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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에녹 Jul 17. 2024

여행 작가로서의 취재와 기록

오사카 한 달 살기 현실 후기 (2)


한 달 살기 후기를 말하면서 취재와 기록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여행을 다녔지만 사진 외에는 그다지 기록을 남겨본 적이 없었다. 책은 말할 것도 없고 블로그나 나만의 여행 기록을 남긴 일도 잘 없었다. 여행지에 가면 그냥 보고 듣고 맛보고 즐기는 것이 전부였고 대체로 그것만 하기도 바쁜 여행 일정이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기존과는 달랐다. 나는 여행 책을 쓰기 위해 오사카에 온 여행 작가의 신분이었다. 그냥 여행지를 소개하기만 하는 안내서를 쓰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느낌이 묻어나는 글을 써야 했다. 사람들이 오사카에 와서 일반적으로 느끼는 것에서 무언가 쩜오를 더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이 초보 여행작가로서의 나의 욕심이고 바람이었다. 그랬기에 나 역시도 기존에 내가 하던 여행과는 꽤나 다른 스타일의 여행을 하며 한 달 살기를 보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스마트폰의 음성인식을 활용한 메모 기능이었다. 이 기능은 출시된 지는 꽤 되었지만 사실 실생활에서 자주 활용하던 것은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 기능에 대해 잘 몰랐다. 그래서 당초 나의 생각은, 여행을 다니면서 스마트폰에 타이핑으로 기록해 놓고 그날그날 저녁마다 타이핑한 내용을 잘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는 시간이 없거나 경황이 없을 경우에는 스마트폰 녹음 앱에 그때그때의 소감을 녹음해 두고 나중에 한 번에 정리하면 되겠다 싶었다. 둘 다 시간이 꽤나 소요되는 방법이었지만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출국하기 2주 전, 스마트폰의 음성인식 기능을 알게 되었다. 즉, 내가 말로 남기면 스마트폰의 인공지능이 이를 인식하여 텍스트로 즉시 변환해 주는 기능이었다. 특히 글을 쓰기 위해 평소에 자주 메모하는 사람들에게 편리한 기능이었고, 무엇보다도 나 같은 여행 작가에는 큰 도움이 되는 기능이었다.


이 음성인식 메모 기능 덕분에 여행지를 돌아다니며 메모장에 펜으로 메모하거나, 스마트폰 메모 앱에 타이핑으로 메모하는 고생을 전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어딜 가든 메모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카카오톡 나와의 채팅을 켜고 음성인식 버튼을 누른 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기만 하면, 알아서 텍스트로 변환되어 나와의 채팅에 차곡차곡 그 기록이 쌓였다. 그 기록들을 가끔 내 노트북의 한글 파일에 백업해 두기만 했다. 그렇게 모아둔 메모만 한글 문서 폰트 10 사이즈로 약 90여 페이지니, 녹음 메모로 기록하고 싶은 것은 거의 다 기록해 둔 것 같다. 아마도 메모를 하는 과정이 번거롭거나 복잡했다면 이렇게 많은 메모를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럼 훨씬 현장감이 덜한 여행기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이럴 땐 이러한 기술의 발전이 새삼 감사하다. 여행작가에게 음성인식 기능은 필수다.


다음으로 사진. 여행 에세이에서 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현장의 느낌을 전달하는 사진이 아닐까. 단순히 현장의 느낌을 생생하게만 전달한다면 그것은 여행 잡지나 여행사 홈페이지에 나올 만한 사진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여행 에세이 사진은 조금은 달랐다. 그것은 글과 마찬가지로 사진에도 나만의 느낌이 들어갔으면 했다는 것. 오사카에서 똑같은 관광지에 가고 무언가를 보더라도 나만의 감성이 투과된 사진을 많이 찍고 싶었다. 그래서 오사카를 이미 다녀온 사람들에게도, 혹은 아직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내가 바라본 오사카는 이런 곳이었어."를 사진을 통해서도 말하고 싶었다.


