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슬로베니아- 보힌 호수의 사진이 없는 이유

가긴 진짜 갔는데..

by Loveyouth

결혼이란 건 참 신기하다. 연애 때는 그리도 잘 맞던 우리인데, 완벽했던 내 남자 친구였는데 왜 결혼만 하면 이리도 모든 게 맞지 않는 사이가 되어버리는 걸까. 결혼은 정말 비극일까? 우린 이 속에서 작은 행복을 기대하며 잠깐의 카타르시스로 또 그렇게 버텨나가야 하는 사이인 걸까?


보힌 호수(Lake Bohinj)의 사진이 없는 이유를 쓰려는데 시작이 거창하다. 슬로베니아 블레드에서 멀지 않은 곳에 보힌 호수라는 또 하나의 보물 같은 장소가 있다. 한국에서 보기 힘든 호수의 규모에 다시 한번 대자연의 경이를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이 곳에서 나는 아름다움을 느낄 새도 없이 결혼에 대한 심오한 사색에 빠졌다.


7월의 보힌 호수는 여행객에 슬로베니아 현지인들까지 더해져 꽤 많은 인파를 자랑했다. 블레드보다 한적하고 여유로운 곳이라 들었는데 우리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어찌 된 일인지 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현지인들이 관광객을 피해 물놀이를 즐기기 위한 장소로 꽤 인기 있는 듯해 보였던 보힌 호수는 아름다웠지만 아쉽게도 주차 공간이 매우 협소했다. 길도 양방향 일 차선으로 상당히 좁았는데, 슬로베니아 사람들 역시 주차난에 갓길 주차를 해서 정말이지 혼잡했다.

우리 부부와는 달리 너무나도 평화로운 슬로베니아의 모습

남편과 나도 주차를 하기 위해 한참을 헤맸다. 슬로베니아 관광 책은 따로 구입하지 않았던 우린 보힌 호수의 처음과 끝이 어딘지도 모르고 마냥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이대로 가다간 호수가 끝나버릴 것 같은 위기감이 엄습할 쯔음 한 장소를 어렵게 발견해 주차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내려서 보니 도로 쪽으로 차가 너무 나와있는 것 같았다. 해외에만 나오면 안전불감증에 빠지는 나는 마침 반대 편 차가 빠지는 걸 발견하곤 재빨리 제안했다. "오빠 이쪽 말고 저쪽으로 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이 말과 함께 대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좁은 길을 신경 써서 운전했던 오빤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상황이었다. 어렵게 주차를 했는데 다시 하라 하니 짜증이 났겠지. 말없는 오빠에게 내가 다시 주차하겠노라 했다. 하지만 그건 또 안 되는 사람. 오빤 말없이 움직이더니 홱 차를 빼서 반대편으로 욱여넣었다. 난 좋은 의미로 말한 것 같았는데 남편이 그리 받아들이니 나는 나대로 서운함이 폭발했다. 사실 한국에서 앙금이 풀리지 않던 일이 있던지라 돌아서서 호수로 향하는데 모든 감정이 버무려지면서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난 안 갈래. 차에 타고 있을래" 난 언제나 극단적이다. 못된 기지배. 한번 화가 나면 나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그저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해진다. 그렇게 한 시간만 내버려 두면 되는데 남편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빨리 풀어야 한다. 기분 좋게 구경하고 사진도 찍잔 오빠의 말에 더욱 화가 났다. 지구 속으로 들어가 숨어버리고 싶은 내 눈에 남편은 그저 보힌 호수를 구경하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사람으로 비쳤다. 얄미웠다. 사진? 지금 사진이 뭐가 중요해? 우리 진짜 안 맞는다 정말!


치열한 다툼 후 우리가 다시 어떻게 화했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아마 서로 "너도 잘못했지?" "응" 이렇게 했겠지. 우린 나름 이제 3년 차나 되는, 서로의 잘못에 대한 인정만은 빠른 부부니까. 보힌 호수의 사진 한 장도 없이 도착한 호텔에서 우린 컵라면을 먹으며 싱겁게 화해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옛말이 괜히 명언이 아니다. 그렇게 짜증쟁이와 못된 기지배는 오래오래 잘 살고 있다. 지금까지.


크로아티아로 향하던 날 아침 "잘 있어 사랑스러운 슬로베니아야"
크로아티아보다 슬로베니아에서 더욱 렌터가 여행을 추천합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정말 힐링 그 자체거든요. 그런데 차가 많진 않지만 길이 좁고, 양방향 일 차선인데도 차가 없으면 추월이 가능해서 아찔한 순간이 많으니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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