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꾸민다는 것의 의미
이 집의 고요함은 가끔 나를 생각에 빠지게 한다.
천안에서 서울로 열심히 쫓아다니며 정신없이 월화수목금을 보내고 나면 소진된 에너지를 다시 채우고 기가 빠져 너덜거리는 나의 영혼에 무언가를 채워 넣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이 욕망과 에너지를 채우는 방법은 어처구니없게도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다. 너무 조용해서 째깍째깍 시계 움직이는 소리마저 소음이 되는 순간 나는 비로소 잃었던 정신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고요함이 주는 평화를 만끽하며 생각에 빠져든다.
그 순간이 찾아왔을 때 가장 많이 하는 건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는 거다. 가까운 어제부터 아주 먼 옛날까지 생각하며 무언가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재밌었던 일을 떠올리며 미소 짓기도 한다. 자유를 누리며 마음껏 공부하고 놀았던 내 인생에서 가장 눈부시고 평온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때론 울적해지기도 한다. 조금 더 현명하게 대처했으면 좋았을 법한 일도 당연히 생각한다.
온갖 일을 다 떠올리다 보면 '기본적으로 나는 약간 우울한 사람인가'라는 또 다른 차원의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때 나는 이 집을 둘러보며 행복을 충전한다. 내 입맛대로 꾸며진 이 집의 고요한 평화를 통해 행복을 급속 충전하고 나면 생각의 폭도 그만큼 뻗어 나가는 느낌을 받는다. 여유가 얹어진 상태가 되면 비로소 생각하지 못했던 오늘과 내일을 생각한다. '아,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걸'
나이가 한 살 한 살 들수록 뭐가 그리 불만인지 괜한 아집과 독단에 빠져 화를 주체할 수 없을 때가 많아졌다. 한 발자국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아주 쉽게 해결될 일들인데, 마음 상하지 않아도 되는 일인데 내가 생각하는 이치와 방식을 물리지 않음으로써 상처 받는 일이 허다하다. '이런 게 사회생활인가?' '이런 게 어른인가?' 싶다가도 오히려 어렸을 때보다 더 참지 못하는 못난 나를 자책하곤 한다. 나는 이런 후회와 자기반성을 집에 와서 겨우 한다. 쳇바퀴 돌듯 오차 없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이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는 나는 아직 내공이 부족한 사람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남편과 내가 합심해 정성 들여 꾸민 내 집에서 조금만 쉬면 잃었던 인내심과 '이 세상을 열심히 살아야지'하는 용기마저도 다시 내 곁에 돌아온다. 일상에 지칠 때마다 이곳에서 누리는 고요한 시간과 평화를 생각하면 다시 미래를 향한 확신과 용기가 조용히 리필된다.
집을 꾸민다는 것의 의미는 긍정적으로 살기 위한 나의 몸부림과도 같다.
이 집에 흐르는 잔잔한 고요함을 만들 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를 생각하면서 나를 그리고 우리를 조금은 칭찬해준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가득 채우고, 아름답게 가꾸고 부지런히 집을 관리하는 이 모든 행위는 나를 기쁘게 한다. 나아가 나의 생각과 가치관을 바르게 가져가는 것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이 집에 흐르는 고요함을 내 곁에 두기 위해, 절대로 잃지 않기 위해 집 꾸미기에 집착한다. 나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이자 전폭적인 지지자 남편과 함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 저 고요히 누리는 쉼만으로 힘을 주는 나의 집을 평생 아름답게 꾸미고 긍정적으로 살아야지. 더 건강하게 살고 부지런히 내게 주어진 삶을 누리고 더 멋지게 살아야지'하고 생각을 다잡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