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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에녹 Jul 15. 2024

한 달 살기 하러 간 초보 작가의 하루 루틴

오사카 한 달 살기 현실 후기 (1)


무계획으로 떠났던 한 달 살기였기에 나름의 하루 루틴이 필요했다. 루틴마저 없으면 어영부영하다가 하루가 금방 지나가 버리고 그렇게 일주일, 한 달이 금세 지나가버릴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규칙적인 생활 속에서 생산적인 무언가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조금씩 루틴을 만들어가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처음부터 완벽한 루틴으로 세팅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처음엔 일주일 정도 생활하면서 한 달 살기에 필요한 하루 루틴이 무엇인지 조금씩 파악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필요한 것은 건강하게 한 달 살기를 온전히 잘 해내기 위한 매일의 운동이었다. 운동을 그리 좋아하지 않던 나였지만 2~3년 전부터 살 빼기와 건강에 관심이 생긴 이후로 일주일에 최소 3~4회씩 꾸준히 운동을 해오고 있었다. 내가 주로 하는 운동은 킥복싱이어서 처음에는 오사카에서도 킥복싱 체육관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대부분 체육관이 입회비를 따로 받을 뿐만 아니라 최소 2개월 이상의 등록이 필요했다. 결국 체육관 등록은 포기했고, 숙소 안에서 그리고 숙소 앞 놀이터에서 간단한 맨몸 운동이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혹시나 해서 한국에서 줄넘기를 하나 가져갔다. 그걸 가지고 매일 아침 숙소 앞 놀이터에서 줄넘기를 했다. 아침에 친구가 출근할 쯤에 나도 집밖으로 나가고는 했다. 비가 오거나 전날 일정을 무리해서 너무 피곤한 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했다. 오랜 시간 하지는 않았다. 너무 귀찮은 날에는 딱 10분도 하고, 길어야 20분을 넘지 않았다. 그러나 줄넘기로 하루를 시작한 날은 그렇게나 산뜻할 수가 없었다. 줄넘기를 한 날과 하지 않은 날의 차이는 극명했는데, 한 날은 훨씬 활기 있게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해야 할 것이 정해지지 않은 나로서는 이 '활기'가 나의 하루에 큰 영향을 주었다. 활기가 있어야 어디라도 가볼 마음이 들고 뭐라도 찾아보며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줄넘기가 지루한 날에는 가끔 놀이터를 몇 바퀴 달리거나 집 주변을 산책한답시고 돌고 오고는 했다. 어쨌든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몸을 움직이고 머리를 깨우려 했다는 것. 이것이 중요한 하루의 루틴 중 하나였다.



하루 일과는 크게 두 개로 나뉘었다. 숙소 안에서의 시간과 바깥을 돌아보는 시간. 대체로 오전에는 숙소에서 보내고 오후에 바깥을 돌아보고는 했지만 이것은 그날그날 컨디션과 날씨 등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진행했다. 숙소에서의 시간은 다시 주로 세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글을 쓰는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어를 공부하는 시간, 나머지 하나는 성경을 통독하고 녹음하는 시간이다. 먼저 글쓰기. 원래는 한 달의 오사카를 살면서 동시에 매일매일 책 원고를 쓰려했다. 그러나 한 달 살기를 시작한 지 며칠 만에 이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임을 깨달았다. 책 원고를 쓰는 일은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었고 매일 여행을 하면서 동시에 원고 수준의 글을 쓰는 것은 어려웠다. 대신 여행을 다니면서 느낀 소감들을 계속해서 메모로 기록해 두었다. 그리고 이러한 여행기를 꾸준히 블로그에 올렸다. 비단 오사카에 대한 내용만은 아니었다. 마침 3개월 전부터 본격적으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고 하루에 최소 한 편의 글을 쓰는 것이 내 블로그 운영의 원칙이었기에 매일 글을 썼다. 그렇게 글을 쓰고 전날 여행을 하며 느꼈던 소감을 기록한 것과 사진을 정리하다 보면 보통 오전이 금세 지나고는 했다.


