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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놀다 주머니시 Mar 24. 2020

작은 무덤

김혜원

<작은 무덤>


맞은편에 사는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달이 저무는 시간대에 나와 빨리를 널었다. 그래서 아무도 그 얼굴을 모르고 살았다.

그가 나올 때마다 등에는 아기띠가 둘러져 있었다. 아기띠에 감겨 작은 무덤처럼 웅크린 저 형체는 그의 아기일 것이다. 그는 간혹 작은 무덤을 손으로 밀어 올려 고쳐매거나, 몸을 들썩이며 틈틈이 비집고 나오려는 무덤의 울음소리를 막았다. 그가 사는 집의 벽에는 험한 글귀가 적혀있었다. 그가 그걸 보았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나와 함께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철거민이었다. 어느 날은 작은 무덤보다 더 자주, 우는 소리가 들렸다. 철거민들은 하나 둘 떠나갔다. 운 좋게 깨지지 않은 화분은 다 그에게 전해졌다. 그는 길가에 화분들을 나란히 두고 풀잎을 작은 무덤의 손에 쥐어봐 주곤 했다.

나는 그가 언제부터 마음먹은 건지 모른다. 어젯밤 그는 옷가지를 걷으러 나와 내게 가벼운 목례를 했다. 그리고 기저귀를 대신해 썼을 흰 천들을 하나하나 걷었다. 나는 그가 언제 모든 걸 걷어갔는지 모른다. 아침에 다시 보니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도, 작은 무덤도, 슬픔도




#매주의글_6회차


#철거 #이태원
#김혜원(정달그믐)
@lyricist_dal.g_m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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