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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사의 몫 Nov 19. 2020

우아한 여성스러움, 비오니에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과 나폴레옹 1세 조세핀 황후도 좋아했던 품종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품종이 다 제각각의 매력이 있지만, 우아한 매력을 발산하는 것으로는 비오니에를 최고로 꼽고 싶습니다. 북부 론의 꽁드리유에서 단일 품종으로 사용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진 비오니에는, 포도알이 작고 껍질은 두꺼우며, 맛으로는 뮈스카 품종에서 나는 맛과도 살짝 비슷하지요. 비오니에 포도나무는 바람에 약해서, 울타리를 만들어 타고 오를 수 있도록 고정시켜 주는 것이 특징입니다. 비오니에는 꽤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는데, 비오니에 품종의 장점을 잘 아는 와인 메이커들이 본인들만 알고 있는 품종으로 쉬쉬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요.


비오니에라는 단어의 어원이, 프랑스어로 포도나무를 뜻하는 Vigne 레몬 나무를 뜻하는 citronnier라는 단어가 조합된 거라는 도 있는데요. 마치 음료에 레몬 한 조각을 곁들였을 때처럼 상큼함과 청량함이 비오니에의 매력 포인트입니다. 다른 청포도에 비해서 산미는 낮지만 은은한 상큼함이 살아 있어요. 비오니에를 입에 머금으면 바나나 및 파인애플 등 열대 과일, 오렌지, 레몬, 살구, 백도뿐 아니라 꿀과 달달한 향신료 아로마가 느껴지는데, 와인이 조금 더 성숙하게 되면 아카시아 등 흰꽃 향기가 진해지는 것이 특징이에요. 비오니에로 잘 만든 와인은 상큼함, 꽃향기와 열대과실 아로마가 궁극의 조합을 이루는데, 이를 가리켜 어떤 와인 메이커 분은 정성스레 만든 비오니에를 병입할 때 마치 곱게  키운 딸을 시집보내는 심정이라고도 하시더라고요.


이렇게 매력 넘치는 비오니에가 사실은 거의 사라질 뻔한 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습니다. 바로 필록세라와 제1차 세계대전, 1930년대의 경기침체 및 와인 생산지역의 산업화 때문인데요. (필록세라에 대해서는 다룰 이야기가 많아서 별도로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1965년에는 겨우 6 헥타르에서만 비오니에를 심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비오니에를 시그니처 품종으로 사용하는 꽁드리유 와인메이커들의 노력에 힘입어 꽁드리유 내에도 재배 면적이 늘어났으며, 비오니에 와인이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하면서 현재 전 세계적으로 총 만 헥타르의 비오니에 포도밭이 있다고 합니다.


비오니에의 요람 꽁드리유(Condrieu)

꽁드리유는 북부 론 지역에서 청포도인 비오니에로 화이트만을 생산하는 아뻴라시옹입니다. 이 지역은 대륙성 기후에 속하고 바람이 많이 불며, 층층이 경사가 진 포도밭과 편암과 화강암을 기반으로 한 떼루아르가 특징이에요. 일반적으로 편암이 섞인 밭에서 자란 포도는 와인에 에너지와 신선함을 더해 주고, 화강암이 섞인 밭에서 자란 포도는 와인에 섬세함과 우아함, 그리고 미네랄을 더해줍니다. 꽁드리유 아뻴라시옹에는 총 170 헥타르의 포도밭이 속해 있으며, 이는 보르도의 유명 샤토가 소유한 포도밭 크기와 맞먹는 작은 사이즈입니다.


비오니에의 성지 샤토 그리예(Chateau Grillet)

비오니에의 요람이 꽁드리유(Condrieu)라면, 비오니에에 훈장을 달아주는 것은 샤토 그리예(Chateau Grillet)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총 3.5 헥타르의 포도밭에서 비오니에 단일 품종으로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는 샤토 그리예에서는 3세기경부터 와인을 생산해 온 역사를 자랑합니다. 17세기에 이르러 파리에도 그 명성이 자자해졌으며, 당시 프랑스 공사로 재직 중이던, 미국 3대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과 나폴레옹 1세의 황후 조세핀이 좋아하던 화이트 와인으로도 유명합니다. 샤토 그리예는 리옹의 부르주아 가문들이 대대로 소유하였다가, 1827년부터는 네이레 가셰(Neyret-Gachet) 가문이 소유 및 관리해 왔습니다. 앙리 가셰(Henri Gachet)가 소유주로 있던 1936년에 정식 아뻴라시옹으로 등극했으며, 프랑스 아뻴라시옹 중에서도 매우 사이즈가 작은 편에 속합니다. 2011년, 피노 가문(famille Pinault)에서 매입하면서 191년 만에 소유주가 바뀌었으나, 아뻴라시옹의 전통과 명성은 그대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샤토 그리예는 좁은 타원형의 포도밭이 위에서 아래로 층층이 이어져 마치 고대 로마의 원형 극장을 연상시키는 구조로 유명하죠. 일조량이 높고 따뜻하며, 남쪽을 향하고 있어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리예(Grillet)라는 이름의 어원 또한 '따사로운 햇살에 그을린, 뜨거워진'이라는 데서 온 것이지요. 포도나무의 평균 연령은 45세 전후이며, 해발 150에서 250미터 사이 높이에서 아찔한 경사를 그리는 87개의 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로마 시대 때부터 꾸준히 정성 들여 관리해 온, 바위 암석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포도밭이 샤토 그리예 떼루아르의 매력이지만 또 그만큼 관리하기 까다로운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게 좁은 포도밭이 층층이 경사를 이루는 형태 덕분에 포도나무는 최대한의 햇빛을 받을 수 있어 포도의 완숙도가 높은 동시에, 이 지역 특유의 서늘한 기후에서 오는 산미와 청량함은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이런 포도밭 구조가 비오니에 포도에는 천국이지만, 키우는 사람에게는 지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3.5 헥타르의 포도밭 내에서도 국소적으로 기후가 달라서, 각 구획마다 포도나무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정성을 들여야 하죠. 그만큼 사람의 품이 많이 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특정 구획은 너무 좁아서 한 사람만 겨우 드나들 수 있기 때문에, 포도나무 재배 및 관리의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합니다. 고유의 떼루아르가 달라지지 않도록 매년, 바위 암석산에 둘러싸인 포도밭 상태를 재점검하여 주변 암석이 닳거나 마모되어 포도밭 위로 무너져 내리지 않는지 확인하는 과정도 필수입니다. 수확철에는 각 구획 별로 포도를 수확해 구분한 후, 포도 품종 본연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천천히 즙을 짜냅니다. 이렇게 느린 속도로 착즙하는 데에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사람의 품도 많이 드는데, 비오니에 특유의 미네랄 아로마와 우아함을 한껏 끌어올려 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해요. 프랑스산 오크통만을 고집하며 18개월 동안 숙성되는데, 매해 20%의 오크통은 새 것으로 교체합니다.


