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렌드인사이트 Aug 07. 2019

직장인 동반식물 생활기

상추는 필요없어. 동반식물이 되어줘. ‘밀레니얼 홈파밍족’

당신은 무언가 키우고 있나요? 강아지, 고양이어도 좋고 커다란 나무여도 좋고, 작은 꽃 몇 송이라도 매일 밥을 주고 물을 주고 잘 지내는지, 잘 자라는지 신경쓰며 키우고 있는 것이 있나요? 초록색의 생명을 키우고 있다면, 집 안의 푸르름을 키우고 있다면 당신은 어쩌면 밀레니얼 홈파밍족일 수도 있다.


도시농업, 언제부터 우리 곁에 있었지?

밀레니얼 홈파밍족이 무엇일까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살펴 볼 것이 있다. 어느새 우리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잡은 도시농업, 홈 가드닝, 어반 가드닝, 홈 파밍. 이러한 키워드는 한동안 트렌드였고 이제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잡고 있다. 사실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이 최근에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본 에디터가 어렸을 때인 2000년대 초반에는 주말농장이 큰 유행이었다. 도시 생활에 지친 베이비붐 세대가 가정을 이루면서 농촌 생활에 대한 향수를 바탕으로 도심 외곽 지역의 자투리 땅에 아마추어 농사를 짓게 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작은 땅에 상추, 토마토, 무 등 한 가족이 필요로 하는 만큼의 채소를 심고 기르고 맛보는 주말농장은 잠깐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스테디한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이제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취미 생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주말농장에서 조금 더 뻗어나가 도시농업, 홈 가드닝, 어반 가드닝, 홈 파밍… 대체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모두 비슷한 맥락에서, 비슷한 느낌으로 사용되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도시농업을 검색해보면 도시 내부에 있는 작은 땅에서 진행하는 농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취미와 수익성이라는 목적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주말농장은 도시농업에 포함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영어로 지칭하면 어반 가드닝(Urban Gardening) 또는 어반 파밍(Urban Farming) 정도가 될 것이다. 보다 작은 개념으로 홈 가드닝(Home Gardening)과 홈 파밍(Home Farming)이 있는데, 별도의 땅 없이 집 내부에서 식물을 기르고 수확물을 얻는 활동을 가리킨다.


Ikea, https://www.ikea.com/gb/en/ideas/the-urban-garden-project-part-1-1364315808094/

도시인들이 집 안에, 집 근처에 식물을 기르는 것은 단순히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취미생활은 아닐지도 모른다. 최근 Ikea는 디자이너 Tom Dixon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사람들이 일상 생활에서 Urban Gardening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제품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런던에서 열린 Chelsea Flower Show에 ‘Gardening will save the World’라는 주제로 이 프로젝트를 소개했는데, 이들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주방과 옥상에서 최소한의 에너지 소비를 통해 식재료를 직접 기르는 미래를 생각했다. Ikea는 디자인을 내세워 조립 가능한 작은 화분을 선보이기 시작했지만, 좀 더 지속가능한 형태를 고민하였다. 그 일환으로 3월에는 매장에서 직접 식재료를 길러 식당에서 직접 활용할 수 있는 ‘hyper-local’ 측면의 생산을 시작했다고 한다. 고객들의 삶의 방식을 반영한 결과인데, 뉴욕이나 런던, 파리와 같은 도시에서는 오히려 근교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더 신선할 뿐만 아니라 환경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Ikea는 이러한 삶의 방식을 반영하여 Ikea만의 모듈화된 제품을 생산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확한 제품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단순히 화분이나 미니 삽, 물뿌리개를 판매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높은 수준의 프로젝트일 것으로 보인다. 도시에서 보다 쉽게 식재료를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은 2021년부터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홈파밍에서 위로를 얻다, ‘밀레니얼 홈파밍족’

그렇다면 이번 아티클의 주인공, 밀레니얼 홈파밍족은 어떤 사람들일까?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우리나라에서의 도시농업 트렌드는 베이비붐 세대의 주말농장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밀레니얼 홈파밍족은 이러한 베이비붐 세대의 주말농장에 대한 니즈와는 조금 다른 니즈를 갖고 있다.


밀레니얼 홈파밍족은 밀레니얼 세대와 홈파밍족을 합쳐 만든 용어인데, 홈파밍족이지만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과거 도시농업의 트렌드를 시작했던 이들은 베이비붐 세대였고, 자신들이 자란 농촌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여 무언가를 수확했다면 밀레니얼 세대는 다른 관점으로 홈파밍을 생각한다. 사실 대부분의 밀레니얼 세대는 도시에서 자랐기 때문에 농촌에서 무언가를 키워보지 않았고, 고작 해야 초등학교에서 조금 실습해 본 게 다일 것이다. 그렇게 자란 밀레니얼 세대가 이제는 사회에 나와 경제활동을 하고, 베이비붐 세대와 교체되는 시기가 도래했다. 사회생활과 경제활동을 하며 갈등을 겪고 어려움에 부딪히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홈파밍이란 무언가 수확하기 위함이 아닌, 나와 함께 잘 자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하는 활동에 더 가깝다. 

