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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혁 Jul 25. 2023

에디터로 산다는 건

인터뷰이에게 선생님으로 불리게 된 사연 

본의 아니게 지난 레터를 통해 예비 에디터들의 꿈을 꺾은 건 아닌가 싶어 2편을 준비했다. 기대해도 좋다. 이번 레터는 그래도 꽤나 긍정적이고 밝은 해피엔딩이니까. 아마 몇 달 전이었을까, 브랜드에서 진행하고 있는 재능기부 프로젝트를 위해 한 재단의 캠페이너들과 인터뷰를 하게 된 날이었다. 긴장해서 속이 울렁거렸던 첫 인터뷰를 마친 후, 그동안 해왔던 몇 번의 대면 인터뷰를 통해 단련된 덕분에 더 이상 인터뷰는 내가 피하고 싶은 업무가 아닌 그냥 그저 그런 업무들 중 하나가 되었다. 낯 가려서 '대면 인터뷰를 못하는 에디터'라는 불명예스러운 칭호를 달고 살 수는 없으니까. 왜 내 DNA에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오랜 친구처럼 얘기할 수 있는 '인싸'의 DNA가 흐르지 않는 것인가. 한탄스럽지만 어쩔 수 없다.    


이번에 맡은 인터뷰이는 총 3명. 단체도 아닌 개인 인터뷰인지라 30개에 달하는 인터뷰 질문을 만드느라 골머리 좀 앓았다. 인터뷰를 하기 제일 어려운 사람은 말 수가 없는 사람도, 슈퍼스타도 아닌 이미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이미 자기의 이야기를 많이 해왔던 사람이다. 새로운 것을 발굴해 내야만 한다는 강박에 아무리 이전 인터뷰들을 뒤져봐도, 도저히 신선한 질문이 떠오르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지만, 이 일을 하는데 시간이 내 편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결국 내 노션은 그저 그런 상투적인 질문들만 냅다 적힌 페이지들로만 가득했다. 여차저차 인터뷰 질문 준비를 마무리하긴 했지만, 현장으로 향하는 길에서도 머릿속은 영 착잡했다. 


누군가 했던 말 중에 '촉'이라는 건 일생에서 경험한 모든 데이터들이 축적된 매우 과학적인 근거라는 말이 떠올랐다. 촉이 왔다. 아무래도 이번 콘텐츠는 망한 것 같다는 촉. 터덜 터덜. 현장으로 가는 발걸음은 이미 먼 나의 미래를 보고 오기라도 했었는지, 영 힘을 쓰지 못했다. 사진 촬영이 끝나면 본격적인 나의 차례다. 첫 번째 인터뷰를 마쳤다. 나쁘지 않았다. 두 번째 인터뷰까지 마쳤다. 예상보다 좋은 답변들이 나왔다. 그렇게 부푼 기대감을 안고 세 번째 인터뷰이를 만났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청년보다는 소년 같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색한 우리의 벽을 허물어줄 주제는 생각보다 빨리 등장했다. 다행히 우리 사이에는 힙합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었고, 어느새 인터뷰가 아닌 사담으로 빠진 우리의 대화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되어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자, 세 번째 인터뷰이가 나를 보며 '고맙습니다, 선생님.'이라는 말을 건넸다. 선생님이라니, 누가요? 제가요? 틈만 나면 야자를 도망가서 빗자루로 맞던 나였는데 불과 10년 만에 나는 누군가의 선생님이 되어있었다. 순간 부끄러워졌다. 이 인터뷰가 하기 싫어 온갖 게으름을 피우던 내가, 이런 사람들까지 인터뷰를 해야 하냐며 잠시 오만해졌던 내가. 그 인터뷰이는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어 고맙다며 연신 내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책임감이라는 감정이 가슴 저 멀리서 살며시 머리를 들었다. 내가 관성적으로 해오던 일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기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갑자기 대학교 시절, 저널리즘 수업을 가르치던 교수 님이 가장 처음으로 가르쳤던 말이 떠올랐다. 글에서 가장 중요한 건 'by line', 그러니까 누가 쓴 글인지 표기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 의미는 단순히 글의 출처를 가리기 위함 뿐만 아니라, 글을 쓴 사람으로서 그 글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갑자기 그런 의문이 들었다. 나는 내 글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지고 있나, 과연 내가 쓴 글에 최선을 다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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