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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Aug 27. 2023

비 오는 여수에선 술만 마셨다

번아웃이 오면.. 여수 밤바다도 못 간다  

거의 끝나가는 휴가 즈음에 남겨두는 기록. 


몸도 마음도 바닥을 친지 오래됐다. 울고 싶었던 시간들이었지만 눈물 흘릴 기운조차 없었다. 그저 꾸역꾸역 하루들을 버텼다. 숨 가빴던 일정을 마치 퀘스트를 깨듯 하나하나 통과했다. 언제나처럼 내 감정은 제일 뒤로 미뤄두어야 했다. 기계처럼 해야 할 일만 했다. 그래야 하루를 지나갈 수 있으니까. 번아웃이 온 게 분명한데 깨야하는 퀘스트가 계속 이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때마다 언제 갈 수 있을지 모를 휴가를 떠올리며 버텼다. 이것만 끝나면, 이것만 끝나면 하면서. 


기다리던 휴가가 시작되었다. 우선 죽은 듯이 잠을 잤다. 조금밖에 안 잤다고 생각했는데 일어나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가있었다. 그렇게 자다가 조금 기운을 회복하고 일어나면 아무 영상이나 틀어놓고 보았다. 평소에는 시간이 없어서 잘 못 보던 유튜브도 아무 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보았다.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내 나름의 답을 찾고 싶었다. 고민할 시간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던 날들 속엔 그럴 여유가 없었으니까. 


그래도 예정했던 여수 여행은 떠났다. 평소에 여행을 그렇게 좋아하는 나인데, 정말 기력이 바닥이라 떠나는 것도 부담이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집을 떠나 어디로든 가고 싶었고 이번엔 그게 여수였다. 도착한 날부터 흐리더니 여행 기간 내내 비가 내렸다. 우산을 펴면 비바람이 들이닥쳤다. 남편과 그 비바람을 뚫고 겨우 밥만 먹으러 다녔다. 아니, 밥을 핑계로 술만 마셨다. 


여수 여행 첫날 마신 잎새주. 


전라도 여행이 처음인 나는 이번 여행에서 처음 잎새주를 마셔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나 여수 소주 좋아하네. 차가운 맥주에 잎새주를 섞어 마시니 술이 그렇게 술술 들어갈 수가 없었다. 맥주 두어 모금 겨우 마시는 남편을 앞에 두고 혼자 잎새주 반 병과 맥주 거의 한 병을 다 마신 것 같다. 별로 취하지도 않았다. 그저 기분 좋을 정도. 같이 먹은 해물 구이는 더없이 좋은 안주가 되었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 호텔로 들어와서 다시 죽은 듯이 잠을 잤다. 여수에 있다는 건 분명했지만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여수의 어디쯤 인지도 잘 몰랐다. 


그렇게 자다가 일어난 다음날은 비가 더 많이 내렸다. 


나 여수 술 좋아하네. 


그래서 게장에 막걸리를 마셨다. 여수 여행 기간 한 거라곤 죽은 듯이 자다가 일어나서 술 마신 것뿐이다. 그 유명하다는 이순신 광장도 못 가보고, 여수 밤바다도 못 보았다. 여수 밤바다는 호텔에서 창문으로 본 게 전부다. 이렇게 아무런 일정 없이 내내 누워있다가 술만 겨우 마실 정도로 정말 기력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차라리 비가 온 게 다행이었다. 내리는 비를 핑계 삼아 돌아다니지 못하는 현실을 정당화하고 그냥 술 마시고 아무 음악이나 듣다가 또 잠을 잤다. 취하고 싶었지만 취하지도 않았다. 그게 여수 여행의 끝이었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여행이었는데 나에게 남은 에너지는 딱 술 마실 정도의 기운 뿐이었다. 그래서 비 오는 여수에선 술만 마셨다. 고작, 남아있는 거라곤 술잔을 들 힘뿐이었다고 하면 될까. 


술 마시고 죽은 듯이 자는 날들이 며칠 이어지고 나서야 마음 한 구석에 보류해 둔 통증들도 신음하면서 조금씩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힘든 것도 기운이 있어야 할 수 있다. 상담을 받을 때 선생님은 내가 감정을 제대로 느끼는 것을 힘들어한다고 했었다. 불편하더라도 어떤 감정 안에 온전히 있을 수도 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다고. 그게 사실은 내가 생존을 위해 택한 방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힘든 나는 한 곳에 치워두고, 모두 미뤄두고. 


오늘은 작은할아버지의 부고를 들었다. 6개월간 암 투병을 하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94세. 가장 최근에 뵈었던 게 작년이었는지 올해였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그때도 왠지 편치 않은 몸으로 우리 집에 찾아오신 할아버지는, 아주 단 중국 과자를 선물로 남겨두고 가셨더랬다. 아마도 당신께서는 그때가 마지막으로 우리를 보는 때라는 걸 아셨던 것 같다. 그럼에도 "언제 한번 내가 있는 동해로 와. 참 좋다. 얼마나 좋은지 몰라." 하고 말씀하셨었다. 부모님께 할아버지의 별세를 전했다. 덤덤히 받아들이시나 싶었는데 엄마는 결국 눈물을 쏟는다. 고마웠다고, 고마운 분이었다고. 장례는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고, 부의도 받지 않으시겠다고 하여 그저 계속 말이 끊어지는, 짧은 통화로 마음만 전했다. 통화가 끝난 후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렸다. 그 시절에만 만날 수 있었던, 그때가 마지막이었는지 몰랐던. 그 얼굴과 손을 매만지며 그리웠다고 말하고 싶었다.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되묻게 되는 저녁이다. 


어제부터 눈에서 눈물이 계속 흘렀지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누가 봐도 눈병 증상이다. 내일도 계속 눈이 따갑고 눈물이 흐르면 안과엘 가 봐야지. 휴가는 끝나가는데 여전히 몸도 마음도 아우성이다. 아직, 휴가는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면 따가운 눈을 핑계 삼아 오늘도 술잔을 들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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