www.unsplash.com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여러 매체에서 도시농업이나 홈파밍을 지속가능한 환경 보호의 출발점이며, 미래 세대는 기성 세대에 비해 식량 문제에 더욱 관심이 많다고 설명하는 것과는 다르다. 또한 자급자족의 출발이라고 보기도 어려울 수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생각보다 그렇게 거창한 목표를 갖고 홈파밍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급자족을 위해서가 아닌 내가 오늘 하루를 잘 버텨낸 것처럼 무언가도 나와 함께 하루를 살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마음의 힐링을 얻기 위해 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소비하는 오늘날의 사람들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환경을 위해, 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해 홈 가드닝이나 홈 파밍을 하지 않는다. 그보다 자기 자신이 만족하기 위해,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 가시적으로 무언가 해냈다는 느낌을 얻기 위해, 무언가와 함께 살고 있다는 위안을 얻기 위해 홈 파밍을 하는 것이다.




Interview 밀레니얼 홈파밍족

*Interviewee: 식물과 함께 사는 28세 디자이너 이주연

1. 지금 하는 일과 하루 일과를 간단히 설명해달라.

국내 한 음악 서비스에서 일하고 있으며 더욱 멋진 음악서비스가 되도록 감성을 한 스푼 얹는 디자이너이다. 아침에 일어나 일리커피머신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일과를 시작한다. 이틀에 한 번 정성껏 키우는 레몬밤의 상태를 확인하고 물을 준다. 그 외에는 10분만에 후다닥 화장을 마치고 출근길에 나서는 여느 직장인과 다르지 않다.


2. 지금 키우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레몬밤 3뿌리를 키우고 있다.


3. 다른 생명체가 아닌 식물을 키우게 된 이유는?

자취를 시작할 때, 강아지나 고양이같은 동물을 잠시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길어서 동물에게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워낙 좋아하는 여행러버이기도 하고. 친하게 지내는 언니가 집으로 초대해서 자기 식물을 보여주고 자기한테 있던 흙과 씨앗을 나눠줘서 화분만 사다가 얻어서 키웠다. 생각보다 식물을 키울 수 있는 흙이나 화분, 영양제같은 게 할인점에 잘 준비되어 있어서 진입장벽이 낮았다.

4. 식물을 키우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이 있다면?

처음에 키울 때는 과연 흙에서 새싹이 날까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이 있었다. 새싹이 나는 게 너무 신기하고 어린시절에 식물관찰일기를 쓰던 때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왜 어릴 때 떡잎이 자라고 쌍떡잎, 외떡잎 같은 것들을 배우던 때로 돌아간 기분?ㅎㅎ 그리고 그때 한창 회사가 바빠서 지쳤었고 매일 매일 똑같은 일상이라고 생각이 들던차에 식물은 매일 매일 커가는 것을 보고 아, 똑같은 매일이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또 얼마나 자라있을까 기대되는 마음?도 들었다.

흙에 그냥 씨앗을 심고 물을 줬는데, 이 단순한 행위에 웃음이 나왔다. ‘고작 이런걸로 아무것도 없는 흙을 뚫고 새싹이 자란다고? 그냥 물만 주면 식물이 큰다고?’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는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진리였는데 새삼 믿을 수 없었다. 내가 계속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디지털 세상에 익숙해지다보니 내 눈 앞에 보이는 자연의 섭리가 새롭게 다가왔다. 자연이라는게, 스스로 움직이는 게 진짜 존재한다는 것이 마치 기적같이 느껴졌다고 해야하나?




밀레니얼 홈파밍족은 무언가를 키워내며 그 안에서 느끼는 성취감, 위로, 의지 등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식물을 통해 하루를 견뎌냈다는 위로를 받고 생명체를 잘 자라도록 돕고 있다는 성취감을 느끼고 싶어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밀레니얼 홈파밍족에게는 어떤 것들이 도움이 될까? 21세기를 살고 있는 밀레니얼 홈파밍족은 스마트함이나 효율성보다는 조금은 아날로그하지만 감성적인 무언가가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이들을 묶어줄 무언가는 어떨까? 밀레니얼 홈파밍족이 소통하고, 서로 조언을 얻을 수 있는 모바일 앱이 될 수도 있다. 오늘 하루 또 다른 생명체에게서 받은 위로를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식물을 키우며 부딪히는 크고 작은 난관을 헤쳐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홈파밍을 보다 손쉽게 할 수 있는 스마트 기기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사실 밀레니얼 홈파밍족은 이러한 효율성보다는 조금은 느리게 가는 방법을 더 선호할지도 모른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도전해 볼 수 있는 키트같은 것을 판매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밀레니얼 홈파밍족을 비즈니스적 관점으로 풀어내는 것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이들은 도시농업의 대안을 제시하거나 인류의 환경문제를 해결하고자 홈파밍을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을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한 부분으로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세대가 의지를 얻고, 성취감을 얻는 새로운 방법의 하나로 말이다.


[원문] http://trendinsight.biz/archives/46737

매거진의 이전글 박테리아로 엿보는 친환경 패션의 미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