그랬기에 한 달 살기를 하는 동안 사진을 참 많이도 찍었다. 하루 평균 약 100여 장은 찍은 것 같다. 앞서 말한 것처럼 소위 말하는 '느낌'이 오는 곳에서는 멋진 사진을 건지기 위해 한참을 한 자리에 머물렀다. 카메라를 따로 들고 간 것은 아니고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었다. 처음엔 카메라를 가져갈까도 고민했지만, 기동성과 편의성을 생각하면 막상 카메라를 잘 쓰지 않을 것 같았다. 카메라와 스마트폰을 혼용하는 것도 색감이나 해상도 측면에서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주야장천 스마트폰 카메라로만 사진을 찍었다. 스마트폰 하나로 음성인식 메모와 사진을 모두 해결했으니, 이만하면 여행자에게 좋은 스마트폰 하나 정도는 필수인 듯하다. 신기한 것은 하루 평균 100여 장, 그렇게 30일을 넘게 매일 찍다 보니 한 달 살기를 처음 하러 갔을 때와 끝날 때쯤의 나의 사진 실력도 눈에 띄게 늘었다는 점이다. "양(quantity)에서 질(quality)이 나온다"는 말도 있지 않나. 매일 같이 사진을 찍던 습관 속에서 나의 사진 실력도 조금 는 것은 이번 한 달 살기에서 얻은 작은 성과다.


틈만 나면 이렇게 메모를 하고 사진을 찍어대는 탓에 나는 걷다가도 수없이 멈춰 서서 메모를 남기고 사진을 찍었다. 혼자서 돌아다닐 때는 이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나만의 흐름대로 여행을 다니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런데 친구 B와 함께 다닐 때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B와 걷다가도 음성 메모를 남기거나 사진을 찍어야 하는 곳이 나오면 어김없이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섰다. 그러면 나와 걷던 B는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했다. 계속해서 가던 길을 가거나 나와 함께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나를 기다리거나 말이다. 하지만 계속 가던 길을 가더라도 결국 저 멀리서 멈춰 선 나를 기다려야 했으니 결국엔 나를 기다려야 했다. 이번 한 달 살기 중 상당 부분은 친구 B와 함께 했다는 점에서 그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크다. B는 매번 내가 멈춰 설 때마다 짜증을 내기는커녕, 어떠한 단 한 마디도 나에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멈추면 멈추는 대로, 다시 걸으면 걷는 대로 묵묵히 내 곁에서 함께 따라와 줬다. 이처럼 B덕분에 나는 훨씬 자유롭게 방방곡곡 구석구석을 구경 다니며 오사카를 경험하고 취재할 수 있었다.


여행 책을 쓰는 목적의 여행은 기존의 여행과는 꽤나 다른 느낌이었다. 우선 어딜 가든 흥미로운 것이 없나 평소보다도 훨씬 더 관찰했다. 그리고 관심이 생기면 인터넷 검색이든 현지인들에게 물어서든 그것에 대해 조금 더 알고자 했다. 평소 같으면 그냥 "이런 게 있네." 하고 지나칠 만한 것도 최소한 한두 단계 정도 더 깊이 있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더 깊이 있게 알아보다 보면 가끔 굉장히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한다. 그럴 때 느낀 쾌감이 굉장히 컸던 것 같다. 여기에 여행의 매력이 있다. 아직은 남들이 잘 모르는 현지의 정보를 알게 되는 것 말이다. 이를테면, 오코노미야끼를 먹기 위해 조각을 낼 때, 피자 조각처럼 써는 것이 도쿄 스타일이고, 바둑판처럼 써는 것이 오사카 스타일이라는 것. 또는 일본에서 그냥 하이볼을 달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 즐겨 먹는 달달한 진저 하이볼이 아니라 단 맛이 나지 않는, 탄산수에 위스키만을 섞은 하이볼을 준다는 것과 같은 정보 말이다.


이러한 작가로서의 경험 덕분에 나는 평소에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다른 직업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를테면 기자. 기자가 한 기사를 쓰기 위해 얼마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취재를 해야 하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가끔은 단 한 줄의 팩트를 전달하기 위해 수개월, 수년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여행 유튜버도 마찬가지다. 사실 많은 대중들이 유튜버라는 일을 비교적 쉽게 본다. 특히 여행 유튜버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여행도 하고 돈도 버니 얼마나 좋겠냐고들 말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이 결코 그렇지 않겠다는 것을 조금은 알겠다. 여행을 하고 와서 글과 사진으로만 남기는 일에도 수많은 고민이 들어간다. 어딜 가야 할지, 누굴 만나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데 이를 영상으로 남기는 유튜버의 일은 이보다도 훨씬 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나는 취재하고 기록하는 여행을 하게 될 거라는 점이다. 꼭 책을 쓰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곳저곳 다니며 무언가를 알아보고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며 대화하는 과정에서 여행이 보다 풍성해지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에서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다시 한번 되뇔 수 있었다. 먼 훗날 내 여행기를 다시 읽었을 때 나를 위한 선물이 될 뿐만 아니라 그 여행에 함께 한 사람들을 위한 선물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기록은 가치 있다. 이제는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미래의 나를 위해서라도 단 한 줄이라도 여행의 소감을 메모장에 남기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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