일본어 까막눈인 나는 오사카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일본어도 짬짬이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일본에 여행을 온 적은 열 번 가까이 되었지만 한 번도 일본어를 공부해 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저 여행객으로서만 머물러 있으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한 달씩 살면서 일본어를 하나도 공부하지 않고 간다는 것은 나중에 돌이켜 볼 때 후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대학 시절 러시아 말을 한마디도 못한 채로 모스크바의 한국계 종합상사에서 인턴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6개월씩 그곳에 살면서도 러시아어를 하나도 배워오지 않은 것이 아직도 가끔 아쉬울 때가 있다. 그래서 비록 한 달 살기지만 일본어를 조금이라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대단한 목표는 아니었고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읽을 수 있을 정도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성경 통독과 녹음은 한국에서부터 1년 넘게 매일 하고 있는 나의 루틴이다. 오사카에서도 이 루틴을 이어가고 싶어 계속해서 진행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에녹의 성경읽기>라는 유튜브 채널을 하나 운영하고 있다. 제대로 된 유튜브 활동이라기보다는 내가 성경을 읽는 시간과 그 흔적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녹음하고 유튜브에 업로드하던 것이 어느새 1년이 넘었다. 통상 성경의 3~4개의 챕터 정도 되는 분량을 읽고, 틀린 부분에서는 멈춰 가며 다시 녹음하고, 영상으로 편집하여 업로드 예약을 하는 데는 적어도 사오십 분, 길게는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시간적인 관점으로만 보면 꽤나 적지 않지만 나의 하루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자 내 삶의 근간이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오사카에 있는 동안 이 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그렇게 글을 쓰고 일본어를 공부하고 성경을 읽다 보면 오전 시간이 금세 다 지나갔다.


점심은 주로 집에서 먹었다. 매 끼니를 밖에서 사 먹기에는 우선 경제적인 부담이 가장 컸다. 또한 모든 끼니를 다 사 먹기보다는 절반 정도는 해 먹는 음식도 있어야 오사카에서의 진정한 한 달 '살기'가 되지 않겠냐는 나만의 합리화도 있었다. 보통 저녁은 밖에서 돌아다니거나 저녁에 친구 또는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이 있어 밖에서 먹는 일들이 많았기에 점심은 되도록 집에서 해 먹으려 했다. 


점심을 다 먹고 나서는 외부 활동을 했다. 한 달 살기의 하루 루틴 중 꼭 지키고자 했던 두 가지 원칙이 있다. 하나는 아무리 날씨가 궂어도, 나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하루에 무조건 한 번 이상은 밖에 나가자는 것. 또 하나는 하루 평균 1만 보 이상은 무조건 걷자는 것이었다. 혹시 1만 보가 조금 모자라는 날에는 다음 날 더 걸었다. 이 두 원칙은 계획 없이 한 달 살기를 하러 온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계획이 따로 없는 만큼 더욱더 밖으로 나가야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고 글 쓸 소재거리를 찾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해가 뜨거우면 뜨거운 대로 매 순간 느낌이 달랐고 관찰할 거리들이 보이고는 했다. 이를테면 오사카에서는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우산을 들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 알고 보니 이것은 도쿄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모습인데 오사카에서는 공공연하게 보인다는 것. 이러한 것들은 비가 오는 날에도 밖에 구경을 나갔다가 우연히 알게 된 재미있는 이야기다. 


하루 1만 보 원칙을 세운 이유는 이렇다. 최소한 하루에 1만 보, 한 달간 30만 보는 넘게 오사카 곳곳을 걸어 다녔을 때 분명 더 보이는 것이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달 동안 10만 보 걸은 사람과 20만 보 걸은 사람과 30만 보를 걸은 사람이 보고 느낀 것은 확연히 다를 것이다. 특히나 계획 없이 한 달 살기를 하러 온 나로서는, 그리고 일본어도 전혀 못하고 일본에 대한 배경도 거의 없는 나로서는 최대한 많이 노출될 필요가 있었다. '양(quantity)에서 '질(quality)'이 나온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는 하루 최소 1만 보라는 '양'에서 질을 기대했다.


저녁엔 보통 집에 돌아와서 친구와 함께 그날 있었던 일들을 나누고는 했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이 시간이 나에게는 가장 의미 있으면서도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 왜냐하면 나만의 시선으로 바라본 일본이라는 나라와 오사카라는 도시에 대한 느낌을, 친구의 시선으로 보정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루를 보내며 내가 겪었던 일, 우연히 마주쳤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전혀 몰랐던 새로운 부분들을 알게 되기도 했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얻었던 정보를 통해 다음 날 새로운 갈 곳을 정하기도 했고, 미처 잘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 친구의 설명을 통해 이해되기도 했다. 그러한 점에서 이번 오사카 한 달 살기는 결코 나 혼자서 온전히 해낸 것이 아니다. 나보다는 일본과 오사카를 잘 아는 친구의 도움이 있었기에, 일본에 대한 아무런 배경도 없고 일본어도 할 줄 몰랐던 내가 훨씬 풍성하고 다채롭게 오사카 한 달 살기를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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