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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에녹 May 30. 2024

평생 볼 벚꽃 다 보는, 오사카 교토 벚꽃 명소

4월의 오사카 (3)


한 달 살기 일정 중 벚꽃 만개 시즌이 겹쳐 있었으니, '평생 볼 벚꽃은 다 봤다' 싶을 정도로 벚꽃 구경은 원 없이 했다. 더욱이 취재를 목적으로 하는 여행 작가로서 오사카에 왔으니 매일 다른 곳으로 벚꽃을 보러 다녔다.


하고많은 장소 중에서 나만의 벚꽃 명소를 꼽으라면 오사카성도, 조폐국도, 교토의 어느 절도 아니었다. 내가 매일같이 벚꽃을 본 곳이 있으니 바로 숙소 앞에 작은 놀이터다. 숙소에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이 놀이터의 벚꽃을 마주했다.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시기에 이곳에 와서, 벚꽃이 만개하고, 바람과 함께 벚꽃 잎이 흩날리며 떨어지고, 벚꽃 잎이 떨어진 가지엔 푸른 잎이 나기 시작해서 그 푸른 잎이 나무를 무성하게 덮은 것까지 매일같이 봤다. 낮에도, 밤에도, 비가 오는 날에도, 해가 쨍쨍한 날에도, 구름 낀 흐린 날에도 벚꽃을 보았으니 이만하면 나만의 벚꽃 명소 1등이 아니겠는가. 유명한 벚꽃 명소에서 보는 벚꽃들은 그 맛대로 화려한 맛이 있었지만, 숙소 앞 놀이터에서 보는 벚꽃은 마치 매일 먹는 집밥처럼 자극적이지 않고 슴슴한 그런 나만의 벚꽃 명소였다.


오사카에 온 첫날, 피어오르기 시작하던 집 앞 놀이터 벚꽃.
활짝 피어오른 만개 시기를 거쳐,
불과 3주 만에 이렇게 푸르른 잎으로 변했다.


1) 오사카시 조폐국 본국


본격적으로 처음 벚꽃놀이에 간 것은 오사카시 조폐국과 그 인근 수변공원을 따라 이어지는 벚꽃놀이였다. '오사카 벚꽃'하면 오사카성에 활짝 벚꽃이 떠오르겠지만, 사실 오사카에서 벚꽃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바로 조폐국이다. 조폐국 벚꽃은 인터넷을 통한 시간대별 사전 예약을 미리 받아서 적정 인원만을 입장시켜 보다 쾌적하게 벚꽃 구경이 가능하도록 운영하고 있었다. 친구를 통해 조폐국 벚꽃이라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때는 "조폐국에서 벚꽃 축제를 운영한다는 건가? 돈 만드는 조폐국이랑 벚꽃이랑 무슨 상관이지?"라는 단순한 의문이 들었으나, 알고 보니 조폐국이 위치한 곳에 다양한 벚꽃 나무가 있어 오사카에서 벚꽃 축제로는 가장 유명한 곳이었다.


이곳의 벚꽃놀이는 말 그대로 벚꽃축제라고 할만하다. 일본에는 '마츠리'라고 하는 축제 문화가 있는데 연중 시기별 다양한 마츠리가 있으며 '사쿠라마츠리(벚꽃축제)'도 그중 대표적인 마츠리다. 마츠리에 빠질 수 없는 것은 '야타이'라고 하는 길거리 포장마차다. 즉 '마츠리'에 가서 맛있는 '야타이' 음식을 먹으며 즐기는 것이 일본 마츠리 문화의 기본이라 하겠다. 조폐국 입구로 가는 길은 강가를 따라서 산책하기 좋은 수변공원이 펼쳐져 있는데, 이 수변공원에 수십 개의 야타이가 늘어서 각각 다른 다채로운 음식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한국인도, 외국인도 거의 없었다. 대부분 일본인이었다. 오사카와서 일본인들만 있는 지역 축제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니. 제대로 찾아온 것 같다는 생각에 점점 설레기 시작했다.



강가를 따라 길게 늘어선 수변공원에는 활짝 핀 벚꽃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집 앞 놀이터에서 본 벚꽃들은 귀여운 수준이었다고 잠시 생각했다. 그만큼 화려하고 또 아름다웠다. 잔잔히 흐르는 강물, 분홍빛 벚꽃잎과 군데군데 보이는 초록빛의 조경들, 그리고 그 사이를 거니는 사람들의 행복해하는 모습. 눈으로 담든 사진으로 담든, 어떻게 담아도 완벽할 수밖에 없는 멋진 풍경이었다. 처음으로 "와, 나 일본에서 벚꽃 구경 제대로 하고 있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야타이 거리를 지나고 나면 조폐국 입구에서 예약 확인을 하고 본격적인 조폐국 벚꽃 관람을 시작한다. 그런데 사실 벚꽃은 아까 야타이 거리에 훨씬 풍성하게 있는 느낌이었다. 굳이 조폐국 예약을 하지 않아도 이 근처에서 충분히 벚꽃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만 조폐국 내부에는 훨씬 다양한 종류의, 그리고 평소에 보지 못했던 신기한 품종의 벚꽃들도 구경할 수 있었다. 실제로 조폐국에는 약 40종, 400그루의 벚꽃나무가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 전국의 벚꽃 덕후들은 여기에 다 모였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은 벚꽃 하나하나를 사진 찍고, 유심히 살펴보고, 그렇게 벚꽃을 즐기고 있었다.



