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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youth Jan 27. 2020

살림은 장비발?

2020년이 시작되자마자 구입한 첫 번째 물건은 물걸레 청소기다. 화장품이나 옷, 책같이 자기만족을 위한 물건이 아닌 우리 집에 사용할 가전제품을 사고 뛸 듯이 기뻐하는 날이 올 거라곤 정말이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한 10년 전쯤이었을까? 오래된 냉장고를 바꾸던 날 엄마가 지었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보였던 미소가 이제서야 이해가 된다. 그 미소의 출발점이었을 엄마의 감정이 A부터 Z까지 공감된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나도 정말 아줌마가 되긴 됐나 보다. 살림은 너무나도 장비발이라 여겨지는 걸 보면 말이다.


신혼살림을 준비할 때까지만 해도 장비라는 것이 이토록 내 삶에서 중요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속도에 있어서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나다. 그 선택이 분별력 있는 판단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내 나름의 기준이 분명하기에 신혼 가전도 빠르게 해치웠다. 사실 애송이 중에 애송이었던 거다. 나는 당시 가구에 넉이 나가 온 정성을 그곳에 쏟고 있었기 때문에 신혼집에 가전제품이 들어오던 날이 되어서야 '아 내가 이걸 골랐구나'하고 그 존재를 인식할 수 있었다. 가전제품이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던, 싱글의 삶을 영위하던 나의 실수였다.


장비발 운운하기 전에 집 정리나 열심히 해야겠구나..^^;;;


그랬던 내가 이토록 장비에 신경을 쓰게 된 것은 타운하우스로 이사를 하고 나서부터다. 아파트에 살던 때보다 행동반경이 두배 가까이 넓어지자 당장 청소부터 엄두가 나지 않았다. 1층에서 2층으로 다시 3층으로 옮겨 다니며 집을 청소하려니 유선 청소기는 정말이지 짐이 되었다. 때론 정말 내다 버리고 싶을 만큼 내 인내심을 시험하곤 했다. 남편은 선이 꼬이고 플러그가 뽑혀 유선 청소기의 전원이 나갈 때마다 온갖 짜증을 부리는 나를 위해 요즘 그 핫하다는 브랜드의 무선 청소기를 사주었다. 신세계였다. 이  위대한 장비의 힘을 경험한 이후부터 눈길이 슬금슬금 가전제품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던가. 청소기의 선에서 해방되고 나니 이젠 바닥을 닦는 일이 무척이나 고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청소기를 다 돌리고 걸레질을 미루는 게 일상이 됐다. 차일피일 걸레질을 미루다 보니 집안 구석구석이 먼지로 몸살을 앓는 일이 허다했다. 정말 어쩔 수 없이 온 집안을 꼼꼼히 청소하고 나면 진이 다 빠져 '아 물걸레 청소기가 있다면 훨씬 수월할 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만 떠올랐다.  


장비에 대한 욕심이 들 때마다 모든 제품을 사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조금만 더 부지런해지면 된다고 마음을 다잡아 보기도 했지만 나와 남편은 그러기엔 너무 게을렀다. 나름 수개월의 고민 끝에 2020년 우린 결국 물걸레 청소기를 구입했다. 또다시 우린 신세계를 경험했다. 걸레질이 이리도 편했던 건가?


멀리서 본 집


그저 형편에 맞게 살림을 꾸리는 거라 여겼던 시절도 있었다. 굳이 이것저것 많은 것을 집에 들여놓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 집순이인 나에게 절대 안정감을 주는 이 집의 안락함을 유지하기 위해선 장비발은 다분히 필요한 영역이었다. 특히 회사일과 가사를 병행해야 하는 우리 부부 같은 경우에 성능 좋은 가전제품은 혁명과도 같았다. 이 장비들은 우리의 시간을 절약하게 해 줘 편리를 줌은 물론, 아주 피곤한 날에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집안일을 효율적으로 하게 해 줌으로써 행복까지 주기 때문이다. 간략하게 말하면 장비는 삶의 질을 높여준다.


이 믿음이 생긴 이후 남편과 나는 가끔 미래의 우리 힘을 끌어모아 가전제품을 살 궁리를 하기도 한다. 요즘은 1층에서 빨래를 해 3층에 널러 갈 때마다 또 다른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다. 겨울 빨래는 왜 이리 잘 마르지 않는지. 이 고민을 회사에서 나누다 보니 남자 과장님도 그런 말을 했다. "옛날 건조기 생각하면 안 돼. 요즘 나오는 건조기는 진짜 신세계라니까." 또 신세계... 저렴한 가격은 아니지만 사길 정말 잘했다고 극찬을 하는데 또 혹하는 아줌마 여기있습니다. 


역시 살림은 장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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