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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re Mar 15. 2024

봄맞이 부대전골

갖지은 쌀밥의 따뜻함, 사회 초년생의 봄 '남산 누나네'

 개인적으로 사회생활 초년의 기억이 마냥 싱그럽지만은 않다. 남들보다 졸업도 늦었고, 취업도 늦었던 나에게 직장생활의 시작이 주는 감정은 설렘이나 기대감이 아니라 깊은 안도감이었다. 입사 동기 중에 가장 나이가 많았던 나는 항상 어딘가 어설펐고, 경직되어 있었고, 어색한 표정으로 위축되어 있었다. 기본적으로 넉살이 좋은 성격이 아니어서, 한참 동생인 동기들에게도 꼬박꼬박 존대를 했고, 나보다 어린 선배들의 불만 섞인 투정에는 어색하게 웃어 보이는 게 전부였다. 고향에 내려갔다 다시 서울에 올라오면서 거처도 마땅치가 않아서, 친구 자취방과 고시원을 전전하던, 말 그대로 '시작'과 '처음'이 주는 불안정함으로 가득하던 시절이었다. 그나마 오랫동안 곁에 있어주었던 여자친구가 있어서 많은 위로가 되었는데, 내 보잘것없는 시절들을 오래 함께 해 준만큼, 더 좋은 날들을 많이 함께 하고 싶었다. 그렇게 봄이 되어 우리는 남산으로 함께 꽃구경을 나섰다.


 봄의 남산은 도서관 앞 커다란 벚나무의 폭죽 같은 벚꽃무리도 근사했지만, 나는 다양한 봄꽃들과 새싹들로 서서히 물들어가는 모습을 더 좋아했다. 마침 그즈음에는 업무 때문에 소월길을 지나다닐 일이 많았는데, 하루가 다르게 알록달록 예뻐지는 남산의 모습을 보며, 여자친구와 한 번 와봐야지 마음먹곤 했다. 날씨가 따뜻했던 어느 주말, 우리는 화려한 남산 도서관을 지나쳐 남산 야외식물원으로 향했다. 그때 사진을 보면 날씨가 꽤 좋았던 것 같은데, 내 기억 속에서는 왠지 미세먼지도 좀 있고, 뿌연 필터를 덧씌운 것처럼 아스라한 느낌으로 남아있다. 아마 당시의 내 마음이 선명하지 못하고, 쓸쓸해서 더욱 그렇게 기억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야외식물원은 봄꽃으로 만발해 있었다. 지금도 가끔 그럴 때가 있지만, 그 해 봄에는 산수유부터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까지 모두 한꺼번에 피어나 봄이 왔음을 한 목소리로 열심히 알려주고 있었다. 다른 봄꽃 명소들과 달리 사람들도 많지 않아, 한적하고 조용한 느낌도 좋았지만, 항상 어딘가 불안했던 당시의 나는 즐거워하는 여자친구만큼이나 마음껏 기분을 낼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잔잔하게 꽃구경을 하고, 사장님의 손맛이 좋다는 근처 부대전골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사실 식당은 소월길 밑으로 계단만 내려가면 바로였다. 하지만 너무 의외의 장소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고급 주택들이 늘어서있는 이태원동을 한 바퀴 다 돌게 되었다. "우와, 여기는 무슨 동네야? 집들이 진짜 멋있다. 이런 동네 살면 좋겠다~" 마냥 신기해하던 여자친구에게, 여기가 얼마나 부자동네인지,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 이런 핀잔 같은 설명이나 해주며, 더욱 위축된 마음으로 동네를 한 바퀴 돌았던 것 같다. 그렇게 멀리 돌아서 다시 소월길 밑으로 오자, 담벼락에 딱 붙어 있던 조그마한 식당을 발견했다. 부대전골이 맛있다는 <남산 누나네>는 간판도 잘 보이지 않는 작은 가정집이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내부는 더 가정집 같았는데, 오래된 가구며, 우리 집 같은 주방이며, 벽에 붙어있는 사진이며, 그냥 친척 집에 놀러 온 것 같은 친근한 느낌이었다. 손님도 우리밖에 없었는데, 이모님이라는 호칭이 너무 잘 어울리시는 사장님이 마치 엄마가 밥 차려주듯이 집반찬들을 내어 주셨다. 부대전골을 시키자 밥을 새로 해야 한다며, 쌀을 안치셨는데, 가정집 같은 공간에서 조용히 밥 짓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뭔가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입사하자마자 야근의 연속이었고, 계속 고시원을 전전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따뜻한 집밥을 먹어본지가 너무 오래되었었다. 거기에 잔뜩 웅크렸던 마음으로 지내다 보니, 그런 공간에서 밥 짓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척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프랜차이즈 식당과는 다른, 역시 집에서 끓여주신 것 같은 부대찌개와 함께 갓 지은 하얀 쌀밥이 나왔다. 갓 지은 쌀밥 자체를 먹어본지가 오래라, 말 그대로 밥맛이 꿀맛이었다. 가정집 같은 공간에서 여자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는 밥을 나눠 먹고 있자니, 그제야 비로소 마음이 풀리고 봄이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끼니를 때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 맛집이 아니라 집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오랜만에 체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직접 만드셨다는 딸기 요거트 같은 디저트까지 다 챙겨 먹고 식당을 나섰다. 밥을 먹고 나오니, 기분 탓인지 봄을 맞이한 남산이 좀 더 예뻐 보이는 것 같았다.


 얼마 전에 문득 예전 기억이 떠올라 <남산 누나네>를 다시 찾아보았다.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는지, 지도 앱에서는 검색이 되질 않았다. 대충 기억을 더듬어 거리뷰로 위치를 찾아봤는데, 건물은 그대로인 것 같았지만, 역시 상호는 뜨지 않았다. 궁금한 마음에 좀 더 검색을 해보니, 안타깝게도 주인 할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어설프고, 위축되었던 시절, 참 따뜻한 기억을 남겨 준 밥집이었는데, 그 이후로 한 번도 못 가봤다는 게 못내 아쉬웠다. 마음이 너무 안 좋고, 헛헛해서 집에 있는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우리 예전에 갔던 남산에 부대찌개집 기억나냐, 오랜만에 찾아보니 주인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더라 이런 식으로 메시지를 보냈는데, 아내의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기억이 안나냐고 재차 물었는데, 당연히 기억은 나고, 주인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그렇게 기억에 남는 맛집은 아니어서, ‘그래 그런 집을 한 번 갔었지’ 정도의 느낌이라고.. 하긴, 결혼 전까지 엄마가 해준 음식을 최고로 치며, 항상 맛있는 집밥을 먹고 다녔던 아내 입장에서는 그날의 기억이 나와는 전혀 다를 수 있었겠다 싶었다. 그래도 내게는 맛있는 한 끼를 남겨 준 식당인데, 지면을 빌어 <남산 누나네> 할머님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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