 2) 오사카성 니시노마루 공원


조폐국을 다녀온 날 너무 많이 걸어 다녔던 나머지 다음 날 약간 몸살 기운이 생겼다. 쉴까 생각하다가 "온 지 며칠 되었다고 벌써 쉴 수는 없지."라고 생각하며 몸을 일으켜 나섰다. 그렇게 두 번째 벚꽃 구경을 간 곳은 오사카성 옆에 있는 니시노마루 공원이다.


나에게 있어 오사카성은 오사카를 가장 대표하는 이미지다. 오사카 벚꽃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를 처음 떠올렸을 때도, 오사카성이 배경으로 보이는 벚꽃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떠올리는 벚꽃과 오사카성이 함께 한눈에 들어오는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오사카성으로 곧장 가면 안 되는 것이었다. 오히려 오사카성 옆에 있는 니시노마루 정원에서 내가 생각하는 그 오사카성과 벚꽃이 한데 어우러진 그림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오사카성에 가기 전에 니시노마루 정원에 먼저 들렀다. 일본의 많은 성은 대체로 이처럼 잘 가꾸어진 정원이 함께 있다. 오전 9시도 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지만 이미 많은 인파가 몰려와 있었다. 벚꽃이 만개하는 마지막 주말이었기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벚꽃을 보기 위해 이곳에 방문했다. 그렇게 인파 속에 휩싸여 오사카성이 보이는 명당자리를 찾아갔다. 이미 명당자리에는 많은 벚꽃 명소에서 보았던 파란 돗자리가 잔뜩 깔려 있었다. 아침 9시 시간이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아마 점심 전에 이 돗자리는 금세 꽉 차겠다 싶었다. 역시 벚꽃에 진심인 일본인들. 나 역시 언젠가 다시 일본에 벚꽃놀이를 온다면 이 파란 돗자리를 한 번쯤은 차지해 보겠다고 다짐했다.



3) 교토 아라시야마


교토에 벚꽃을 보러 간 것은 재미있게도 친구네 회사의 교토 출장을 따라간 일이었다. 친구네 회사 사장님은 한국인이다. 사장님이 친구를 좋게 잘 봐주신 덕에, 감사하게도 나와의 저녁 자리도 한 번 마련해 주셨다. 그때 나의 책 집필 이야기를 드리자, 사장님은 마침 다음 날 교토에 벚꽃 촬영 출장이 있는데 시간이 괜찮으면 함께 하자고 말씀해 주셨다. 나야 이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다음 날 이른 아침, 전철도 버스도 아닌 사장님의 승용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통해 교토에 갔다.


그렇게 교토에서 처음 들른 곳은 교토의 대표적인 관광지, '아라시야마'였다. 아라시야마는 관광지 이름이자 '산(야마)' 이름이기도 하다. 아라시야마는 일본의 전통이 잘 보존된 관광지로서 유명하기도 하지만, 일본의 100대 벚꽃 명소 및 100대 단풍 명소로 선정된 장소이기도 하다. 특히 교토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어, 오사카에서 교토를 방문할 때 가장 먼저 들르는 관문과도 같은 곳이기도 하다.


아라시야마에서의 벚꽃은 벚꽃 그 자체로 화려하다기보다는 기존 아라시야마의 아름다운 풍경과 잘 어우러진 느낌이었다. 나에게 있어 오사카성이 오사카의 상징과도 같은 이미지라면, 아라시야마는 교토의 상징과도 같다. '고즈넉하다'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교토 중에서도, 가장 고즈넉한 곳은 바로 이 아라시야마가 아닐까 생각했다.



4) 교토 닌나지


다음으로 간 곳은 교토의 닌나지(인화사) 절이다. 888년에 세워졌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을 만큼 역사·문화적으로도 의미 있는 장소임과 동시에, 교토의 가장 유명한 벚꽃 명소 1위로 꼽히기도 하는 곳이다. 역시 1위 명소답게 이곳에서, 나는 오사카 한 달 살기 중 가장 많은 벚꽃 사진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벚꽃을 보고 느끼며 최대한 내가 본 것을 그대로 사진에 담고자 노력했다.


닌나지가 좋았던 것은 거대한 벚꽃나무 밭이 있어 마치 물속에 풍덩 빠지듯 벚꽃나무 숲에 풍덩 빠져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곳에서의 벚꽃 나무는 내 시선보다 훨씬 위에 존재해서 늘 올려다보는 느낌이었다면, 이곳에서 벚꽃은 내 눈앞을 자꾸만 치는, 그런 낮은 벚꽃나무들이었다. 벚꽃과 나의 온몸이 함께 부대끼는 느낌이랄까. 멀리서 바라만 보던 벚꽃을 눈앞에서 보고 코로 향을 맡고 손으로 만져보는 오감 체험이 가능한 곳이 바로 이 닌나지였다.



