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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Jun 28. 2023

남편이 공황장애로 사표를 썼다.

여보, 우리 이제 뭐 먹고살아?라고 묻지 않았다.



  지난주부터 불안불안 하긴 했다. 퇴근길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편의 얼굴은 새까맸다. 어디가 아파서가 아니라 안색이 새까맣게 변해있었고, 아침이 되면 회복이 되는 게 아니라 하얗게 질려서 대문을 나섰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남편은 씻고 8시도 안돼서 잠이 들었다. 하루 수면 시간이 10시간이 넘었다.



  남편은 1월  한 달간의 휴직 이후 잘 지내는 듯 보였다. 파도를 타긴 했지만 그래도 우상향 곡선이라는 느낌이라 잘하면 치고 올라갈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보이는 시기도 있었지만, 지난주부터는 눈에 띄게 하향 곡선이었다. 안색도, 기분도, 말투도. 자살을 암시하는 말들을 보이면서 불안 불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 일 없이 출근을 하고 얼마 안돼서 상담하시는 신부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남편이 죽고 싶다고
울면서 전화를 했다고 했다.


   신부님은 반년 동안 남편은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 이제 그만두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전했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나도 신부님 생각에 동의한다고 잘하셨다고 마무리를 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날 남편은 조퇴를 했고 내가 글 쓰는 카페로 와서 눈물을 쏟았다. 나는, 남편을 다독였다.


 괜찮아. 할 만큼 했어.
이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그만두는 게 맞아.
그동안 돈 버느라 수고했어.


 





    당장, 이번달 카드값은 어떻게 할까 생활비는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저 사람을 달래고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어떻게 치유시켜야 할까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마치 김장 시즌이 되면 많은 엄마들이 어디서 젓갈을 공수하고 어디서 배추를 사고 올해엔 어떤 김치를 담을까 라는 생각을 머리가 꽉 차는 것처럼 남편을 낫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만 머릿속에 가득 찼다.


   그러나 그건 머릿속의 사고일 뿐. 일말의 희망을 가졌던 나의 예측 중에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자 나는 그동안 쏟았던 노력과 에너지가 빛을 발하지 못했구나 라는 생각에 허탈해지면서 남아있던 모든 기력이 소진되었다.

   다음날 남편은 사표를 쓰고 인수인계를 위해서 출근을 했고 나는 자리를 보존하고 누워버렸다. 하루종일 음식도 들어가지 않고 배가 고파서 먹어도 스트레스 때문에 토해버렸다. 티브이 리모컨과 파리채와 핸드폰만을 번갈아  손에 쥐면서 이불 위를 떠나지 못했다.

  

     나는 남편이 회사를 그만둔 것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탈진한 게 아니었다. 나아질 기미가 없어서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그 희망에 대해서 탈진했다. 앞이 캄캄했다. 남편 이제 우리 어떻게 살아?라고 물은들 남편이 지금 상태에서 어떻게 살자라고 말이나 할 수 있겠는가? 묻지도 못했다




  


    그렇게 이부자리에 누운 지 이틀째 되는 날. 나는 이부자리  털고 일어났다. 늘 가던 커피숍으로 가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글을 쓰기 시작했고 기분을 낫게 하기 위해서 뭔가 하기 시작했다.  논리적으로 머리가 돌아가진 않아도 책을 잡았고 커피도 마시러 갔다. 여전히 한숨이 나긴 했지만 내면적으로 나는 무언가 달라져 있었다.  그전의 나였다면 우울과 실의에 빠져서 몇 달을 술독에 빠져 지내거나 이제 희망이 없다 느껴지면  히키코모리 짓을 했을 텐데, 전혀 그 방향이 아니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하고 있었다. 지금이 실패라고 해도 그게 실패가 아니라 전환점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너무 놀랐다. 나의 뇌는 이렇지 않았는데? 우울하고 힘들면 바닥으로 가라앉고 도망가는 뇌였는데?



   나는... 변했다. 지난 일 년 동안 우울증과 공황장애 치유를 위해 차곡차곡 쌓아온 나의 노력들이 이런 큰 위기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나락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이제 다른 삶을 시작할 때라는 메시지를  만큼 나는 변했다. 현실적으로는 절망해야 하는 상황에서 방향을 바꿔야 할 타이밍으로 보는 나 자신이 너낯설었지만 감사했고 한편으로는 기뻤다.



  대체 뭐가 날 이렇게 바꾼 걸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렇게 찾은 답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느님은 나를 절대 망하게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성경에서 배운 종교의 힘이었고, 또 하나는 그동안   무의식, 잠재의식을 바꾸고자  지겹도록 유튜브를 듣고 책을 읽었던 것들이 힘을 발휘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길이 막혔으니 다른 길이 또 열릴 것이다. 예전에는 그걸 몰라서 당황하고 우왕좌왕하며 힘들어서 엉엉 울면서 바닥을 기었을 테지만  이제는 안다. 새롭게 열린 길을 힘차게 열심히 걸어가면 된다는 걸. 


  상황은 변한 게 없다. 남편은 이달로 그만두어야 하고 더 이상 들어올 수입은 없으며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당분간은 공황장애를 위해 쉬어야 한다. 없어진 수입만큼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고 빚에 허덕일지도 모른다. 달라진 게 있다면 미래를 보는 나의 시각이다. 자의든 타의든 이십 년  넘게 가졌던 직업을 바꾸어야 하지만 그것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어 우리의 재능을 살릴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잘될 것이다!


남편, 고생했어!
우리 새로운 길을
 함께 잘 걸어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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