비오니에로 만든 와인을 추천드려 볼까요?


예산에 제한이 없고, 구할 수 있다면!

샤토 그리예의 2015년 빈티지입니다. 가격은 300유로 전후. 2015년 빈티지는 샤토 그리예 와인 중에서도 남다른 퀄리티를 자랑합니다. 풍부한 일조량에서 오는 와인의 완성도와 탄탄한 바디감도 갖추고 있으며, 동시에 싱그럽고 청량한 아로마와 입안에서 맴도는 유질감이 기분 좋은 와인입니다. 2015년 빈티지는 2030년까지 보관 가능하지만, 작년부터 마실 준비가 되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생선이나 닭오리 등의 가금류, 해물 타르트나 향신료가 좀 들어간 요리들과도 잘 어울려요.


컬렉터들과의 경쟁을 원한다면,

도멘 마틸드 & 이브 강로프(Mathilde et Yves Gangloff)의 꽁드리유, 가격은 70유로 전후입니다. 코끝에 갖다 대면 스모키한 아로마와 솔티드 캐러멜 향이 인상적이며, 입안에 머금으면 놀라울 정도의 집중도와 섬세하고 우아한 풍미, 그리고 신선하고 상큼한 과실 아로마가 기분 좋은 와인입니다. 8헥타르에 약간 못 미치는 작은 규모로 1987년 설립된 이 와이너리에서는 꽁드리유, 생 조제프, 꼬뜨 로티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으며, 연간 7천 병만의 꽁드리유를 빚어내다 보니 품절 현상도 잦아 와인 컬렉터들에게도 인기입니다. 와인 메이커 이브 강로프는 스트라스부르 출생으로, 엄한 군인 아버지 밑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뮤지션으로 자라났습니다. 1980년대 초에 아티스트인 형 피에르가 있던 샤토 암퓌에 놀러 간 이브는, 형 옆에서 음악을 하며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와중, 메종 들라스(Maison Delas) 와이너리에서 연락을 받게 됩니다. 갑자기 연락도 없이 출근하지 않는 직원을 대신해 잠시만 일을 좀 도와달라는 것이었죠. 이브는 생산 파트에서 임시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이 인연을 시작으로 와인업계에 평생 몸담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뒤 마틸드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본인들의 포도원을 세울 계획을 실행하죠. 이브가 메종 들라스에서 근무하는 동안 조금씩 모은 돈으로 1984년에 처음으로 꽁드리유에 포도나무를 심습니다. 그리고 1988년 첫 빈티지를 출시하죠.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와인 라벨 디자인은 형인 피에르 강로프의 작품입니다.


마지막으로, 샤토 그리예 및 꽁드리유 등의 전형적인 북부 론 와인과는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비오니에 와인을 추천드릴게요. 파미 코스트(Famille Coste)의 담므 블랑슈(Dame Blanche)로, 지역상으로는 론이지만 비오니에를 가지고 부르고뉴 화이트 느낌을 주고 싶었던 와인 메이커의 바람이 고스란히 담긴 와인입니다.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으면서도 전체적으로 우아한 분위기가 특징으로, 북부 론 지역에서 점점 무겁고 바디감이 강조되어 바로 가볍게 마시기보다는 오래 킵해야 하는 와인을 만드는 트렌드와는 달리, 포도 특유의 풍성한 꽃향기와 열대과일 아로마는 유지하면서도 산뜻하고 청량한 느낌은 그대로 갖고 있는 것이 매력입니다. 또한 서늘한 부르고뉴에 비해서는 토양 온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론 지역에서 만드는 화이트다 보니 살구, 복숭아, 서양 배 등의 과실 아로마도 더 진해서, 프루티한 아로마가 비오니에 특유의 높은 유질감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밸런스 좋은 화이트 와인입니다. 위의 두 와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접근성 높은 가격대로, 한국에서도 구하실 수 있습니다. :)



레퍼런스:

"Cépages & Vins" François Collombet 

http://www.merveillesdusommelier.fr

https://www.larvf.com/,chateau-grillet,10611,405152.asp

http://vinformateur.com/

https://fr.wikipedia.org/wiki/Thomas_Jefferson

http://chateau-grillet.com/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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