닌나지는 교토의 아름다운 전통 건축물과 벚꽃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며칠 전 오사카성과 벚꽃을 함께 찍으며 그 풍경의 아름다움을 느낀 바가 있다. '고주노토'라고 하는 닌나지 중심의 오층탑과 어우러진 벚꽃의 모습은 그 이상이었다. 하늘은 또 왜 이렇게 파랗고 구름 한 점 없는지, 파란 하늘 밑의 닌나지 오층탑과 그 밑을 아우르고 있는 벚꽃나무는 정말 여행 잡지를 보는 듯한 일본스러움을 연출하고 있었다.



닌나지 역시 대부분 일본인밖에 없는 듯했다. 특히 수학여행 또는 현장체험을 온 듯한 단체 학생들도 많이 보였다. 일본인 위주로 있는 관광지에 가면 무언가 모를 뿌듯함이 있다. 일본 현지인들이 보고 느끼는 것을 나도 함께 즐기고 있다는 안도감에서 오는 뿌듯함인 듯하다. 한쪽에서는 예비 신혼부부로 보이는 한 커플이 예쁜 벚꽃들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있었다. 벚꽃놀이 온 할아버지, 할머니들, 수학여행 온 학생들,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부부까지. 일본인들의 지극히 평범한 삶 속에서 나 역시도 그들과 함께 벚꽃을 즐겼다.



5) 교토 기찻길 벚꽃 (나루타키역 - 우타노역 사이)


점심을 먹고 간 곳은 교토의 기찻길 벚꽃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정확히 어느 지점이라고 명시하기는 어려운데, 교토 중심부에 있는 '나루타키역'과 '우타노역'을 지나가는 보라색 '란덴 열차'가 다니는 기찻길이었다. 친구네 회사가 벚꽃 촬영차 교토에 출장에 온 것이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해 사전 조사를 모두 끝마친 상태였고 나는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기찻길 벚꽃 명소는 사실 벚꽃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보라색 란덴 열차와 벚꽃을 함께 사진에 담을 수 있는 사진 명소에 가까운 곳이다. 인스타그램에서 그렇게나 많이 보았던, 벚꽃나무를 스치며 지나가는 일본 기차의 감성. 그 감성을 촬영하러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사진과 영상을 찍고 있었다. 대포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고, 인플루언서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더러 보였다.


나 역시 원래 사진을 좀 잘 찍는 사람인 것처럼, 비록 카메라는 아니지만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어댔다. 사실 어디 가서 이렇게 사진을 열심히 찍지 않는 나였기에 그런 사진 명소에서의 사람들의 모습이 생소하면서도 흥미롭기도 했다. 기찻길에서는 기차가 어느 쪽에서 올지 모른다. 그러나 "땡땡땡" 소리가 나면 어느 한쪽에서 기차가 온다는 뜻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느 쪽에서 기차가 오고 있는지 빠르게 두리번거리며 확인하고는 그쪽을 향해 카메라를 응시한다. 그리고 달려오는 기차에 맞춰 연신 셔터를 누르며 한바탕 사진 찍기를 마친다.



6) 교토 히라노 신사


교토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히라노 신사였다. 교토의 대표적인 '백제계' 신사라고 하는 히라노 신사는 교토의 수많은 화려한 신사에 비하면 작고 소박하다. 그러나 이곳은 특히 벚꽃축제로 유명한 곳이어서 여느 벚꽃명소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과 야타이(포장마차)로 북적이기도 했다.


사실 하루에 네 군데의 벚꽃명소를 다니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강행군이었다. 아침에 집에서 나온 시간이 오전 6시였는데, 히라노 신사에 도착할 쯤에는 오후 3시 정도였다. 이제는 벚꽃을 정말 볼만큼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에 예쁜 벚꽃을 다 본 나에게 이곳에서의 벚꽃은 아까만큼의 감동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다만 벚꽃을 보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은 보는 일은 여전히 흥미롭고 기분 좋아지는 일이었다.


이곳에서는 마치 버드나무처럼 땅으로 쏟아지는 벚꽃나무 한 그루를 만날 수 있었다. 얼마나 쏟아지는지 무너지는 것을 막도록 도와주는 보조장치도 설치되어 있었다. 이렇게나 벚꽃나무 종류가 다양하구나 싶었다. 길을 가다 보니 가만히 서서 벚꽃을 스케치하고 있는 한 청년이 보인다. 벚꽃 사진을 찍는 모습은 많이 봤지만 그림을 그리고 있다니. 이 또한 낭만적이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방송사에서 촬영을 나와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벚꽃 명소에서는 방송사에서 촬영을 나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긴 전국민적인 관심사가 온통 벚꽃일 것인데 방송사에서 촬영을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하루 네 탕의 벚꽃 구경은 히라노 신사를 끝으로 마무리하고 다시 오사카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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