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문턱이 높았던 패밀리 레스토랑 스테이크의 기억
"스테이크 먹고 싶다"
와이프는 확실히 아이를 갖게 되면서 입맛이 많이 변했다. 전에는 그렇게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요즘은 줄곧 고기를 찾는 일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고기를 찾는 일 자체가 많지 않다 보니, 왠만한 고기집을 가도 시큰둥, 그럭저럭이었다. 물론 '정말' 맛있게 고기를 먹었던 집은 꼭꼭 기억해 두곤 했는데, 스테이크 맛집도 하나 기억 속에 담아두는 집이 있었다.
'RUBI TUESDAY'
와이프가 기억하는 가장 맛있는 스테이크를 먹었던 집이다.
미국의 유명한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인데, 우리 나라의 패밀리 레스토랑 붐을 타고 2000년대 초 잠깐 들어왔다가 사라진 브랜드이다. 따라서 지금은 외국에 나가지 않는 한 국내에서는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는 집이다. 우리가 방문 했던 곳은 신촌점이었는데, 2005년이나 2006년 겨울이었던 것 같다.
사실, 나로서는 당시 패밀리 레스토랑의 스테이크들이 그렇게까지 어마어마하게 맛있었다는 기억이 별로 없다. 내 딴에는 괜히 가격만 더 비싸고, 차라리 고깃집에서 한우를 먹는 게 더 맛있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더군다나 요즘에 많이 보이는 비싼 정통 스테이크하우스들에 비하면 당시 먹었던 스테이크들은 맛도 잘 기억나지 않는 그런 수준이었다. 어쨌든 나의 그런 기억과 상관없이 와이프는 그 때, 그 집에서 먹었던 스테이크가 제일 맛있었다고 자주 이야기 하곤 했다.
둘 다 아직 학생이었던 시절이었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았던 시절이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자세한 것은 기억나지 않지만,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내가 맛있는 거 사주겠다고 지금의 와이프인 당시의 여자친구를 데리고 호기롭게 가게에 들어섰던 것 같다. 내심 지갑 속에 들어있는 돈을 생각하며, 너무 비싼 메뉴를 시키지 않으면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았다. 나름 생각하고 있는 예산 하에서 열심히 메뉴를 고르고 주문을 하려는데, 예상치 못한 답변을 받았다.
"죄송하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크리스마스 메뉴 외에는 주문이 안 됩니다"
스테이크가 들어간 크리스마스 세트. 우리가 주문할 수 있는 건 비싼 크리스마스 세트 뿐이었고, 갑자기 예산을 한참 초과해버린 상황에 나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그렇다고, 그 상황에서 '죄송합니다' 하고 그냥 나오기는 싫었다. 자존심도 상하고, 내가 사준다고 해서 데리고 들어왔는데, 너무 비싸서 그냥 나오는 모습은 별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머릿 속으로 재빠르게 계산해 보니, 가지고 있던 돈으로 아슬아슬하게 어찌어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난데 없이 비싼 '크리스마스 세트'로 호사스러운 저녁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여자친구는 실제로 정말 맛있게 스테이크를 먹었다. 두 번째 난관은 계산서를 받아 들었을 때였다.
'봉사료 10%'
이건 미처 생각지 못한 복병이었다. 이제 내 수중의 돈만으로 계산을 하는게 불가능해졌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는 돈이 생길리 만무하고, 도저히 자리에서 일어나 내 능력만으로 계산을 하고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결국 주저주저하다가 어렵게 어렵게 여자친구에게 돈 좀 보태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렇게 겨우 그 당황스러운 자리를 빠져 나올 수가 있었고, 아무렇지 않다고, 너무 비싼 거 먹어서 보태려고 했다고, 괜찮다고 이야기 하는 여자친구한테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 뒤로도 여자친구는 자주 '그 때 그 스테이크 진짜 맛있었는데', '나중에 한 번 또 먹으러 가자'는 이야기를 종종 하곤 했었다. 나는 놀리지 말라고 받아치곤 했지만, 나중에 돈 좀 생기면 꼭 다시 가서 내가 사주겠다고 답해주곤 했었다. 그런 우리의 기대와 달리 그 레스토랑은 빠르게 문을 닫았고, 그 때 그 스테이크는 두 번 다시 먹을 수 없게 되었다.
그 뒤로, 취업도 하고, 결혼도 하면서, 함께 좋은 스테이크를 먹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그 때마다 와이프는 웃으면서 '스테이크는 거기가 진짜 맛있었는데' 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사실 몇 년 전 함께 이태리를 다녀 온 이 후, 와이프에게는 새로운 인생 스테이크 맛집이 생겼다. 피렌체에서 먹은 트러플 소스를 곁들인 안심 스테이크가 너무 맛있다고, 같은 가게를 두 번이나 갔더랬다.
뭐, 생각날 때 가볍게 갈 수가 없는 가게라는 점에서 이전과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