
10분 거리 어린이집에 가는 길, 시간은 어느새 40분이나 지나있다. 이제 좀 서둘러야 한다. 아껴뒀던 뽀로로 사탕을 꺼내 들자 태금이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난다. '누구지? 누구 사탕이지?''오늘은 루피네. 태금이 사탕이지~ 요거 먹고 이제 가자~~' 사탕 유혹 후에도 안아라, 안된다, 뛸 거야, 뛰지 마라, 난리를 치다 보면 20분이 지나서야 어린이집에 도착한다. 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이제 마지막 난관이 남았다. 담임 선생님께 인계하는 순간. 안녕하세요~ 인사는 하면서도 갑자기 나를 붙잡고 세상 애절하게 '엄마 좋아'를 외친다. 가장 힘든 순간이다. 1분 남짓한 시간 동안 인생을 돌아보게 된달까. 이게 맞나? 아이에게 너무 버거운 일인가? 다 물러야 하나? 하지만 어느새 능숙한 선생님에게 넘어가 매미처럼 안긴 태금이는 웃으며 나에게 '안녕히 다녀오세요~' 한다. 뭐야 이게. 여긴 어디야. 나는 누구야.
탈탈 털린 멘털을 다잡으며 어린이집에서 나온다. 오늘도 안전하고 즐겁게 태금이만의 시간을 보내길 기도하며 혼자 터덜터덜 길을 걷는다. 월요병 극복도 적응하는 과정이겠지. 세상에 섞이는 법을 배워가는 태금이만큼 점점 엄마가 되어가는 나를 기특히 여겨본다. 남들 다 하는 일을 나 혼자 힘들어하는 거 아닌가 조금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엄마에게 소중한 시간을 선물해 준 어린이집 선생님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가져본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월요병은 예외가 없다. 이제 갓 기관생활을 시작한 태금이도 마찬가지다. 주말 동안 신나게 돌아다녔든 집에서 편안하게 쉬었든 다시 영차! 힘을 내어 문지방을 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더 이상 어리둥절한 채 유모차에 실려 어린이집에 가던 태금이가 아니기에 겪는 일일테다. 평범한 일상이 있어 주말이 더 특별해지고, 평일의 지루함이 우리를 조금 더 자라게 해 주리라 믿는다. 월요병 때문에 소중한 일상을 포기할 수는 없다. 조금 더 간절한 마음으로 씐나는 주말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