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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Oct 28. 2023

돌아눕고 돌아눕는 마음

'빈 가슴 감춘 채 멀리 떠나며 수십 년의 밤을 불러 꿈꾸는 당신'

꿈꾸는 당신


                      마종기


내가 채워주지 못한 것을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구해

빈 터를 채우는가

내가 덮어주지 못한 곳을

당신은 어떻게 탄탄히 메워

떨리는 오한을 이겨 내는가


헤매며 한정 없이 찾고 있는 것이

얼마나 멀고 험난한 곳에 있기에

당신은 돌아눕고 돌아눕고 하는가

어느 날쯤 불안한 당신 속에 들어가

늪 깊이 숨은 것을 찾아주고 싶다


밤새 조용히 신음하는 어깨여

시고 매운 세월이 얼마나 길었으면

약 바르지 못한 온몸의 피멍을

이불만 덮은 채로 참아내는가


쉽게 따뜻해지지 않는 새벽 침상

아무리 인연의 끈이 질기다 해도

어차피, 서로를 다 채워줄 수는 없는 것

아는지, 빈 가슴 감춘 채 멀리 떠나며

수십 년의 밤을 불러 꿈꾸는 당신




오랜 둥지를 떠나기로 결정했다는 사람과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알게 모르게 마주칠 때마다 나를 챙겨준 사람이기에 아쉬움이 컸다. 처음 만나는 다른 이에게 나를 소개해주며 많은 칭찬을 곁들여 주던 사람.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해 주던, 다른 사람에게도 '내가 예뻐하는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고 말해주던 사람. 그래서 움츠러들어있던 어깨가 펴지게 도와줬던 사람. 마음이 돌처럼 얼었을 때 온기를 보내준 사람이었다. 떠나기로 결정했다며 홀가분해 보이던 그는 그날 나에게 '네가 내동댕이 쳐진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사람에게 나는 내 속 깊은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날도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솔직히 대화도 거의 나눠본 적이 없다. 그러니 그는 그가 아는 이야기들에 스스로의 판단을 종합하여 그 '내동댕이'라는 단어를 말했을 거다.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정신없이 걸어가다 조금씩 호흡을 가다듬는 요즘.. 그 단어에 걸음을 멈추고 발 끝을 내려다보게 된다.


그랬다.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글을 읽어도 그 내동댕이 쳐진 마음을 대변하진 못했다. 허무했다. 사람에게 환멸을 느꼈지만 한편으로 또 다정하고 고마운 이들의 마음들을 빌어가며 살았다. 자기가 많이 아파봤기 때문에 내 아픔이 보였다는 그는 그래서 더 눈빛으로 말 한마디로 응원해 주고 어깨를 두드려줬다. 굶주리고 구멍 난 내 속에 따뜻한 미음을 흘려 넣듯이. 내팽개쳐진, 내동댕이쳐져 정신을 못 차리던 마음은 그런 순간에만 조금씩 정신이 들었었다.


빈 가슴에 허무함만 남았을 때, 무엇을 붙들고 살아가야 할까.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무의미하다 싶을 때 무엇으로 살아가야 할까. 수많은 밤 돌아눕고 돌아눕던 마음은 지금 또 어디쯤을 헤매고 있나. 온몸에 피멍들 듯 고통스러운 나날들의 그늘은 언제쯤 벗을 수 있을까.


마종기 시인의 시를 읽는다. 조용히 신음하던 날들을 꼭 누군가 알아주는 것 같다. 그런 때에 위안이 돼준 모든 이들의 안녕을 기도한다. 나처럼 아직 견디고 있는 그늘들이 있다면 어서 벗어나기를. 차마 채워주지 못했을 빈 가슴이 차오르는 순간들을 만나기를. 온몸의 피멍을 이불 한 장으로 덮어 참아낼 때. 속으로 울음을 견디다 못해 신음할 그 밤들의 한 자리에 따스한 기운이 내려앉기를. 빈 가슴을 앓고 나서 끝내는 홀가분해 지기를. 행복하고 편안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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