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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May 07. 2020

삶에 필터 기능을 낄 수 있다면

♪Drive It Like You Stole It

네 인생이잖아
넌 어디라도 갈 수 있어
운전대를 잡고, 그것을 가져
그리고 훔친 것처럼 달려


♪Sing Street OST - Drive It Like You Stole It


얼마 전, 오랜만에 뮤직 플레이어의 플레이리스트를 정리했다. 그, 뭐시기 뭔가. 바이브라고 하는 그런 것 있지 않나. 알 수 없을 그 바이브가 느껴질 수 있는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기 위해 잠도 잊은 채 새벽 내내 이런저런 음악들을 들었다. 아직 아침이 오기 전이었지만, 한 곡 씩 찾아 들으며 하나씩 쌓는 과정은 아침을 기대하게 만들어줬고, 결국엔 새벽을 넘어 아침이 되어서야 완성했다. 완성된 플레이리스트는 '사랑한다. 자유롭게 살자. 우리는 존나 이미 끝났어' 따위의 알 수 없이 뒤섞인 주제들이지만, 어차피 외국어라 못 알아듣기도 하고, 사실 한국어로 나온다 해서 귀 기울여 듣는 편도 아니다.


나름의 루틴이라고 해야 할지, 의식 같은 것 중에 하나로, 문을 나서며 듣는 첫 곡에 하루의 기분을 맡길 때가 있다. 어차피 우울할 거야 라면서 우울한 곡을 튼다던가, 오늘은 기운을 냈으면 한다며 하이틴 소재의 미드 주제곡 따위를 틀기도 하고, 결국 돌아올 땐 다시 우울한 곡으로 바뀐다던가. 여행을 떠나는 순간에는 언제나 시티팝이라던가. 그래서 이 플레이리스트의 '바이브'는 뒤죽박죽이다. 말한 대로 아무 말 대잔치고, 조금은 요즘과 닮았다 싶어 뿌듯했다. 잘 만들었어. 




대체로 이런 느낌의 플레이리스트이다. 


사실 음악이 내 삶을 나아지게 했다면 이미 내 삶은 엄청 찬란했겠지만, 그냥 잠깐 착각에 빠지게 해주는 효과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음악은 나라가 유일하게 허락한 그... 약이다. 오늘따라 헛소리가 좀 늘은 것은 역시 음악 탓이다. 여하튼, 그래도 매일 같이 같은 풍경의 길을 걷더라도 듣는 노래에 따라 조금씩은 다른 길이 되는 것을 보면, 적어도 카메라 필터 같은 역할 정도는 해주는 것 같다. 






복잡 다단한 여러 가지 고민들이 이어지면서, 사실 바삐 사는 척하는 것뿐이지 삶은 멈춘 기분이다. 언제나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우면, 오늘 한 것들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하며 조금이라도 하루를 더 무엇으로나마 채우기 위해 다시 침대에서 일어나 의미 없는 무엇이라도 한다. 어제는 새벽에 뜬금없이 일어나 한 시간 정도 붙여야 한다는 팩을 했다. 팩을 붙인 채, 안경을 쓰지 못해 흐릿한 눈으로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인도하는 대로 영상을 틀어놓은 채 멍하니 새벽 세 시를 보냈다.


그때 보았던 영상들은 어쩌면 요즘 시대에 흔한 브이로그들이었다. 얼마 전, 필요한 것이 있어서 찾아본 탓(덕?)에, 자연스럽게 추천이 되었나 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엿볼 기회이기도 해서 굳이 다른 것들을 찾지 않고 멍하니 쳐다보았다. 감각적으로 편집이 된 다양한 삶은 꽤 멋있어 보였다. 한 아이의 어머니, 이제 혼자만의 공간에서 새로이 시작하는 예술가, 떠났던 과거를 회상하는 여행가. 그런 모습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저 멋있어 보이는 일상의 너머에는 저 화면을 찍기 위해서 다시 한번 채소를 다듬는 칼질을 한다던가, 다른 각도로 찍기 위해 이리저리 카메라를 움직인다던가, 컴퓨터 앞에 앉아 이런저런 필터를 끼워본다던가 하는. 다 꾸밈이야. 라며 어떤 필터를 썼나, 어떤 카메라를 썼나 따위의 직업병스러운 생각을 해보았다. 


그런 노력을 기울여 필터가 끼어진 영상 속 주인공은 마침, 사실 자신은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별 것이 아닌 사람이라며, 하지만 노력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영상을 찍으면서, 보이는 모습이 진짜 자신의 모습이 하나씩 되어가는 것을 발견하며 기뻐한다고. 그렇기에 이렇게 기록을 남긴다고 했다. 






멍하니 있다 보니 마침 철 지난 80년대 일본 버블시대 음악을 모아놓은 영상이 재생되었다. 누군가는 필터를 끼운 삶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었고, 누군가는 새벽녘 어울리지 않게 팩을 붙인 채 색 바랜 필터가 끼워진 옛 기억을 더듬고 있던 그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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