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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youth Nov 23. 2019

너는 그렇게 해서라도 술을 마셔야겠냐

매일 우리 집 냉장고를 열 때마다 흠칫 놀라곤 한다. 술이 꽉꽉 차있는 이게 우리 집 냉장고가 맞는 건지. 내 생에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나는 술을 마실 줄도 모르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천성적으로 술이 몸에 받지 않아 어쩌다 소주 한잔만 얻어 마시더라도 얼굴이 시뻘게지는 나는 술알못이다. 인생의 쓴맛을 맛볼 만큼 맛본 30대 중반임에도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술을 마시는지 이해하지 못하는데, 맥주는 기본이고 소주부터 막걸리, 와인 등 온갖 종류의 술이 우리 집 냉장고의 상당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니 이런 아이러니가 또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와 같이 살고 있는 남자가 애주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전쟁을 한다. 기필코 술을 마시려는 자와 그걸 막으려는 자의 치열한 눈치 싸움.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간 마트에서는 주류 코너 앞에서 우린 딴청을 피운다. 얼른 그곳을 지나치려는 나와 어떤 종류의 술을 사야 할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오신 분, 나의 남편은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마트에서 온갖 종류의 애교를 부리고 떼를 쓴다. 다른 사람의 눈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저 집에서 마실 술을 비축해야 한다. 네, 저는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습니다...


이곳을 알려준 내가 잘못했지...


연애시절엔 상상하지도 못했다. 이 남자의 술사랑이 이 정도인 줄은. 그저 술을 잘 마시는 남자와 잘 못 마시는 여자가 만났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매일매일 술을 마실 궁리를 하는 사람이었다니.


술을 마시는 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남편이 술을 마시는 걸 싫어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시간을 되돌려 그날을 떠올려 본다. 연애시절 우리가 헤어졌던 날이다. 남편은 술을 마시고 하루 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나는 '당신과는 만날 수 없다'라고 통보했고, 구남친이었던 남편은 울며 불며 헐레벌떡 내게로 달려왔다. 하지만 그 사람의 몰골을 보곤 헤어지길 잘했다고 백 번 천 번 생각했다. 오른쪽 눈엔 커다랗게 멍이 들었고, 무릎을 비롯해 몸 여러 군데 상처가 나 걸음 조차 제대로 걷지 못했다. 이런 술주정뱅이.  


그날 이후 남편이 술을 마시는 걸 아주 싫어하게 됐다. 요즘 말로 정말 극혐이다. 극혐! 눈탱이 밤탱이 사건 이후에도 남편은 그놈의 술 때문에 저지르지 말아야 할 잘못을 여러 번 저질렀다. 본능적으로 몸을 사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으면 잠깐씩 술을 자제하는 듯 보였지만 남편은 이내 알콜러버로 돌아왔다.



알콜러버 남편은 매일 저녁 술을 마시기 위해 머리를 굴린다. 돌돌돌.

삼겹살을 구우면 소주, 전을 부치면 막걸리, 그냥 말하기 애매할 땐 죄다 와인을 말한다. 알콜러버 와이프가 그나마 마실 수 있는 술이 음료수 같은 모스카토이기 때문에. 어쩜 그리 음식과 술 궁합을 잘 맞추는지 얄미워서 째려보면 또 남이 볼까 무서운 애교를 부리기 때문에 음주의 현장을 보지 않기 위해서 큰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웬만해선 먹고 싶은 게 잘 없는 내가 며칠 전엔 갑자기 회가 그렇게 먹고 싶었다. 남편은 야근 중, 우리 집은 시골이라 회를 구하기도 어렵고 저녁까지 먹었는데 갑자기 시원한 회를 깻잎에 척 올려 쌈을 싸 먹고 싶었다. 남편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했더니 굳이 회를 사 오겠다고 우겨댔다. '괜찮아'라고 내일 먹자고 말하는데도 굳이 사 오겠다고.. 수상하네 평소에 그럴 일이 없는데? 오빠 그거지?


나의 예상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다. 남편은 과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술이 너무나도 필요했던 거다. 나는 회고픈 밤, 남편은 술고픈 밤. 동상이몽. 그는 밤 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회를 구하기 위해 마트로 전력 질주했다. 아니 소주를 마시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달리고 달렸다.


남편은 그날 밤 어렵게 공수해 온 광어회에 술이 그득그득 들어찬 냉장고에서 소주와 맥주를 꺼내 쏘맥을 시원하게 타 마셨다. 어쩜 그렇게 맛있게 먹는지 나도 모스카토 한잔을 따라 마셨다. 술 몇 잔에 피곤을 날린 남편 하지만 다음 날엔 술 때문에 더 피곤해진 남편. 정말 그렇게 하면서 술을 굳이 마셔야겠냐. 휴... 우린 이 부분에서 만큼은 서로를 죽을 때까지 이해하지 못하겠지?


회는 그저 거들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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