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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로 Feb 04. 2024

마음에 드는 글, 마음에 들지 않는 글

브런치 9년 차, 구차한 변명 좀 해봅니다.

2015년 7월.

브런치를 처음 시작했다.


게임기자 일을 하며 만난,

동향(同鄕) 선배의 추천.

당시의 나는,

미디엄(MEDIUM)꽂혀 있었다.

딱히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미디엄에 글을 쓰고 싶었다.

그때 미디엄 대신 브런치를 선택했던 건,

결과적으로 무척 잘한 일이 됐지만.


어느새 8년 하고도 반.

거의 10년이 다 돼 간다.

그 사이 내가 쓴 글은... 약 230여 편.

1년에 27편 정도.

대략 2주에 하나 꼴이다.

쓰겠다고 큰소리치던 놈 치고는...

무척 비루한 성과다.

대단한 명문장을 쓰는 것도 아니면서,

고작 2주에 하나라니.


물론, 변명거리야 있다.

구차하다는 걸 스스로 잘 알지만,

그래도 좀 늘어놓으려 한다.

나와 같은, 혹은 비슷한 고민을 가진

글쟁이들이 적지 않을 거라 믿기에.

그들은 이해하지 않을까 기대하기에.


글을 쓴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글쓰기라는 행위가,

단지 빈 공간에 글자를 채워 넣는

단순한 일은 아닌 까닭이다.

그걸 알면서도 계속 쓰게 되는 건

타고난 기질이나 운명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글쓰기는 시작도 쉽지 않지만,

그보다 전개하는 게 더 어렵고,

끝맺는 건 더더욱 어렵다.

(이 부분은 개인적인 의견이다.)


소재는 곳곳에 널려 있다.

오감으로 들어오는 온갖 소재를

머릿속에서 굴리기만 해도

글감은 나오긴 한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풀어갈지는

별개의 문제다.


어떤 소재는 그 자체로 이미

완성형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소재는 홀로 서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소재와의 연결이 필요하고,

그걸 고민하다 보면

전개가 참 어렵구나ㅡ탄식하게 된다.


어쩌다 급물살을 타는 날도 있다.

잡아챈 글감이 술술 써지는 그런 날.

문제는 그러다 보면 어느새

스크롤이 엄청나게 길어진다는 것.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읽어보면

눈살이 찌푸려지곤 한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기도 하고,

어디쯤에서 어떻게 끝내야 할지

난감해지기도 하기에 그렇다.


시작하는 글은 참으로 많지만,

제대로 궤도에 오른 글은 확 줄어들고,

물살을 타고 잘 흐르다가도,

제대로 끝맺은 글은 몇 안 된다.

솔직히,

어렵사리 끝맺은 글 중에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글도 많다.

근 10년 가까이 글을 쓰면서도

고작 이만큼밖에 쓰지 못한 데 대한

구차하고 구차한 변명이다.


글에는 죄가 없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모든 글은 내가 탄생시킨 자식으로

여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식을 키워본 적은 없지만,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 건 익히 들어 안다.

나와는 별개의 고유한 인격체니까,

나와는 다른 경험, 다른 사고를 하니까,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글도 어떤 의미에서는 같다.

내 생각으로부터 떠올라 탄생했지만,

어느 순간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

보는 이의 해석에 따라 달리 읽히거나,

시간을 먹은 내 생각이 다르게 이해하거나.

혹은 드물지만 글 안의 단어나 문장이

스스로 다른 의미를 자아내며,

글 자체를 다른 방향으로 비틀기도 한다.

나로부터 비롯되었지만

결국은 나와 다른 무언가가 되는 것.

다른 무언가가 되어가는 것.

그런 의미에서 나는,

글이 자식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내놓기 싫어,

오랜 시간 묵혀만 둔 것이 많다.

쓰고 나면 결국,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써내는 그 순간만큼이라도

내 마음에 쏙 들기를 바라는

그런 미욱한 이기심 때문이다.


결국 나 자신의 문제임을 알기에,

쉬이 해결되지 않을 고민임을 알기에,

너저분한 변명을 앞세운 채

오늘은 뭘 쓸지만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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