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 휴가를 냈다. 살고 싶어서.
몇 개월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2월부터 응급실을 오가며 상태가 불안하던 엄마는 결국 3월에 골절로 입원하셨다. 그리고 입원해 있던 중 엄마에게 다시 뇌경색이 찾아왔다. 12년 전쯤 왔던 두 번의 뇌경색에 이은 세 번째 뇌경색이었다.
아직도 그 저녁,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울면서 하나님을 찾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검사를 위해 엄마를 MRI실로 들여보내며 엄마가 정말 불쌍해서 눈물이 났다. 그날은 정말 절망적이었다. 인간의 손으로 어쩔 수 없는 운명의 흐름이 엄마를 기다렸다가 데려갈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도, 아무리 자연의 섭리라 해도 왜 이렇게 엄마가 많이 고통받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기도뿐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보살핌과 큰 사랑이.. 거기서 엄마를 지켜주셨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그 과정에서 신의 돌보심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엄마에게 뇌경색이 찾아온 장소가 병원이 아니었다면, 골절 때문에 입원해있지 않았다면 예후가 훨씬 안 좋아졌을 것이다. 어쩌면 엄마는 골절이 아니라 며칠 후에 예정된 뇌경색을 치료하기 위해 그 병원에 입원했던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혼란스러운 감정과.. 그보다 큰 감사함을 느낀다.
그 와중에 아버지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한 번은 엄마 병문안을 왔던 아버지가 경련을 일으키시더니 병실에서 잠시 정신을 잃으셨다. 알츠하이머 환자지만 그런 적은 처음이었다. 엄마와 다른 와상 환자들을 보고 불안함을 느끼신 것 같다. 나도 그런 아버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엄마가 병실에 있는 상황에서.. 급히 아버지를 모시고 같은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이렇게 안 좋은 상황이 겹칠 수도 있구나 생각하며.
거기다 그 다음날 아침엔 오래 준비한 특집 방송이 예정돼 있었다. 무조건 담당 PD인 내가 진행해야 하는 특집 방송이라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이를 악물고 했다. 무사히. 다행이었다.
그날들을 어떻게 지나온 걸까.
매일 아침저녁 회사에서 병원으로, 병원에서 집으로 부유물처럼 흘러가고 다시 흘러가던, 여기에 어떻게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살아있는 나날들이었다. 삶은 원래 고통의 연속이니 웃으며 견디자고 자주 다짐했건만 때로는 그 다짐이 우습게 속절없이 무너졌다.
엄마는 한 달이 조금 넘게 입원한 끝에 4월 초 벚꽃이 흐드러질 때쯤 퇴원하셨다. 병원처럼 간호사나 간호조무사가 상주하지 않는 집에 오시니 더욱 주변의 케어가 필요했다. 엄마 퇴원 직전에 집에 있는 문턱을 다 없애고 곳곳에 필요한 용품들을 설치했다.
주중에는 천사 같은 요양보호사님이 감사하게도 많이 도와주셨고 주말에는 내가 부모님 집에서 엄마를 돌보았다.
그때가 정말 힘들었다. 잠을 잘 못 잘 때가 많았으니까. 한 시간마다 엄마의 기저귀를 갈던 밤. 잠을 30분도 못 자고 맞은 어느 일요일 아침에는 누워서 진심으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그만 나를 데려가주시길 기도했다. 부모님이 아프신 건 자연스러운 일임을 알고 그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해 왔는데 그 순간만큼은 힘이 정말 바닥났다고 느꼈다. 이 모든 과정을 곁에서 고스란히 지켜보고 함께해야 했던 남편에게도 미안함이 너무 컸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데려가주시지 않았고
남겨진 나는 하는 수 없이 살던 대로 살았다.
돌아보면 그땐 넋이 반쯤 나가 있었지만 정신 차리고 하루에 두 시간씩 꼬박꼬박 방송을 했다. 간밤에 병실과 응급실, 집을 오가던 나를 잠시 뒤로 미뤄두고 음악을 고르고 사연을 읽으며 잠시나마 현실을 잊곤 했다. 아버지는 엄마가 퇴원한 후에도 한번 더 쓰러지셨다. 이번에도 응급실에 모시고 갔지만 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몇 군데 과의 외래 진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신경과에서 알츠하이머 약 부작용일 수 있다며 약을 바꿔주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4월 초에 퇴원할 때 몇 걸음도 떼기 힘들어하던 엄마는 감사하게도 조금씩 다시 걷기 시작했다. 입원 전처럼 화장실도 가시게 됐고 일상생활이 조금씩 가능해졌다. 하나씩 한 단계씩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듯이 나아가는 모습에 정말 감사해서 무릎 꿇고 기도 했다.
돌아보니 많은 고비를 넘겼고 정말 감사한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나의 어떤 부분들도 그만 견디지 못하고 숨을 거둔 것 같다. 살아가는데 죽어가는 느낌… 삶의 본질은 피할 수가 없는 것일까.
하루치씩만 생각하며 나름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누적된 피로 때문인지 여기저기가 다 아팠다.
최근엔 제정신으론 도저히 낼 수 없는 방송사고를 내기도 했다. 웃으며 넘겼지만 내 상태를 자각할 수 있었다. 죽을 것 같아서 휴가를 내고도 떠날 계획조차 세우기 힘들 만큼 지쳐있는 내 상태를.
휴가 때 뭐 하냐고 같이 여행이라도 가자던 제일 친한 동생에게 그냥 모르겠다고 한없이 자고 싶다고 했다. 좋아하는 바다를 보고 싶지만 사실 그럴 힘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미안해하며 그저 자고 싶다고 답하는 나에게 동생은 '그것도 좋지'라고 말했다.
충분히 먹고 자고 쉬는.. 그 별 것 아닌 게 사치인 삶을 살았으니 그런 거라고. 이해받는 기분이 들었다.
동생은 물욕이 나쁜 게 아니라며 백화점 상품권을 모아뒀다고 삶의 에너지를 주고 싶으니 내게 갖고 싶은 것도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 말에 웃음이 나왔다. 고마워서. 삶의 에너지라는 말이 낯설고 기쁘게 들려서.
얼마 전에 회사 근처로 찾아와 준 그 동생은 나보고 꼭 어떻게든 행복해져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 애에게 왜 사람이 꼭 행복해야 하냐고, 꼭 행복해야 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다. 그러자 그 애는 나에게 다시 태어나면 뭘로 태어나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다시는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그래도 그날 우리는 웃고 있었다.
그러면 된 거지.
충분히 자고 일어나서 지친 마음이 조금 나아지면
약간은 다시 태어나고 싶어 질지도.
죽은 듯이 자고 일어나서
시간이 남아있다면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