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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re Oct 31. 2024

서울에 하디스 버거가 있었어요

숙대입구 푸짐한 하디스 버거의 추억


- "너 햄버거 좋아해?"

- "먹어본 적은 있어"

- "데리버거도 먹어봤어?"

- "아니"

- "그럼 그거 먹으러 가자"


 90년 대 초반, 잠실 어딘가에서 있었던 대화다. 아빠 친구 아들인 '서울 사는 형'을 따라 롯데리아에서 잘 나간다 던 데리버거를 처음 먹어봤던 날이다. 달큰한 데리야끼 소스와 마요네즈의 궁합은 생전 처음 먹어보는 환상의 조합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햄버거가 있다니.. 지금이야 롯데리아 매장에서 가장 저렴한 기본 메뉴를 담당하고 있지만, 그 당시 내게 있어 처음 먹어 본 데리버거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햄버거'를 무척이나 좋아하게 되었다.


파이브 가이즈

이 후로도 맛있는 햄버거에 대한 기억은 참 많았다. 유럽 여행 가서 처음 먹어 본 맥도널드 빅맥도 너무 맛있었고, (분명 내 기억에 유럽에서 먹은 빅맥은 나중에 한국에서 먹게 된 빅맥보다 훨씬 더 크고 맛있었다!) 코엑스 크라제 버거 앞에 대기줄이 길게 늘어서던 시절, 홍대 어디선가 먹었던 '수제버거'는 남다른 감동을 안겨 주었다. LA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한다고 해서, 인앤아웃의 '프로틴 스타일', '애니멀 스타일'도 챙겨 먹어봤고, 런던 출장 마지막 날, 혼자 파이브가이즈에서 엽서 쓰면서 먹던 햄버거와 땅콩도 기억에 남는다. 그 많은 햄버거에 대한 기억 중에 숙대 앞 하디스 버거에 대한 기억도 자리 잡고 있다.


하디스 버거 광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것 같진 않지만, 2000년 대 초반 숙대 앞에는 하디스 버거가 있었다. 파파이스, 웬디스처럼 한 동안 서울 곳곳에서 보이다가, 결국 국내에서 철수해 버린 글로벌 브랜드 중에 하디스도 있었던 것이다. 숙대 앞에 있는 하디스 버거를 특별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당시 종로로 과외 아르바이트를 다니던 내 동선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숙대 앞에서 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했는데, 오며 가며 배가 출출한 시간에는 꼭 하디스 버거에 들렀다. 솔직히 맛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버거킹이랑 비슷했던 느낌도 좀 있는데, 맛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당시 내가 사 먹을 수 있는 가장 큰 버거를 파는 집이었다는 사실이다. 한창 배고픈 고학생 입장에서야 양이 가장 중요한데, 하디스 버거는 꽤 커다란 크기로 만족감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맥도널드 빅맥의 기억도 그렇지만, 어린 시절 먹었던 햄버거들은 다 너무 작은 거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어서, 세트까지 챙겨 먹어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러던 중에 버거만으로도 배를 채울 수 있는 집을 발견했으니, 당연히 만족스러울 수밖에.. 더군다나 당시로서는 드물게 여기는 음료도 셀프로 무한리필이 가능했다. 그렇게 숙대 앞 하디스 버거에서 홀로 즐기는 만찬은 나에게 소소한 행복 같은 거였다. 과외비를 받아서 맛있는 걸 먹고 싶은 날이거나, 점심을 건너뛴 날은 '햄버거 집에 들러 배불리 먹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약간의 호사를 누리곤 했다.


과외 알바를 먼저 그만두게 되었는지, 아니면 하디스 매장이 먼저 없어졌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언젠가부터 숙대 앞을 갈 일도 없어졌고, 그 하디스 매장도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그렇게까지 큰 햄버거를 한 번에 다 먹을 수도 없게 되었다. 버거킹을 가도 '주니어'버전을 더 자주 시키고, 비프 패티가 부담스러워 치킨 버거를 더 자주 주문하기도 한다. 그래도 여전히 혼자 밥을 먹게 되거나, 이동 중에 급하게 뭘 먹어야 할 때는 기쁜 마음으로 햄버거 체인들을 찾곤 하는데, 요즘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맥도널드의 '상하이버거'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다시 국내에 들어온 파파이스의 치킨 버거도 매우 맛있게 먹었고, 회사에 어린 친구들 따라 성수동에서 먹었던 내슈빌 치킨버거도 너무 맛있었는데, 나이 먹고 확실히 취향이 치킨버거로 돌아선 것 같기도 하다.


내슈빌 치킨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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