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버리지 않을 이름이다. 어떻든 덕분에 나는 호암미술관을 거의 20년 만에 또는 그보다 오랜만에 방문했다. 감회가 새롭다. 이토록 시간이 많이 지났다니
그때 그 정원을 들어갈 때의 기분과 느낌이 너무 익숙하면서도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나고, 기분만큼은 새로웠다. 여기에 키아프 vip패스로 다시 방문하게 되다니 그동안 걸어왔던 시간들도 다시 돌아볼 수 있었고, 시간여행을 다시 해보는 기분이다. 중국을 돌아, 인사동을 돌아서, 여기로 오게 되는 여정은 마치 모두 연결되어 있고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 필연이듯이 그렇게 시간은 돌아가고 있다.
나는 이병철 회장님의 자취가 좋았다. 중앙일보 호암미술관 전시 시절에도 그 고즈넉하고 고급스러운 도자기 컬렉션도 멋있었고 그가 매우 열심히 불교의 법전을 외우고 시도했었다는 사실도 경이로웠고 왠지 인연 있는 사람처럼 느껴져서 좋았다. 농담처럼, 그 정원에서 옛 생각이 났다고 하니 어떤 이는 역시 공주들이 고궁 같은 연못 호수에 가서 옛 생각이 난다고 한다는데, 그 정도로 고시절 얘기는 아니고 한 2~30년 전쯤엔 우리나라를 일으킨 그가, 동양철학과 불교적 세계관에 깊이가 있었다는 점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그가 창립했던 오래된 호암미술관으로 오랜만에 발길이 닿아 있었음에, 여운이 오래간다.
작가의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고급진 이미지는 확실했던, 이 전시. 니콜라스 파티의 실물 사진 이미지를 보면 이 그림 또는 조각이미지와 닮아있다.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것을 표현하거나 닮은 꼴을 좋아하게 된다. 그는 80년대 생인데, 파스텔이 먼지들이 모인 것처럼 이 전시의 제목을 먼지로 표현했다.
그가 이병철 회장이 동양철학과 불교관을 좋아했던 것처럼, 미술사나 중국철학사에 관심이 많은 듯했다 그의 인터뷰 중 일부
오행 사상과 중국 철학을 작품에 담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구름을 그린 작품이 시작이었습니다. 수평면 위에 떠 있는 모습이 마치 산 같았고, 왠지 모르게 중국 산수화가 떠올랐어요. 산, 돌, 나무, 물 등 요소가 유기적으로 화합되는 것이 인상적이었거든요.
검색해 보면 온갖 현학적인 워딩들이 즐비하다. 사람들은 그 글을 서로 복붙 해서 공유하면서 커뮤니티에서 다녀온 것과 리뷰한 것들을 공유하며 친분을 자랑하거나 연대를 돈독히 하고 외로움을 해소하기도 하나보다. 어쨌든 그럴만한 맘의 여유가 없던 나는 다녀오게 되었다는 부분에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가야 할 이유가 없으면 어디든 가지 않게 되는 나의 체력적 연령의 한계도 조금 느끼지만 어떻게든 체력을 끌어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니콜라스 파티 작품의 이미지가 온라인으로 볼 때는 밝고 몽환적이었는데 다시 보니 어떤 부분 그로테스크 함도 살짝 섞여서 묘한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누가 봐도 엘레강스 한건 사실이었다.
가을바람이 살랑 불고, 뜨거운 여름의 마지막 태양열이 발악을 하듯이 강렬하게 내리쬐였다. 어떤 연을 계기로 나는 현대미술의 중심에 서 있게 되었으며, 어디로 흘러갈지 사색하면서 그곳을 다녀오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