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한 달 살기 현실 후기 (3)
일본이라는 나라와 이렇게 깊게 연을 맺을 줄은 몰랐다. 그래서 매번 일본 여행을 오면서도 이번에 오고 또 언제 올까 하는 생각으로 일본어 공부를 딱히 하지 않았다. '스미마셍(죄송합니다)'과 '아리가또 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 그리고 애교로 '고레(이것)'이나 '구다사이(주세요)', '오네가이시마스(부탁합니다)' 정도만 할 줄 알면 일본 여행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한 달 살기라니. 이번 한 달 살기가 의미 있기 위한 조건에는 내 나름대로는 언어가 있었다. 앞서 밝혔듯 나는 대학생 시절,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6개월 간 인턴 생활을 하며 지내면서도 러시아 말을 하나도 읽지도, 말하지도 못한 채로 돌아온 경험이 있다. 이때를 생각하면 늘 아쉬움이 남는다. 왜 현지에 있으면서도 언어를 배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그때를 떠올리며 이번에는 일본어를 조금이라도 익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본어를 공부하려 하니 두 가지 측면이 있었다. 말을 먼저 배울 것인지, 문자를 먼저 배울 것인지 말이다. 말은 문장 위주로 배우는 것이고 문자는 히라가나, 가타카나라는 일본어 문자체계를 배우는 일이다. (히라가나는 일본 고유어를 표현하는 문자체계고, 가타카나는 외래어를 표현하는 문자체계다.) 둘 다 욕심이 났지만 일본어를 먼저 잘 읽고 싶었다. 읽을 줄 알면 그때부터는 조금씩 눈이 열리며 귀도 열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비록 한자는 일본식으로 읽지는 못하겠지만 대략 의미 유추는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출국 일주일 전, 인터넷 서점을 통해 일본어 학습서를 두 권 구입했다. 하나는 <일본어 첫걸음 히라가나 가타카나 쓰기 노트>, 하나는 <일본어 쓰기 수첩>이라는 책이다. 자고로 공부는 깜지로 공부해야지. 하루에 분량을 정해놓고 매일 쓰다 보면 어느 정도 익혀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아무런 배경지식도 없이, 오사카에서의 일본어 독학이 시작되었다. 유치원 시절 기역, 니은, 디귿부터 하나씩 배우던 심정으로, 초등학교 시절 하늘천 따지를 따라 부르며 한자를 익히던 심정으로 히라가나부터 써나가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한글과 한자, 그리고 영어 알파벳을 제외하고 새로운 문자 체계를 배우는 것은 일본어가 처음이었다. 히라가나에서 배우는 첫 글자 'あ(아)'를 처음 쓰던 때를 잊지 못한다. 일본어 까막눈이던 나에게 가장 '일본어스러운' 글자였다. 적당히 한자스러우면서도 꼬부랑거리는 획들. 손가락 끝의 힘을 줘야 할 곳과 멈춰야 할 곳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나의 첫 'あ(아)' 쓰기 연습은 정말이지 우습게 끝나고 말았다. 한 글자당 10번씩 반복하여 쓰는 칸이 있는데, 일본 신생아도 이것보다 잘 쓰겠다 싶은 수준의 주체 못 할 꼬부랑거림이었다. 마치 7살짜리 나의 조카가 처음 한글을 배우며 한글을 따라 쓴, 아니 썼다기보다는 '그렸다'라고 하는 게 맞을 수준과 다를 바 없었다. 그다음에도 그리기조차 어려운 히라가나 글자들은 계속해서 나왔다. 이를테면 'お(오)'라든지, 'ぬ(누)'라든지, 'む(무)'라든지 하는 글자들이 그러한 것들이었다.
한 달 살기의 중간쯤 왔을 무렵, 나의 히라가나 여정도 끝났다. 나머지 절반의 일정에 맞춰 가타카나 진도도 나갔다. 가타카나는 히라가나보다는 쓰기엔 훨씬 나았다. 히라가나보다는 심플한 문자 구성이었고, 보다 한자같이 생긴 문자라 괜히 조금은 익숙했다. 물론 한자와 전혀 관련이 있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실제로 히라가나는 꼬부랑거리는 곡선 위주의 획으로 이루어진 반면, 가타카나는 직선과 뾰족한 꺾임 위주의 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흥미로운 건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는 같은 발음으로 서로 다른 문자를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같은 '아' 소리를 내는 글자가 히라가나에서는 'あ', 가타카나에서는 'ア'다. 그러다 보니 외우는 것이 2배로 힘들었다. 깜지만으로는 이것을 완벽히 외울 수 없었다. 결국 초등학생 시절 한자를 외우던 꼼수 실력을 십분 발휘하여 별의별 연상법으로 글자들을 외웠다.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고 유치한 몇 가지를 예를 들자면, 가타카나의 'ひ(히)'는 혀 모양처럼 생겼다고 생각해서 혀를 '히~'하고 내미는 것을 연상했고, 히라가나의 'ス(스)'은 한글의 'ㅈ(지읒)' 같이 생겼다고 생각해서 '죄송'을 뜻하는 'ㅈㅅ'를 연상하며 '스'라는 소리를 외웠다. 이렇게 말도 안 되게 글자들을 외우는 것도 한계가 있어 혹시 남들은 어떻게 히라가나, 가타카나를 외우나 하고 유튜브에 찾아봤다. 그랬더니 웬걸. 나보다 더하면 더했을 온갖 창의적인 연상법으로 다들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외우고 있었다. 사람 생각하는 거 다 똑같구나 하는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게 책 한 권을 천천히 떼어가는 과정에서 조금씩 글자들이 읽히기 시작했다.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공부하면서 다니는 오사카 여행은 그전에 아무것도 읽지 못한 채로 다녔던 여행보다 훨씬 즐거웠다. 한글학교에 다니는 어르신들께서 한글을 배우면서 그간 배우지 못했던 설움을 이겨내고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던 심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길거리의 간판, 현수막과 전단지, 식당의 메뉴판 등 읽을거리가 보일 때마다 시시때때로 읽으려 노력했고 한 글자라도 읽으면 그렇게나 기뻤다. 주머니에는 항상 히라가나, 가타카나가 한 장에 정리된 손바닥만한 사이즈의 요약본도 들고 다니면서 기억이 나지 않는 글자가 있으면 꺼내서 보고는 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읽을 수 있는 글자가 많아졌고, 이것은 나의 오사카 한 달 살기의 소소한 행복이었다.
한 달 살기는 그렇게 끝났고 나의 일본어 공부도 잠시 중단되었다. 한국에 와서 다시 일상에 돌아오니 일본어 공부는 잠시 뒷전이 되었다. 그러나 일본어에 대한 나의 관심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 잠시 꺼두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좋겠다. 잠시 꺼두었지만 언제든 기회가 되면 스위치를 온(on) 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내 책상 한편엔 오사카에서 미처 시작도 하지 못한 <일본어 쓰기 수첩> 책이 아직 펼쳐지지 못한 채 그대로 꽂혀 있다. 이 책이 꽂혀있는 한 일본어를 언젠가 다시 공부하겠다는 내 마음도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또 다른 기회로 일본에서 생활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으며 이 책을 다시 펼칠 날도 오기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