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존댓말 체계로 본 캐릭터와 언어의 상관관계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한국어로 번역될 때, 가장 어색함을 느낀 장면은 바로 존댓말의 유무이다. 일본어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이나 나이가 많은 손윗사람에게도 반말을 하던 인물이 한국에서는 곧바로 존댓말로 바뀌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나는 그런 번안에 다소 위화감을 느꼈다. 반말을 존댓말로 바꾸어버리니, 그 인물의 캐릭터가 바뀌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는 일본과 한국의 <존댓말>, 즉 <경어> 체계가 상이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와,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요소의 차이가 만들어 낸 복합적인 문제였다.
한국어 경어 체계는 흔히들 <절대 경어>라고들 한다. 상대방이나 문맥에 상관없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지칭할 때에는 일단 높임말을 써야 하는 것이 예의였다. 만일 60대 나이 지긋하신 교수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50대 후반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일단 아버지도 자신보다 나이가 많으므로 일단은 높임말로써 대하여야 한다. 특히나 가족 관계에서 이러한 경향이 강한데 이 또한 한국어 경어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일본어 존댓말 체계는 <상대 경어>라고들 한다. 상대방이나 문맥에 따라 비록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높임말을 쓰면 안 되며, 설령 높임말을 쓰면 굉장히 어색한 문장이 되어버리고 만다. 일본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인 <우치(内, 즉 심적으로 자신이 속해있다고 생각하는 집단)>과 <소토(外, 심적으로 자신이 속해있다고 생각하는 집단이 아닌 외집단)>가 굉장히 중요하며 이는 상황에 따라 유기적으로 바뀌는데, 기본적으로 <우치>에 해당하는 사람을 지칭할 때에는 경어를 쓰지 않는 것이 예의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회사 사람이랑, 심지어 그 상대가 갓 입사한 신입사원일지라도 그 사람에게는 경어를 쓰고 자기 상사나 사장, 심지어 부장을 지칭할 때에는 경어를 사용하면 안 된다. "지금 사장님 안 계시는데요"가 아닌 "지금 사장 없는데요"라고 해야 자연스러운 일본어 경어가 된다. 최근에는 한국어 경어 체계도 <상대 경어>화 되고, 일본어 경어 체계도 <절대 경어>화 되는 등 절대적인 경계가 점차 허물어지고 있는 추세이지만, 지금도 뿌리 깊게 박혀있고 쉽사리 무너뜨릴 수 없는 경향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어 경어 체계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단순히 상대방을 드높이는 효과뿐 아니라 상대에 대한 배려나 자신의 품위까지 나타낸다는 점에 있다. 일본어를 웬만큼 배운 분들이 좌절하는 하나의 벽이 바로 이 경어 체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존경어><겸양어><정 중어>로 된 세 개의 체계로 배운다. 각 경어를 아주 간략하게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존경어: 상대방을 드높인다. 혹은 상대방이 속한 집단 전체를 드높인다.
겸양어: 자신을 낮춘다. 혹은 자신이 속한 집단 전체를 낮춘다.
정 중어: 상대나 자신을 낮추는 기능 없이, 그저 정중함만을 나타낸다.
2010년 전후로 일본에서 배포된 <경어의 지침>에서는 이를 더욱 세부적으로 나눈 다섯 개의 체계로 설명하고 있다. <존경어><겸양어 1><겸양어 2><미화어><정 중어>로 겸양어가 더욱 세부적으로 나뉘고, <미화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생겼는데, 겸양어의 세부 사항은 전공자도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넘어가더라도, <미화어>는 자신의 품위를 나타내는 말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경어 체계와는 결이 다르다는 것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미화어>나 <정 중어>는 한국의 경어 체계와 달리 다른 사람을 존중하거나 높인다기보다는 자신의 품위나 격을 나타내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가장 단적으로 나타내는 예로,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는 친구 사이에서도 소위 <경어>를 사용하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성별로는 여성이, 외적으로는 매우 부유하고 우아하게 사는 인물들이 경어를 많이 사용하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이 인물들의 말은 한국에서 예외 없이 반말로 고쳐지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반말을 사용하던 인물이 한국에 들어오면 존댓말로 바뀌어버리는 경우도 여럿 존재한다. 보통 일본의 어린이 대상 애니메이션의 남자 주인공들, 쉽게 예를 들면 <포켓몬스터>의 주인공이나 <짱구는 못 말려(크레용 신짱)>의 주인공이 존댓말을 쓰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부모님은 물론 처음 만나는 어른들에게도 일단 반말을 쓰는 경우가 매우 많다. 하지만 더 웃긴 것은, 어른들이 그런 주인공을 <버릇없다>고 느끼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하긴, 애니메이션에서 현실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웃음거리가 될 뿐이겠지만 말이다)
문제는 이를 통해 느껴지는 인물의 캐릭터가 크게 달라진다는 점에 있다.
일본어의 경어 체계는 단순히 상대를 드높일 뿐 아니라 문맥에 따라서는 자신의 품위를 나타내는 경우도 있고, 이는 곧 상대방과의 <심리적 거리>를 나타내기도 한다. 즉, 특정 인물이 경어를 사용한다면, 그 인물은 <품위 있으며 격이 높고, 한편으로는 상대방과 적당한 거리를 두어 그 영역을 침범하지 않음으로써 상대방을 배려하고 있다>는 복합적인 캐릭터가 부여된다.
하지만 한국어의 경어 체계는 우선 상대를 드높이는 경향이 강하다. 즉, 특정 인물이 경어를 사용한다면, 그 인물은 <사회적으로 올바른 교육을 받고 예의가 바르며 상대방을 존중하고 있다>는 캐릭터를 부여받게 된다.
특히나 일본어는 현실과 가상(애니메이션이나 소설, 드라마 등)의 언어 체계를 별도로 가지고 있으며 일본어 화자는 무의식적으로 나누어 쓰는 등 상당히 특수한 축에 속하는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수성을 생각하지 않고 <나이가 어린 인물이 어른에게 말할 때는 무조건 존댓말을 써야 한다>는 1차원적인 생각으로 언어를 바꾸어 버리면, 이야기 전체의 밸런스가 흔들려버릴 수도 있다. 특히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본 작품에서 이런 문제는 매우 큰데, 아직까지도 이러한 의식을 가진 사람이 적다는 점은 다소 우려를 표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해외의 작품을 한국에 방영을 하는 이상, 그 나라의 사정에 맞추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므로, 단순히 <경어>를 쓰거나 쓰지 않게 하는 걸 무차별적으로 비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 번역 문제에만 지나지 않고 해당 인물의 캐릭터나 작품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을 진행하여야만 한다. 어쩌면, 아직 언어를 통해 캐릭터가 표출된다는 사실을 많이 알지 못하고 그에 관한 연구를 많이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이유야 어찌 되었든, <언어>와 캐릭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늘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캐릭터를 될 수 있는 한 손상시키지 않고 데리고 올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을 떠올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